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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남편

전복죽에서 느껴지는 사랑

by 햇살샘

아침에 일어났더니, 남편이 왜 바닥에서 자냐고 한다. 내가 어제 배가 너무 아파서 응급실에 다녀왔다고 했다.

"깨우지, 왜 안 깨웠어요?"

"오늘 중요한 감사가 있다고 해서, 깨우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아플 때, 운전하면 위험해요."

"다음엔, 택시를 타고 가야 할까 봐요."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남편은 출근했다. 새벽 5시경에 겨우 눈을 붙였기 때문에, 남편 출근 후 다시 잠을 잤다. 11시경, 잠에서 깨어났고 새벽에 맞았던 진통제 덕분인지 통증은 잡혔다.


췌장 수치가 좀 높다고 해서, 불안감에 검색사이트에 '췌장 수치' 관련해서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본다. 췌장이 얼마나 중요한 기관이고, 보호해야 할 기관인지 알겠다. 췌장에 염증이 생기면, 췌장에서 강력한 소화효소를 분비하기 때문에 몸의 다른 장기에도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위험할 뻔했구나. 앞으로는 초밥이나 날 것은 절대 먹지 않기로 다짐한다.


죽을 사러 가기엔 에너지가 없어서, 집에 있는 귤과 두유를 먹고 쉬고 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남편이 온 것이다. 점심시간에 시간을 내어 죽을 사 온 것이다.

"전복죽 사 왔어요. 점심 같이 먹게요."

그래서 우리는 전복죽을 같이 먹었다. 전복죽이 맛있었고, 남편이 날 생각해 준 게 고마웠다.


"우리 나중에 자녀 낳으면, 난 애기 너무 힘들게 공부 안 시키고 싶어요. 내가 일과 공부를 동시에 하면서 몸이 많이 축난 것 같아."

"그래요, 그렇게 하게요.”


나중에 임신이 된다면, 자녀를 너무 경쟁에 몰아넣지도, 공부를 강요하고 싶지도 않다. 뚜렷한 가치관 없이 자녀를 키우면 세상의 경쟁에 그대로 노출이 되기 때문이다. 자녀 양육과 관련해서도 가치관을 바로 세우고 싶다. 엄마가 되어, 옆집 자녀와 내 아이를 비교하면서 계속 무언가를 시키고 닦달하면 내 자녀가 너무 피곤할 것 같다. 성과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성취를 위해 건강을 혹사시킨 나로서는, 우리 자녀가 건강하고 즐겁게 생활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크다. 아직 아기를 안 낳아서 그런 것일까? 자녀를 키우면 또 욕심이 생길까? 잘 모르겠다. 지금으로서는 쫓기듯 살았던 내 삶이 그리 기쁘지 않았기에, 난 내 자녀가 행복하고 평화롭게 성장하면 좋겠다.


어쨌든, 남편이 사 온 전복죽을 먹으니 배도 따뜻해지는 것 같고, 남편에게 너무나도 고맙다. 전복죽을 떠나 날 생각해 준 남편 덕분에 마음이 행복해진다. 아팠던 몸도, 마음도 치유되는 듯하다. '인생, 살 만하네.'


남편은 다시 회사에 가고, 평화로운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다. 휴직이어서 얼마나 감사한가? 만약 일하고 있었다면 장염으로 응급실에 다녀온 후 잠도 못 잔 채, 직장에 가서 감정노동,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동시에 하고 있었을 텐데. 내게 있는 결핍이 아니라, 감사할 것들을 찾는다. 아팠지만, 지금은 통증이 잡힌 것도 너무나도 감사하고, 날 생각해주는 소중한 가족이 있는 것도 감사하다. 인생에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도 감사하다. 그래, 인생 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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