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괜찮아
인생에 지각생이 어디있겠냐만은, 임신에 있어서 지각생이 된 기분이다. 내 나이대 주변 친구들은 보통 자녀가 1~2명은 있는데, 난 첫째 시작도 이리도 힘들다. 뭐, 좀 늦게 시작하면 어때?에서 늘 마지막 질문은 '내가 아기를 가질 수 있을까?'로 귀결된다.
서울에 유명하다는 난임 병원 예약을 했다. 그 전에 다니던 병원에서는 예약 날짜 문자를 보내주었기 때문에, 따로 다이어리에 기록해 두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예약일을 다른 날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예약일은 11월 4일. 병원에서 따로 연락이 없자, 11월 3일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 내일 예약한 사람인데요."
이름과 예약 날짜, 시간을 말씀드리고 전화를 기다리기로 했다.
전화가 계속 오지 않아, 다시 전화를 드렸다. 그랬더니 충격적인 말씀을 들었다.
"예약 날짜가 내일이 아니라 어제였네요. 안 오시길래 제가 전화드렸는데 혹시 못 받으셨을까요?"
뜨악. 너무 충격이었다. 잠깐 생각이 중지한 듯 했다. 아, 그랬구나, 예약날짜가 어제였구나. '02'로 시작되는 전화번호는 거의 받지 않기에, 전화도 놓쳤던 것이다. 그렇다고 어제 예약시간 다 되어 전화를 받더라도 서울로 기차타고 가면 병원 마감 시간을 넘어서 병원에 도착했을 것이다. 어쩌겠는가? 모든 것이 나의 탓인 것을.
간호사분께서 새로 예약날짜를 잡자고 하셨다. 결국 가능한 날짜는 12월 15일이어서, 눈물을 머금고 그 날짜에 예약을 했다. '12월 15일이 초진이면, 시험관 시술은 1월에야 가능할텐데, 괜찮을까? 시간을 이렇게 보내도 될까? 다른 병원을 알아볼까?' 생각이 복잡했지만 꾹꾹 마음을 바로잡는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게 다이어리 같은데 꼭 써 놓으세요."
"네..."
다이어리에 큼지막하게 날짜를 써 놓는다. 12월에는 잊지 않고 날짜 잘 맞춰 가기를. 참으로 빈틈 투성이다. 어리석다.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도 나인 것을. 날 토닥토닥해준다.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내게 쉼의 시간이 더 필요한가 보다. 몸이 더 회복되고 시험관을 하면 더 잘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기적같이 자연임신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아, 시간이 가고 있다. 조급해 하지 않기로 다짐해 본다. 좀 늦어도 괜찮아. 사람의 인생 속도가 어찌 다 같을 수 있겠는가? 좀 늦으면 어떤가? 내 계획과 다를지라도, 그래도 괜찮아. 한 쪽 마음은 괜찮다고 말하지만, 다른 쪽 마음은 늦었다고 땡깡을 부린다. 그 마음을 달래는 게 쉽지 않다. 방에 앉아 있으면 왠지 좁은 방만큼 마음도 작아져 조급해지기 쉬운 것 같다. 밖에 나가서, 자연도 보고 바람도 쐬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