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연하 커플의 스물세 번째 편지
안녕, 줄리!
오늘은 내 차례야.
어제 오랜만에 몸무게를 쟀는데,
내가 태어난 이후 역사상
가장 무거운 무게를 기록했어.
평생 살찔 것 같지 않은
체질이었는데,
며칠만에 몇 kg이 그냥
쪄버리는 내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었어.
내 변화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달까.
그래서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는
무게야! (몸무게를 포함하는 것이지)
무게라는 말, 쉬운 단어인데
생각보다 쉽지않다?
이 낱말 앞에 무슨 수식어가 붙느냐에 따라
단어의 무게감이 천차만별이 되는 것 같아.
몸무게라는 말도 살을 빼야 한다고
생각하면 무겁기 그지 없는 단어지.
그리고 뭐가 있을까,
마음의 무게,
마음이 무겁다는 표현?
또는 삶의 무게.
무게 앞에 우리의 삶이 붙으면
순식간에 그 무게는 무거워지는 듯해.
우리의 삶의 무게는 우리도
너무 잘 알다시피
가볍지 않잖아!
(특히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더욱!)
며칠 전에 드라마를 한 편 봤어.
단막극이었는데,
내용인즉슨 4년차 공무원 시험 준비생과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는 소녀의
만남이었지.
당연한 이야기들, 당연한 슬픈 장면들,
당연한 오해들, 당연한 이별들,
당연한 성공들, 당연한 행복들이
계속 이어졌는데,
뭐랄까 참 먹먹했어.
지금 현재 2015년 11월을 살아가는
세대들이 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표현해낸 것 같아서.
특히 몇몇 대사들이 와닿았는데,
조금만 옮겨적어볼게 :)
"나, 진짜 겁난다.
나 혼자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여기 못 벗어날까봐. 무서워."
"남들처럼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드라마 속 고시생들은
소박한 꿈을 꿨지만,
혼자 터널을 지나야 한다는
삶의 무게를 무겁게 지고 있었어.
하지만 결국 사람을 놓쳐버린
남자 주인공은 이렇게 말하지.
"아버지, 제일로 중요한건요,
사람입니다." 라고.
나 역시 지금 내 앞에 놓인
삶의 무게가 버겁고 두렵고 그래.
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건
사람이라고 말하잖아.
아니 말해야하는거잖아.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말하려고.
나한텐 네가 참 중요한 사람이라고.
브라이스에게
네가 며칠 전 얘기했던, 그 단막극이구나.
보면서 눈물을 훔치곤 했다던.
그리고 어제 살이 엄청 쪘다며
귀여운 투정을 부리던 네 목소리도
함께 생각이 나네.
전혀 다른 상황과 분위기에서
'무게'라는 같은 단어가 사용된 걸 보니,
이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그 묵직함이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어.
특히 너 말대로 '삶'이 앞에 붙으니까
더욱 그런 것 같아, 그치?
'삶'.
어쩌면 어떤 단어에 붙이든 그 단어를
무겁게 만들어주는 게 '삶'일지도 모르겠어.
우리가 늘 쥐고 있는 것이면서도,
원하는 대로, 좋은 방향으로 가지기는
힘든 존재여서 그런걸까.
단막극 속 소녀와 고시생처럼 말야.
삶은 '살다, 살음'의 줄임말인데(아마도?)
브라이스 편지를 보고 문득 드는 생각이
'삶'이라는 글자를 이루고 있는
모음과 자음을 배열해보면
'사람'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도 한다는 거야.
정말 약간 그렇게 느껴지지 않아?
약간 억지..스럽긴 해도,
진짜 우리네 인생에서 '사람'을 빼놓곤
아무 것도 얘기할 수 없지.
혼자선 아무리 행복해도
여럿이서 나누는 것보단 클 수 없으니까.
그리고 요즘처럼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힘들어하고 좌절하고 외로워하는 날들이
반복될 땐 누군가 곁에 있음이
어느 때보다 간절하고 소중해지는 것 같아.
아까 잠깐 나눴던 얘기 중에
예전 학원물들은
('카이스트'라든가 '남자셋 여자셋'같은)
사랑, 꿈에 대한 열정과 고뇌들이
주를 이뤘는데
지금 청년을 다루는 드라마엔
모두 그들의 고됨, 쓸쓸함, 막막함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했잖아.
그런 변화가 더 삭막해진 사회를
방증하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어.
그래서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면서도
우리가 잘 헤쳐나갈지 걱정되고,
안쓰럽고 조금 막막하기도 했어.
어려운 상황이기에 이 또한 어렵겠지만,
그래도 어려운 삶의 여정 속에서
든든한 사람 한 사람 정도는
곁에 있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나뿐만 아니라 모두 다.
힘들어도 지쳐도
곁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에
다시 힘을 내서
나아갈 수 있다면,
그래서 최소한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지켜낼 수 있다면,
조금 더뎌도 그래도
나아가볼만 하지 않을까.
너한테 내가 중요한 사람이듯,
나 역시 내게 너는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이야.
그렇게 응원하고 함께
여러 무게들을 견디며
쉽지 않은 여행길, 잘 걸어나가보자.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