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이가 든다는 것

아름답게 늙어가길

by 햇살샘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겨울을 맞이하며 윤기 나던 갈대꽃이 허옇게 변했다. 마치 인간이 나이를 먹으면 머리가 희끗희끗해지는 것과 같다. 풀 중에서는 나름 큰 키를 뽐내며 이리 흔들, 저리 흔들리며 중심을 잡던 갈대가 한쪽으로 몸이 치우쳐졌다. 나이 든 어르신들의 허리가 점점 숙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갈대들도 나이를 먹는 시기가 다 달랐다. 어떤 갈대는 좀 더 빨리 나이를 먹고, 다른 갈대는 아직 젊어 보였다. 그러나 뚜렷한 사실은, 그들은 모두 겨울을 맞으며 늙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때론, 엄마가 나이를 드시는 게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다. 아름답던 엄마의 젊은 날이 영원하면 좋겠는데, 엄마의 얼굴에도 주름이 조금씩 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엄마는 나이 듦을 속상해하셨지만 요즘은 나이 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주름을 방지하는 '미간 패치'를 사 드리니 많이 좋아하셨다. 역시, 엄마도 나이 드는 게 싫으셨던 거야. 요즘 내 머리에도 드문 드문 새치가 올라온다. 얼굴에도 세월의 흔적이 남기 시작한다. 엄마의 나이 듦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나도 실은 같이 늙어가고 있다. 세월의 거센 바람 가운데 이리저리 흔들리며 나이를 먹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같은 시대를 엄마와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마치 갈대가 서로 의지하며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하는 엄마가 같은 시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비록, 엄마도 나이를 먹고 나도 나이를 먹으며 같이 늙어가지만 내 마음속 엄마는 늘 젊고, 싱그럽고 아름답다. 그리고 엄마의 주름진 모습도 여전히 아름답다. 엄마의 수고와 땀 덕분에, 내가 이렇게 사람 구실 하면서 살고 있지 않는가? 엄마의 젊음을 먹고 자라난 내가, 나의 젊음을 엄마께 드릴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자연의 섭리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랐는데 그 사랑을 어떻게 돌려드려야 할지, 늘 안타까울 뿐이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염소즙 다 먹었나? 우리가 염소즙 그때 먹기를 잘했어. 염소즙 가격이 많이 올랐네. 엄마가 염소즙 다음에 2번 정도 더 해줄게. 염소즙을 젊을 때 먹으면 곱게 늙는다네."


엄마는 나 몸도 따뜻해지고 건강하게 임신하라고 올해 초에 염소즙을 해 주셨다. 내가 시험관 시술을 할 때, 염소즙을 못 먹어 엄마께 남은 염소즙을 조금 드렸었다. "나 이거 처음 먹어본다."며 염소즙을 마시는 엄마의 모습에, '엄마께 나도 염소즙 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엄마, 내가 염소즙 해 줄까?"

"아니, 괜찮아. 니꺼 같이 나눠먹으면 되지."


오롯이 엄마를 위해 좋은 것을 해 드리고 싶다. 엄마가 날 위해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신 것처럼 말이다. 고향집에 혼자 계실 엄마가 늘 그립고 걱정되고, 그래서 더 기도하게 된다. 엄마는 경상도, 난 전라도에 있어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지만, 내 마음은 늘 엄마 곁에 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엄마를 늘 지켜주시고, 인생의 길을 갈 때 힘이 되어 주시며 평안을 주시길 기도한다.

keyword
이전 02화나이를 먹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