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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바다 Dec 02. 2015

지금, 사랑하는 법

시간도 공간도 거리도 어떤 무엇도 없는, 지금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이는 달이지만, 달까지는 항공기를 타고 18일이 걸린다. 태양은 대략 23년이 걸린다. 빛의 속도로 달려가면 태양은 8분이 걸리고 달은 1초가 걸린다. 내가 보는 태양은 8분 전의 태양이었고 달은 1초 전의 그것이었다. 빛의 속도는 빠르지만 그렇다고 모든 시간과 공간의 거리를 무시하고 가로지르는 물체는 아니다. 빛이 아무리 빠르더라도 속도는 있다. 속도가 있다는 것은 공간과 시간의 물리 법칙을 받는 물체라는 의미이다.    


같은 방 안에서 나와 3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친구를 바라본다면, 나는 사실 그의 '지금' 모습이 아니라 1억분의 1초, 즉 100분의 1마이크로초 전의 '과거'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 빛의 속도가 초속 30만 킬로미터이므로, 3미터를 움직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미터 나누기 초속 3×10⁻⁸미터이기 때문에 10⁻⁸초라는 계산이 나온다. (칼 세이건, <코스모스> )     


빛이 전혀 없는 어둠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다는 것은 결국 빛을 보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우리는 언제나 빛에 반사된 무엇을 보고 있다. 내가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은 빛에 반사된 그녀를 보고 있는 셈인데, 반사된 그녀의 모습은 과거의 그녀이다. 내가 보는 것과 보이는 그녀는 거의 동시적이지만, 완벽한 동시, 말하자면 엄밀한 의미에서 현재의 그녀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과거만 본다. 그녀 역시 나의 과거만 본다. 세상 모든 것을 본다는 것은 결국 과거를 만나는 한 방식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지금’ 이 순간에 사랑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짝사랑하며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더군다나 먼 거리를 두고 바라만 보고 있는 사람은) 과거에 묻혀 사는 슬픈 존재일지도 모른다. 과거라는 유형지에 유배된 존재. 홀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래서 수인, 혹은  위리안치당한 자.    


사랑하는 사람과 ‘지금’을 살아가는, 어쩌면 유일한 방법은 그의 살과 몸을 맞대고 느끼는 것뿐. 잡고 있는 그녀의 손과 나의 손, 닿고 있는 그녀의 입술과 내 입술, 맞대어 있는 그녀의 살과 나의 살, 그것에 시간과 공간의 틈이 있을 수 없다. 맞대어진 그곳엔 현재, 지금만 있을 뿐. 이 뻔하고 흔한 일이 가장 신비롭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당신의 살과 내 살 사이에 아무런 장애물도 시간도 공간도 거리도 어떤 무엇도 없기 때문이다.     




아침에, 혹은 자기 전에 당신을 안고 포옹하는 것은 지금, 현재의 시간 속에서 사랑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이고 아름다운 방식이다. 사랑한다면, 그리고 '지금' 사랑한다면 당신의 이마에 내 이마를 대고 시간과 공간의 거리가 없는 유일한 이 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지금 사랑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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