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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선생 Nov 04. 2019

아내가 옳다

마음 내려놓기

 주말 내내 앓았다. 살갗은 스치기만 해도 아프고 오한에 고생을 했다. 밤에 잠을 이룰 수도 없었다. 열이 올랐다. 아내는 아픈 나를 걱정했다. 처음엔 환절기라 심한 감기를 앓는줄 알았다. 큰 덩치이지만 잔병치레가 꽤 있는 편이니까. 하지만 곧 통증의 원인을 알았다.


‘무리한 운동으로 인한 근육통’


 멋진 새 집에 걸맞게 생활하겠다며 헬스장에서 오버한 탓이다. 통유리로 비치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땀을 흠뻑 적시게 러닝머신 위를 달렸다. 근육질 아저씨들이 달아 놓은 무게의 반도 안 되는 무게로 운동 기구를 들었다 놨다 했다. 1년도 넘게 운동다운 운동을 하지 않던 몸에 몹쓸 짓을 하니 몸이 반응하는 것은 당연했다.


“오빠. 오빠는 너~무 자기 연민이 심해. 다들 저마다의 저력이 있어.
아버님도, 어머님도, 아주버님도 어렵지만 잘 살아오셨잖아.
오빠는 그 분들에게 연민을 느끼면서,
또 그런 자신을 엄청 불쌍한 사람으로 생각해.”


아내가 말했다. 지난 번 글을 올리고 내게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다.

‘아니, 내 글을 어떻게 봤지? 다음 메인에 또 내 글이 걸렸나? 너무 사람들이 많이 봐도 이런 문제가 생기네.’

낯간지러워하며 아내에게 물었다.

“다음에서 내 글 봤어?”
“응? 아니? 무슨 소리야? 오빠 카톡에 새 글 알림이 떠서 뭔가 본 건데?”

아... 카톡이랑 연동이 되어 있었구나..

그렇게 내 비밀 브런치 생활은 끝이 났다. 그리고 내 모습을 돌아봤다.


   아내의 말이 맞았다. 좋은 아파트에 살며, 헬스 후 근육통에 고민하는 내가 ‘가난’이니 ‘어려움’이니, 온 세상의 어려움을 다 짊어진 것처럼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다들 각자의 삶의 무게만큼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비록 그게 가족이라도 그들의 무게를 온전히 내가 나눌 수는 없다. 난 그걸 인정하기 싫었다. 가난의 기억에서 오는 학습된 죄책감을 벗으려 내 몫의 삶의 무게조차 타인에게 넘기고 싶었던 것 같다.


   아내의 말이 맞았다. 부모님이 힘든 상황이지만 긍정적인 모습도 많다. 두 분 다 큰 병은 없으시다. 60이 꽤 넘으셨는데도 소득이 있다. 상계동 끄트머리지만 자신들의 작은 보금자리를 가지고 계시고, 요즘은 주말에 함께 나들이도 나가신다. 아빠는 여전히 괴팍하지만 엄마에게 감사해한다. 엄마는 버거워하지만 아빠를 아낀다. 이 정도면 됐지.. 반지하 단칸방에 온 가족이 모여 살던 그 시절에 비하면 우린 얼마나 나아갔는데...


“너네 집 앞으로 고구마 두 박스 보냈어. 니 와이프가 고구마 좋아하잖아.”


엄마의 전화다.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돈을 주겠다거나, 우린 이미 고구마를 샀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 마음 그대로 엄마도 나도 온전한 기쁨을 누리고 싶다. 삶 속 소소한 즐거움을 연민이란 감정 속에 묻어 버리고 싶지 않아졌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거기 고구마 진짜 맛있잖아요.”


이번 글은 원래 형에 대해 쓰려고 했다. 나와는 정말 안 맞는 우리 형. 그 형을 그려야 ‘엉망진창이지만 우리 가족’이라는 소개를 완성할 것 같아서다. 하지만 다음 글에 써야겠다. 슬프고 힘들기만 한, 내 상상 속 가족의 형의 모습이 아니라 조금은 더 담백하고 밝은 모습으로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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