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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선생 Nov 16. 2019

뚱보라뇨. 당신은 귀여운 아기곰이에요.

바보온달이 아닙니다

교무실 문을 조심스레 열고 한 아이가 다가온다. 일에 열중하고 있어 한동안 알아채지 못 했다. 한참을 쭈뼛쭈뼛 서있다 말을 건다.


“B... B 선생님”
“응? K구나. 어쩐 일이야?”
“저.. 저희 반 학급신문을 만드는데 선생님도 인터뷰 해.. 해주실 수 있으세요?”


9반 반장이다. 학교에 몇 안 되는 내 팬이다. 당연히 대답은 YES.


“그럼~! 우리 K가 부탁하는데. 물어봐.”
“아.. 저.. 제가 이렇게 적어왔는데 여기에 써주실 수 있으세요?
선생님 편하신 시간에 다시 올게요.”

반장이라지만 쑥스러움이 많은 아이. 인터뷰 질문이 담긴 쪽지를 주고 금방 저 뒤로 도망쳐 사라진다. 이 맛에 교사하지.


나름 정성스레 인터뷰 지를 채웠다. 몇 교시 뒤 아이가 다시 왔다.

“K야. 이렇게 쓰면 될까?”
“와.. 많이 써주셨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응. 도움이 됐다니 나도 기쁘네.”

다시 모니터 앞으로 시선을 돌리려고 할 때 다급하게 아이가 나를 부른다.

“아... 서.. 선생님.. 그.. 그런데.. 질문이 하... 하나 더 있는데요.. 이건 제... 제가 질문하는 건 아니구요... 저희 반 편집부 애들이 꼭 물어보고 오라고 해서요...”
“응? 뭔데 K야?”
“서... 선생님. 햄버거 한 번에 최대 몇 개까지 드실 수 있어요?”
“........................”


당했다.


“두 개란다...”
“감사합니다!!”

아이는 또 재빨리 도망간다. ‘햄버거 최대 몇 개까지..’ 줄여서 햄.최.몇. 인터넷 은어(또는 속어)다. 뚱뚱한 사람의 식탐을 놀릴 때 쓰는 말이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대답을 듣고 꺄르르 웃었을 것이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여보 여보. 오늘 학교에서 애들이 학급 신문 만든다고 인터뷰했어.”
“잘했네. 뭐 물어봤어?”
“그냥 내 신상 이것 저것. 그리고 애들이 나한테 햄최몇이냐고 물어봤어.
엉엉. 나 너무 뚱뚱해.”

아내가 폭소를 터뜨린다. 나보다 인터넷 세상에 빠삭한 사람이니 배경지식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나 다이어트할거야. 애들도 나 너무 뚱뚱하데.”

아내에게 농담반 울상 반으로 징징거렸다.

웃음을 그친 아내가 답했다.

“아~~니야. 오빠 하나도 안 뚱뚱해. 오빠는 연애 때보다 지금이 훨~~씬 보기 좋아. 앞으로 그런 애들 있으면 내가 혼내줄게!!!”

아내가 웃으며 나를 안아준다.


결혼 4년차. 결혼은 많은 것을 바꾸었고 내 몸도 그 중 하나다. 아내의 주관적인 평과는 별개로 결혼 후 나는 꽤 많이 후덕해졌다. 넉넉하게 남던 셔츠는 단추 잠그기가 어렵게 되어 옷장 속에 오래도록 전시되고 있고, 전에는 가뿐히 달리던 거리를 지금은 그 반쯤에서 숨이 턱까지 차 멈추고는 한다. 아내의 요리 실력과 마음의 평안, 그리고 자유로워진 일상의 결과물이다. 늘 추구하는 영국 신사의 모습에 다가서고 있지만 그게 007 제임스 본드가 아니라 처칠 수상이라는 점이 아쉽기는 하다.


“여보 나 어때?”

내가 어떤 모습이건 어떤 옷을 입건 아내의 대답은 한결같다.

“오빠. 너무 잘 어울려.”
“오빠. 생각보다 더 괜찮은데?”

츄리닝을 입어도, 머리 크기에 비해 과하게 작은 모자를 써도 아내는 늘 같은 대답을 한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고도 말한다. 물론 진심은 아닐 것이다. 내가 어떤 옷을 버리겠다고 말하면 그 옷이 너무 마음에 안 들었는데 속이 시원하다고 기뻐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그래도 그 거짓말이 듣기에 나쁘지 않다. 나도 잘해야겠다고 마음먹게 한다.


연애 시절 아내에게 말했다.

“자기. 자기는 똑똑하니까 자기가 평강공주해요.
나는 바보 온달할게.
그 이야기를 보면 평강 공주가 바보 온달을 살뜰히 보살펴서
능력 있는 장군으로 만들잖아.
 나도 노력할테니까 우리 그렇게 살자.”

내가 생각해도 멋진 비유라고 생각하며 말을 전했는데 아내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음.. 오빠. 난 평강공주 싫어요. 우리 그렇게 살지는 말아요.”
“왜요?”
“음..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이야기는 비극이잖아.”

생각지도 못 했다. 온달은 화살을 맞고 전사(轉死)하는데... 행복한 초반부의 서사만을 생각하던 나보다 더 깊은 생각을 하는 아내다.

“아.. 그렇네? 그래요. 자기. 우리 그런 거 하지 말고 둘이 행복하게 재밌게 잘살아요!”

결혼 생활을 하며 종종 생각했다.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더 잘 어울리는 이야기는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현명한 아내 덕에 나도 많이 성장하고 있으니 바보 온달이 맞는 것 같은데. 행복한 결말이 있는 우리의 이야기는 없는 걸까?


오늘 나를 안아주는 아내를 보며 깨달았다. 우리와 꼭 닮은 부부의 모습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유명한 부부다. 호머와 마지. 심슨 부부다.


호머의 모든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마지 심슨. 누구보다 현명하지만 늘 호머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사랑해주는 여자. 내 아내와 마지는 많이 닮았다. 마지는 호머의 부족한 모습을 탓하는 법이 없다. 꼼꼼하고 재주가 많은 마지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한 호머이지만 그 둘은 서로를 위하고 사랑한다.  

 

호머 심슨 : “정신 똑바로 차리라구. 110kg이라니.
아.. 나는 뚱보네.
왜 몸에 좋은 것들은 다 그렇게 맛있는 거지?
좋아.
이제부터 매일 운동을 해야겠어!”


어리숙하고 바보 같지만 늘 자신만만한 호머 심슨. 도넛을 입에 달고 사니 뚱뚱해질 수밖에 없다. 그 거대한 배를 보며 뚱뚱하다고 슬퍼하는 호머에게 아내가 말한다.


마지심슨: “당신은 뚱보가 아니에요, 호머.
당신은 내 크고 사랑스러운 아기곰이에요.”


오늘 나를 안아주던 아내의 모습이 꼭 이 장면과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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