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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대리 Aug 07. 2023

S#1-14. 영화 축제가 시작됐다

영화제 열혈 관객이 된 조대리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인 국제영화제가 열렸다. 당시 부산에서 영화제 동안 활동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큰 관심이 생겼었다. 하지만 영화제라는 행사 자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잡지 못한 데다, 영화제에서 자원봉사를 한다는 것도 무슨 말인지, 아무리 공고를 읽어봐도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집에서 먼 부산에서 한동안 지내야 한다는 숙식 문제도 큰 고민거리였고, 나는 역시 나답게 지원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1년 후, 2회 부산국제영화제 동안 부산에 사는 친척 집에서 머물면서 일주일 남짓, 영화제의 관객으로 첫 경험을 했다. 당시엔 사전 예매를 부산은행 지점에서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상영 일정을 비롯한 여러 정보를 담은 ‘티켓 카탈로그’를 보며 시간표를 짰고, 미리 예매하지 못한 영화는 현장에서 구매하면서 일주일여 동안 하루에 서너 편씩 영화를 관람하는 강행군을 자청했다.



이십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떠올려도 왠지 울컥하는 장면이 있다. 당시 영화제 프로그램 중에 고(故) 김기영 감독님 특별전이 있었고, <충녀(1972)>를 본 직후였나,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다. 같이 간 친구도 없었는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샘솟았는지, 숫기 없던 내가 번쩍 손을 들어 질문의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그즈음 어딘가에서 기사로 봤던 감독님의 차기작 <악녀>에 대한 질문을 했었다. 


이제는 역시 고인이 되신 고(故) 이지은 배우가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던, 감독님이 아주 오랜만에 준비 중이던 프로젝트였다. 그때 무슨 정신으로 새 프로젝트에 관해 물었는지, 감독님이 뭐라고 대답하셨는지 또렷이 기억나진 않지만, 아직도 내게는 떨리고 흥분되는 순간으로 기억된다.


그 이후, 여러 영화제에 관객으로, 스태프로, 게스트로 참석했지만, 그날 그 장면이 내게는 가장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다.



김기영 감독님이 생전 완성한 마지막 영화인 <죽어도 좋은 경험(1990)>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영화 자체에서 느껴지는 괴랄함에 대한 호불호는 차치하고서라도,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말씀하셨던 <악녀>가 제작되었다면 어떤 영화가 되었을지가 무엇보다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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