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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선생 Oct 30. 2019

엄마, 미안해. 불효자가 돼야겠어

58년생 이 여사 이야기

 58년생 이 여사는 요즘 속이 많이 상한다. 둘째 아들 장가를 잘못 보내 아들 하나 베려 놓았다는 생각에 밤마다 몇 번이고 잠에서 깬다. 힘겨운 집안 환경에도 착실하게 커 번듯한 교사가 된 우리 아들. 그 아들이 많이 변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결혼을 결사반대했어야 했는데...’
‘며느리 하나 잘못 들어와서 내가 이 속을 끓이는구나..’

이 여사는 과거를 곱씹으며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요즘 젊은 애들과 다를 줄 알았는데... 여리고 착한 줄만 알았던 둘째 며느리가 이렇게 나올 줄이야. TV에서만 보던 요즘 것들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가 된 것이 이 여사는 믿기지가 않는다. 만나는 사람마다 며느리 자랑을 늘어놓던 자신이었다. 꼭 바보가 된 것만 같아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린다. 같이 살고 있는 저 화상에게 이 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없으니 쓰린 속을 혼자 삭힐 수밖에 없다.


  고된 인생이었다. 공부밖에 모르는 샌님이던 이 여사의 아버지는 이 여사가 국민학교에 막 들어갈 무렵엔 더 이상 곁에 없었다. 홀로 된 엄마 밑에서 더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이 여사다. 어린 그녀는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김밥을 팔고, 방앗간 일을 돕고, 미싱을 돌렸다.

“엄마는 동네에서 공부를 제일 잘했어. 그런데도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 하고 니들 외삼촌, 이모 먹여 살리느라 평생을 일했어!! 그런데 넌 왜 공부를 안 하는 거야!!”

  이 여사의 아들이 사고를 치는 날엔 이 여사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그리 좋은 훈육은 아니었지만,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공부하지 못한 한(恨). 그래도 그 시절엔 다들 그렇게 살았으니까. 이 여사도 원치 않은 체념을 하며 주어진 운명을 살아냈다.


  그래도 이 여사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고생만 시키던 남편이 미워도, 거칠게 반항하던 첫째 아들이 힘겨워도, 둘째 아들은 삶의 보람이었다. 미싱 페달을 오전 내내 밟고 지친 몸으로 소파에 누우면 작은 몸으로 이 여사에게 안겨 하루 일을 조잘거리던 내 아들. 그녀는 그런 아들을 종달새라 불렀다. 내 종달새. 자신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주던 작은 아이다. 그 흔한 태권도 학원 하나도 못 보낸 게 마음에 걸렸지만 아들은 혼자 집을 지키면서도 불평 하나가 없었다. 공부도 곧잘 해 가끔 받아오는 상장으로 자랑거리가 되던 녀석. 반장 선거에 나가 임원이 되면, "엄마는 학부모들 모임에 갈 수도 없는데 왜 임원 같은 걸 했냐"고 타박도 했다. 그래도 또래들한테 인정받는구나 싶어 기특했다. 그 아들이 변했다. 낯설어졌다.


  결혼이 문제였다. 아니, 아들 내미 장가보낼 돈이 없던 자신이 문제였던가? 이 여사는 혼란스럽다. 예쁘고 싹싹한 여자 아이였다. 많이 배우고 좋은 직장을 가진 아이가 내 아들과 결혼을 하겠다고 나타났다. 암.. 이렇게 잘 키운 내 아이와 어울리는 짝이지. 그렇고 말고. 자리를 못 잡은 첫째 아들에게 그간 모은 돈을 지원해주고 나니 둘째까지는 여력이 되지 않았다. “엄마. 나 결혼할 때 혹시 조금 지원해줄 수 있어요?” 평생 그런 말이 없던 아이가 스물 후반 어느 날 물었더랬다. 그때 답했던 게 아직도 마음에 걸리던 차였다.

“B야. 너도 알지만 형이 저러고 있는데 어떻게 너까지 해줄 수 있겠니.”
“알겠어요. 그냥 물어봤던 거예요.”

  스치듯 주고받은 대화가 몇 년이 지나도 걸렸는데 이 여자아이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자기들도 다 컸으니 자기들이 알아서 결혼을 한다니.. 얼마나 기특한 아이인가. ‘내가 말년에 복이 많다.’ 이 여사는 고생했던 지난날이 보상받는 기분을 느낀다. 요즘 애들은 다 지 껏만 챙긴다는 데 이런 참한 아이가 우리 집안에 들어오다니 이 얼마나 큰 복인지 이 여사는 기쁘기만 했다.


  몇 년간 이 여사는 좋은 시어머니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요즘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듣고, 친구들과도 이야기했다. 다른 친구들은 며느리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요구하는 것도 많았다. 자신은 자식 내외 걱정과 배려를 해주니 나만한 사람은 없다 싶기도 했다. 몸이 약한 둘째 며느리에게 계절마다 한약을 지어 보냈다. 명절 때가 아니면 자주 부르지도 않았다. 가끔 전화통화를 할 때면 우리 며느리 잘한다, 기특하다를 입에 붙이고 살았다. 이 애들은 힘들 것도 없겠다 싶었다. 나 때는 시어머니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옛날을 떠 올리며 신식 시어머니인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래. 이게 가족이지. 이번 명절에는 첫째 며느리랑 둘째 며느리랑 다 같이 모여서 처음으로 음식도 같이 하고 명절 분위기도 내야겠다 마음먹는다.


“엄마. 며느리는 남이에요. 딸이 아니에요.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없어요. 우리는 명절 당일 날 가서 아침 점심만 먹고 올 거예요. 하룻밤 자고 그런 거 안 해요.”


  둘째 아들이 언성을 높인다. 아니, 얘가 왜 이러는 걸까. 명절날엔 전날에 다 같이 모여 분위기도 내고 본가에서 하룻밤 묵는 것은 우리 풍습이 아닌가. 내가 뭐 대단한 걸 바란 것도 아니다. 왜 고작 이런 것도 못한다고 이렇게 뻗대는 걸까. 이 여사가 알던 착한 아들이 아니다. 이 여사는 고민이 된다. 그래.. 이 녀석이 지 딴에는 지 와이프 힘들까 봐 이러는구나. 우리 둘째에게 직접 전화해서 잘 풀어봐야지. 그날 밤 이 여사는 사랑스러운 둘째 며느리에게 전화를 건다.


“응. 우리 며느리~. 잘 지내지?”

반갑게 전화 통화를 하며 말을 꺼낸다.

 “우리 며느리는 니 남편처럼 나쁜 생각 하는 거 아니지? 요즘 젊은 며느리들은 그렇게 못된 행동도 한다고 하더라만 너는 안 그렇잖아.”

우리 착한 며느리는 나와 통하는 게 많으니까 내 마음을 먼저 읽고 대답해주리라. 당연한 기대로 답을 기다린다.


“어머님... 저는 남편과 같은 생각이에요.”


  아...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며느리는 그치지 않고 그간 서운했던 일들을 이 여사에게 쏟아낸다. 아니, 잘해준 것은 싹 잊고 작은 것들만 크게 기억해서 내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너무 맹랑하고 당돌하다. 이 여사는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이제야 깨닫는다. 내 착한 아들이 변한 이유가 있었구나. 이 아이가 자기 남편에게 바람을 넣었구나. 내가 며느리를 잘못 들였구나. 이 여사의 세상은 금이 가고 깨지고 무너져 내린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추석은 한 달도 더 된 과거가 되었다. 하지만 이 여사의 시간은 추석에 멈춰서 있다. 그 후 전화 한 통이 없는 며느리가 괘씸하다가, 바보 같은 둘째 아들이 밉고, 이런 줄 모르고 평생을 산 자신이 원망스럽다. 평생 고생만 한 내 인생을 지가 알까.. 아내 편만 드는 아들은 날 위로해줄 줄을 모른다. 어릴 때 그렇게 힘이 되던 내 종달새가 저 멀리로 날아가버렸다.


“엄마. 엄마 마음을 다 알아요. 엄마 생각을 바꿀 마음은 없어요. 엄마가 잘못했다고도 생각하지도 않아요. 다만, 나는 와이프의 잘못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와이프 생각을 바꿀 마음도 없어요. 엄마가 정말 그렇게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다면 다 괜찮아요. 다만, 내 와이프는 바뀌지 않을 거니까 서로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는 방법도 생각해볼 거예요.”


  모질게 이야기하며 돌아서는 아들은 지 어미 가슴에 대못 또 하나를 박는 줄 모르고 차갑게 멀어져 간다. 이 여사는 오늘도 잠자리에 들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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