“뛰어라, 화정아!"

완경 일지 5

by 이화정

나는 글 쓰는 사람이다. 책에 기대어 살아온 내가 때때로 홀로 굳건히 서서 세상을 마주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건 글을 쓰면서부터다. 나의 감정을 나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되자 그다음 무슨 조치가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나의 감정에 구체적인 이름을 달아주고 존중하며 나를 보살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포기하고 미루어 두었던 크고 작은 꿈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글을 썼다. 어떻게든 실행하려고 애쓰다 보니 내가 정말 원하는 것과 막연하고 헛된 욕망을 구별하게 되었다. 실수하고 좌절하고 낙담했던 순간들을 감추지 않고 글로 썼더니 그 모든 것이 쌓여 나의 실력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글들이 추동력이 되어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무엇보다 글을 쓰며 사람을 얻었다. 공감하며 지지하며 아끼고 사랑하게 되는 사람이 날로 늘어났다.

그렇게 놀라운 힘을 가진 글쓰기. 나는 글을 쓰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미루 글방을 열어 함께 글을 쓰는 동안 글쓰기에 대한 애정은 날로 깊어졌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글을 썼으면 좋겠다.


선영아, 함께 쓰자.


운동을 한 지 3주째 접어들었을 때, 나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토록 부담스러워하던 운동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운동을 마칠 때쯤이면 벌게진 얼굴로 인상을 찌푸린 채 터덜터덜 걸으며 얼른 가서 씻어야겠다는 생각에 골몰했었다. 과연 이번에는 한 달이라는 기간을 잘 채울 수 있을까?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만큼 괴로운 건 없다. 날은 너무 덥고, 운동은 너무 하기 싫고, 약속은 지켜야겠고, 매번 집을 나서며 한바탕 씨름부터 해야 했다. 그래도 걷기 시작하는 순간 타닥타닥 내 발소리를 듣는 게 흥겨웠다. 일단 오늘도 나왔다는 사실에 뿌듯해져서는 힘차게 앞을 향해 나아갔다. 20여 분 빠르게 걸어 공원에 도착하면 차례대로 운동 기구에 올라 열심히 동작을 반복했다. 어느 날은 손등에 밴 땀을 보며 얼마나 신기했는지. 더워서 난 땀이 아니라 운동을 하면서 솟아난 땀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자랑을 하랴마는 나는 선영에게 득달같이 보고를 했더랬다.

“언니! 드디어 땀구멍이 열리나 봐요!!”

그래, 너 때문에 내가 열심히 할 맛이 난다.


운동을 마치고 다시 걸어 집에 도착하면 한 시간여 걸린다. 이 과정을 낱낱이 보고할 사람이 있다는 게 신의 한 수였다. 나는 거의 매일 사진을 찍어 보냈고, 한결 같이 뜨겁게 감응해주는 것이 신이 나서 더더 열심히 운동을 했다. 땀 범벅 시뻘게진 얼굴을 자랑스럽게 보여준 날 선영이의 답이 날아왔다.

“우와~ 대박!!! 뛰어라~ 이화정!!!!!!”

나는 선영이를 또 꼬셨다.

‘매일 열심히 뛰는 언니를 보며 느끼는 글을 웃기게 좀 써 봐. 갱년기로 우울한 언니를 내가 뽐뿌질 해서 쌩쌩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노라, 50대 언니를 위한 응원가를 쓰는 거지~~.'

우리 채팅방에는 ' ㅋㅋㅋ'가 백만 개쯤 쌓여 있다. 서로를 웃기고, 별 것 아닌 말에도 함께 즐거워한다. 그러는 사이 나는 몸보다 마음이 더 튼튼해지고 있다.

내가 써보라고 한대로 벌써 세 꼭지의 글을 보낸 선영이. 글이 도착할 때마다 깜짝 놀라며 마음을 굳게 먹는다.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는데 여태 모르고 있었네. 계속 쓰게 만들겠어!'

글을 쓰는 일도, 걷는 일도 한 글자, 한 걸음부터다. 쓰면 쓸수록, 걸으면 걸을수록 달라지는 게 있다. 꾸준히,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 아가다 보면 흔적이 남는다.

우리는 채팅방에 ㅋㅋㅋ 와 하트와 칭찬과 격려와 잔소리와 사진들을 쌓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함께 쓴 글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그 뒤에 남는 것은 이 여름만큼 뜨거운 무언가다.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나는 계속 걷고 쓰면서 그 이름을 찾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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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화정] - 신선영

저녁 9시가 넘으면 단톡방에 언니의 운동 사진 한두 장과 마무리 인사가 올라온다. 어제도 올라왔고, 어제 어제도 올라왔고, 어제 어제 어제도 올라왔고, 어제 어제 어제 어제 어제도...
이 언니 왜 이러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이러다가 쓰러지는 거 아닌가? 사실 운동하고 땀범벅인 모습의 언니 사진은 너무 예쁘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나도 그 순간 ‘나가서 공원을 한 바퀴 돌아야 하나’라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그래서 걱정되는 마음이 생기면서도 "달려라, 화정아!!!"라고 나팔 손을 만들어 크게 외치며 응원해 주고 싶다.
언니와의 운동은 처음이 아니다. 2021년 11월 4일에 처음 시작한 운동은 언니가 2주 만에 포기 선언을 했다. 3주인가? 4주인가? 아무튼 100일이 목표였는데 서로를 강제하는 운동은 아니었기 때문에 언니의 선택을 존중했지만 그 후로 언니는 여기저기 아팠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언니를 꼬시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 운동을 할 때입니다! 저 살 많이 빠졌어요!! 저 이제 허리 하나도 안 아파요!!! 저는 언니가 쓴 책 많이 많이 보고 싶어요!!!! 꼬임에 빠진 언니는 2022년 3월 19일부터 강제로 두 번째 운동을 시작하긴 했는데... 틈만 나면 도망갈 생각을 하는 이 꾀쟁이 50대 언니를 어찌 하나~ 톡방에 각자가 한 운동을 공유하는데 조용하거나 엉뚱한 이모티콘을 보내는 이 언니를 어찌하나~
그래도 나의 운동기록을 꾸준히 툭툭 던져놓았는데 언니에게 드디어 불이 붙었다. 활활!!! 석유를 뿌린 거마냥 너무너무 큰 불이 되어서 러닝 앱까지 깔고, 공원 운동기구까지 점령해가며 운동을 하고 있다. 와... 이 언니 모지? 몰까? 언니, 내가 모 잘못한 건 아니죠? 제가 그동안 괴롭혔다고 복수하고 그러는 거 아니죠?
날씨 때문인지. 피로 때문인지. 머릿속의 이런저런 잡념들 때문인지 최근의 나는 운동을 외면하고 있다. 그 시간에 쪽잠을 더 자고 그 시간에 못 본 티브이 프로그램을 찾아본다. 언니의 운동 알람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 언니는 운동했어. 너는? (안 한 나는 양심이 콕콕ㅋ)
둘, 언니는 무사해, 너는?(눈물이 찔끔ㅠ)
지금껏 마음이 몸을 지배한다고 믿었지만 운동을 시작하며 나는 몸이 마음을 지배한다고 믿게 되었다. 몸이 좋으면 마음이 힘들어도 버틸 힘이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 언니의 운동은 나에게 응원 같은 것. 언니가 하니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 같은 것.
달려라, 화정!!
화정이가 뛰어야 나도 뛴다. 뛸 수 있다. 그렇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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