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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sam Sep 17. 2015

[가벼운 이별은 없다]

성장통 #part14

냥이들 울음소리에 잠이 깬 새벽...
이놈들 담당인 녀석이
아마도 밤에 밥을 안 주고 잤나 보다
밥을 주고 들어와 다시 누우니 잠이 또 들지 않아
핸드폰만 만지작 거린다
밤에도 잘 못 자는 올빼미지만
요즘은 한번 깨면 다시 자기가 쉽지 않다
생각이 많은 탓이겠지

어제는 이사를 앞두고 책장을 정리했다
초등시절(왜 이렇게 옛 이야기처럼 느껴지는지ㅜㅜ)
책을 너무 좋아해 사주고 얻어오고
어느새 커다란 책장 세개를 꽉 채우고도 남았다
한편엔 어렸을 때 인화했던 사진앨범들과
아이가 받아온 상장들도 보인다



"엄마~ 나는 하루 종일 책만 보고 글만 쓰면 좋겠어~"
하던 녀석의 말이 떠오른다
5학년에서 6학년 올라갈 무렵쯤으로 기억된다
"그래? 그럼 학교 다니지 말고 그렇게 해볼까?"
나는 농담반 진담반 질문을 던졌지만
고지식한 녀석은

"엄마는 중학교까진 의무교육인 것도 몰라?"

하며 핀잔을 주었다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밖에 없는 녀석에게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을 한 해 한 해
그 나이에 꼭 필요하다 생각했던 것들을 해주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들보다
더 값진 경험과 값진 사람들을
얻도록 해주고 싶어서
참 많이도 부지런을 떨었던 기억들이 밀려온다

먹고사는 게 힘이 들고
사람에게 받는 상처가 아파도
그 한 가지 원칙을 지키려고 애쓰고 살았기에
지금은 다시 하라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많은 일들을 견뎌냈던 것 같다
엄마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감히 할 수 없었던...
그렇게 하루하루
아이와 함께 성장해온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이틀 후면 아이와 함께하는 일곱 번째 이삿날이다
짐을 줄여 가야 해서 정리하기 시작한 책들이
거실 한가득 차지하고 있다
이사도 지겹고 정리도 하기 싫어
짜증이 나려던 차에
"이건 내 인생 책이야~" 하며
한 권 한 권 보물처럼 챙겨놓는 아이를 보니
미소가 절로 난다


한 사람 한 사람 전해줄 책들을
모아놓고 이름표를 붙여놓으니 기분이 묘하다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다






우여곡절 끝에 원하던 집이 아닌
생각지도 못했던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못난 엄마는 마음 한편이 무겁다
그 과정이 하도 기가 막혀
주변 누구의 말도 위로가 되질 않더니
계약서를 들고 지쳐서 돌아온 그날 밤,
"엄마, 난 괜찮으니까  미안해하지 마세요~"
하는 녀석의 편지글 한 줄에
마음이 눈 녹듯 무너져 내린다

나는 안다
학교 가는 길이 멀어져 아침잠 많은 녀석
기상시간 당겨야 하는 것도
큰 언덕배기 하나 넘어가야 하니
더운 여름 추운 겨울 고생해야 하는 것도
그래서 또 아침마다 투닥거리며 마음 아플 것도...

하지만 아이의 말처럼 미안해하지 않으련다
삶이 늘 뜻대로 되지는 않지만
어디에든 또 다른 시작이 있고
희망이 있을 테니까
함께 견뎌줄 녀석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니까
생각해보면 상처를 준 인연보다는
그래도 따뜻한 마음 나눠준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무거운 마음 내려놓고
새집에서 만들 새로운 추억거리들을
기대해 본다



그러다 문득 20년도 더 지난  그때
먼 곳에 배정되어 고등학교 3년을
걱정으로 사랑으로
데리고 다니셨던 엄마 생각이 또 난다
그때는 어찌 고마운 것을 몰랐을까
자꾸만 자꾸만 죄송한 일들이 떠오른다


어느새 녀석이 학교에 갈 시간이다

아침 맞으러 가야겠다


*독서를 사랑하는 녀석은 중딩이 되고는 이런저런 상황에 밀려 독서시간이 줄어 너무 아쉽다






[가벼운 이별은 없다]

거꾸로 달린
문고리 하나에도
정이 드는
이 몹쓸 미련

익숙함의 결핍과
낯설음의 고통으로
작고 작은 생명마저
밤새 울고 난 새 아침

헤아려 주지 못한
미안함과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한
외로움이
가슴속을
헤집고 간다

다만

새로이 마주할 희망과
함께라는 안도와
지켜낸 감사함으로
다시금 자리를 잡고
일어서기를 바랄 뿐

아프지 않은 이별은 없다

이별은 그렇게
어디서든 흔적을 남기고...


글, 사진: kos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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