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에 관하여

연상연하 짝꿍의 여섯 번째 편지

by 브라이스와 줄리

브라이스에게


안녕, 벌써 여섯 번째 편지야 :)

가을이 성큼 다가오나 싶더니

아직도 한낮엔 긴팔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덥네.

이러다 언제그랬냐는 듯

다시 추워지겠지?

그래서 가을이 더 소중한가봐.


오늘은 '낭만'에 대해

얘기해볼까 해.

가을이랑 참 어울리는 단어지.


'낭만'이란 주제로

수 없이 많은 얘길

할 수 있겠지만

최근에 있었던 얘길 해볼까해.


나에게 낭만은 늘

'의도치 않게 찾아 오는 것'이야.

낭만을 느끼러 가볼까?

낭만을 느끼고 싶다! 하면

쉬이 찾아오지 않지만,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우연히 들려온 노랫소리에선

느낄 수 있는

서프라이즈 같은 존재랄까.


어제도 그런 일이 있었어.

(사실은 '우리'와 관련된 일이야.)


어제 한남동 근처에 있다가

걸어서 이태원까지 가보겠다며,

생전 처음 보는

골목길을 걸었잖아.

꼬불꼬불 주택가 사이로 걷다가

길을 잃기도 하고,

이런 곳이 있었나 싶기도 했지.


고개를 두리번 거리며

길을 찾다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내가 '우와!!'하고 소릴질렀지.

이제껏 한번도 못봤던

야경을 봤거든.

집이 가까워 용산 일대는

나름 꽉 잡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처음 보는 장면이었어.

늘 가는 데만 갔으니까,

야경도 늘 보던 것만 봤던 거지.


길을 잃은 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명당이었어.

주황색 가로등 불빛과

수많은 골목과 계단들,

그리고 저편 너머의 불빛들.

사람들도 아무도 없었지.

과장일지 모르겠지만,

잠시 외국에서

여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어.

시간이 잠깐 멈춘 것 같기도 했고.


배고프다며 분주하게

길 찾기에 바빴는데,

이렇게 의도치 않게,

오랜만에 '낭만'을 느꼈던

행복한 저녁이었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던,

'우와' 탄성 소리가 절로나던,

그런 찰나의간.


이렇게 짧지만 강렬한

엽서의 그림 같은 순간들,

그리고 여기에 덧대어진

'낭만'이라는 이름 덕분에

또 우리의 평범한 삶은

더 풍요로워지고

특별해지는 것은 아닐까.


아마 이태원을 떠올리면

당분간은 어제 본

야경의 모습이 떠오를 것 같아.


어제의 일이 아니어도 좋아.

너가 생각하는 낭만은 무엇인지,

너만의 기억의 단상을

얘기해줄래?


줄리에게,


가을하면 낭만이고

낭만하면 가을이지.

9월에 오늘 같은 날에

딱 어울리는 말이야 :)


내게 낭만은 어떤 것일까.

나는 낭만을 추구하는

사람이지만,

가끔은 낭만보단 배고픔을

더 따라갈 때가 있긴 해.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낭만을 놓치지 않으려 해.

(정말로!)


그래서 내게 낭만은

'주변에 항상 머무르고 있는 것'

이라고 하고 싶어.

길을 가다 고개 한 번 돌리면

만날 수 있고,

어제 줄리가 그랬던 것처럼

슬쩍 지나친 길 틈새로

낭만적인 야경을

만날 수 있던 것처럼 말이지!


내게 낭만적인 순간은

지금 이 지면을 꽉꽉

채울 수 있을만큼 정말 많아!


어제 같이 공부할 때

뒤에서 내가 몰래 찍은

사진이지!


이 사진을 찍으면서도

난 순간 낭만을 느꼈어.

사진 속에 담긴 저 사람이

나랑 같이 시간을 보내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구나,

하면서 그 순간이

잠깐 멈춘 기분이랄까.


나는 이 기분을

종종 느끼곤 해.

너를 만날 때

너가 슬며시 맨

스카프를 보면서

새삼 예쁘다고 생각하고,

혼자 있을 때는

장바구니를 가득 채우고

버스에 오른 할머니를 보면서

옛날 우리 할머니를 떠올리고.

또 지하철 노선도와 지도를

왔다갔다하며 길을 찾는

외국인의 모습을 보면서

작년에 내가 저랬었지,

하면서 은근슬쩍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까하며

더 가까이 지나기도 하고.


내 머릿속에 스치지 않고

장면으로 남는 모든 순간은

내게 '낭만'이야.

그리고 줄리가 그 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


이렇게 쭉 이야기를 쓰고보니

너에게 낭만은

'의도치 않게 찾아오는 것' 이고,

나에게 낭만은

'주변에 항상

머무르고 있는 것' 이니까,


결국 우리의 낭만은

주변에 항상 머무르고 있는 것을

의도치 않게 맞이하는 것.


앞으로도

우리 주변에서

우리를 찾아오는 낭만들을

더 많이 맞이하자.


낭만의 밤이야.

오늘도 행복하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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