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여유 공간을 마련하기
박사 공부를 하면서 흰 머리가 확 늘었다. 왼쪽 이마 위로 새하얀 눈이 왔다. 새하얀 눈을 틀키지 않고자, 그 위에 까만 머리로 덮었다. 새치를 뽑으면 원형 탈모가 된다기에, 가위로 짧게 짤라준다. 다시 젊어졌다. 음, 내 나이대에 맞는 외모로 돌아온 듯 하다.
웃으면 눈가에 줄이 생긴다. 바로 눈주름. 미간에는 八자가 자리잡기 시작한다. 보톡스라도 맞을까? 조금이라도 주름을 펴고자 마사지를 한다. 남편은 그런 내 맘도 모르고
"눈가에 줄이 3개 있네요." 하면서 놀린다.
난, 내가 나이들어 가는 게 속상한데 그것을 기정사실화 시켜준다.
이미 아줌마의 나이에 들어섰는데, 아이가 없어서 이상하다. 요즘은 결혼도 늦어지고 임신도 늦어졌는데도, 괜히 마음이 쫓긴다. 아파트 경비원께서도, 우리집에 물건을 설치해 주러 온 분들도 '아주머니,'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나이가 되었다. '어머님'이란 말을 듣다니. 난 아직 아기가 없는데. 앞으로는 '어머님'이란 호칭에 익숙해져야겠다.
새로 이사온 아파트에 실리콘이 안 되어 있는 부분이 있어 관리실에서 직원분이 오셨다. 직원분께서 실리콘 작업을 해 주신 후 물으신다.
[직원분] "정성껏 했습니다. 아이는 어린이집 갔나요?"
[나] (잠깐 멈칫하다가) "아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직원분] "아, 그렇군요. 우리 딸도 결혼하고 2년이 지나도 아기가 안생겨 엄청 걱정했는데, 올해 임신이 되었다고 하네요. 힘들게 생긴 아기라, 그 말 듣고 아비인 내가 눈물이 났네요. 새댁도 금방 생길 거에요. 너무 걱정 말아요."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에 고맙다. 아저씨의 오해가 기분나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테니까 말이다. 30대 후반의 아줌마가 집에 혼자 있으면, 당연히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도 '학교'에 갔냐고 묻지 않는 것을 보면 딱 내 나이대로 모습을 본 것 같다.
내가 너무 늙기 전에 아기가 생기면 좋겠다. 그래야 좀 더 좋은 체력으로 아기를 키울 것이 아닌가? 내 자녀 어린이집을 찾아갈 때에도, 흰머리의 할머니가 아니라 좀 더 젊은 엄마의 모습으로 찾아가야 우리 아이도 부끄럽지 않지 않을까? 나이는 들어도 외모는 늙지 않게 잘 관리해줘야겠다.
내가 늙고 싶다고 늙는 게 아니다. 외모가 늙는 만큼, 내 마음도 성숙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의 지혜가 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외모가 늙는 속도가 내가 성숙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것 같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될 준비가 안 되었는데, 외모는 벌써 어른이 되고도 남는다. 젊었을 땐, 나름 '동안' 소리를 듣는 나였는데, 이제는 원숙한 어른의 모습이 되었다.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아름답게, 지혜롭게 늙고 싶은데 쉽지 않다. 세월이 흐르면 세월에 따라 연륜도 깊어지고 여유도 있어져야 한다는데, 여전히 마음은 아이같다.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지금 모습도 아름답고, 나이가 들어도 괜찮다고. 꼭 세상의 기준과 잣대로 내 모습을 판단할 필요는 없다고. 대신 좀 더 아름답게 늙고 싶은 마음은 있다. 타인이 날 찾아왔을 때, 조금이라도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내 마음의 여유공간을 마련하고 싶다. 인생의 욕심으로 덕지덕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이들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