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선생 Nov 16. 2019

좁은 집은 영혼을 다치게 한다

11평 낡은 빌라의 기억

오늘 다시 가난을 이야기 해야겠다. 세련된 팝송이 나오는 아파트 라운지 카페에 앉아 옛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추억으로 돌아볼 수 있는 가난은 얼마나 낭만적인가. 그 시절을 견디고 노력해 내 이 자리에 섰다고 성공 서사를 풀어내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정말 그런가? 누군가 그랬다. 진짜 행복과 가짜 행복을 구별할 수 있다고. 지나서 돌아보니 ‘그래도 그때가 참 좋았다’면 그것은 가짜라고. 진짜 행복은 내가 경험하고 있는 그 순간에 행복해야 한다고.


크게 한숨을 내쉬어 본다. ‘지나보니 참 좋았다.’ 좁은 집에 부대끼며 살던 때도, 참고서 살 돈을 달라고 할 때 몇 번이나 망설이던 때도, 축구를 하다 넘어져 팔이 부러졌어도 아픔보다 병원비를 걱정 했을 때도, ‘지나보니’ 추억이다.


다시 그 시절로 가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 안도한다. 박진영의 말을 떠올린다. 그가 적었다. “내가 겨우 건너온 다리가 얼마나 무서운 다리였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이후론 승자 팀에 속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그 사실을 즐기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처럼 나도. 처음부터 다리 반대편에서 살아왔던 양 행동하고 있다.


박진영과 내가 다른 점도 있다. 과거의 내 나쁜 행동들이 현재의 일상 속 나를 가끔 괴롭힌다는 것이다.


상계동 한 귀퉁이 11평짜리 낡은 빌라. 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우리 가족이 살던 곳. 당연히 내 방은 없었다. 거실 한 귀퉁이가 내 잠자리였다. 다 큰 남자 셋과 여자 하나가 부대끼며 살기엔 조금은 좁았다. 고등학생 시절 야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안방에서는 크게 TV 소리가 울리고, 작은 방 컴퓨터는 온라인 게임이 돌아갔다.


수능이 가까워져도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아 나는 초조했다. 집안 모든 게 스트레스였다.

“TV 소리 좀 줄여주세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빠의 장광설이 시작된다. 늘 똑같은 얘기. 가 어릴 때 친척 집에 놀러갔던 때의 일이다. 앞에 아저씨들이 떠들건 꽹과리 소리가 나건 그 집 딸은 집중해서 공부만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내가 신경 끄고 공부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물론 나중에 그 집 딸이 어느 대학에 갔는지(혹은 대학에 갔는지)는 아빠의 이야기 속에서 늘 생략되어 있다.


“형 나 인강(인터넷 강의) 좀 듣게 컴퓨터 좀 쓸 수 있을까?”

“아이.. 씨. 이번 판만 끝나면 줄게. 새꺄.”

작은 방에 가서 형에게 말을 걸면 거친 말이 돌아왔다. 11시에 물어보는데 늘 ‘이번 판’은 두 시간이 지나서야 끝났다. 그런 형이 밉다가도, 새벽 내내 모니터 불빛과 소리에 잠을 잘 못 이루는 에게 또 미안하고. 그런 일상의 반복이었다.


내 스트레스는 늘 엄마에게 향했다. 감정은 약자에게 흐르는 법이니까. 어느 바쁜 아침.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집 이곳 저곳을 한참을 찾다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열쇠가 없어요. 열쇠 못 봤어요?”

엄마가 혼을 냈다.

“너는 맨날 그렇게 덜렁대니까 열쇠를 잃어버리지. 좀 물건을 제자리에 놓고 다녀.”

당연한 말이었다. 그런데 난 참 못났었다. 모진 말을 뱉어냈다.

“이 좁은 집에서 열쇠 잃어버릴 곳이 어디 있다고 그래요!!”

엄마는 말이 없었다. 나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시간이 많이 지나도 종종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괴롭다. 그 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엄마는 잘못이 없는데... 좁은 집에서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아둥바둥한 건 엄마인데...


시간이 많이 지나서 엄마는, 그때 참 많이 아팠노라고 말을 꺼냈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악당을 찾기는 쉽다. 수험생 아들을 배려하지 못 한 아빠를 탓할 수도 있고, 철없이 밤새 게임을 하던 형을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들이 잘못이겠는가. 그저 TV와 멀찍이 떨어진 내 방이 있으면 됐을 일이다. 결국 가난이 문제였고 좁은 집이 문제였을 뿐이다. 가난의 진짜 문제는 상황이 아니라 사람을 원망하게 하는 것이다. 원치 않는 순간조차 서로를 서로의 공간에 깊숙이 들어오게 하며, 상대를 이기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난 그래서 ‘지지고 볶고 산다’는 표현을 싫어한다. 저마다 각자의 접시에 담겨 살아가고 싶었다. 그때의 시간이 내가 개인주의를 동경하게 만들었는 지 모르겠다.


카페 마감시간이다.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둘이서 방 세 개를 쓰는 우리 집. 서로에게 서로만의 시간과 공간을 내어 줄 수 있는 이다. 스무 해 전에 내가 이런 에 살았다면 부모님과 나는 서로에게 덜 상처 줬을까? 잠시 생각해본다. 결론 없이 생각을 지운다. 가난의 기억을 삶의 악세서리처럼 쓰는 걸 보니 나도 참 나빴다 싶다. 그래. 니가 괜히 모질 게 굴었을까. 그러면서도 이런 막연한 가정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