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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선생 Oct 27. 2019

내 사랑하는 페미니스트 아내

82년생 김지영과 아내

 여느 흔한 연애와 다르지 않았다. 직장 동료의 소개로 한 여성을 만났고 1년 반쯤의 연애 후 우리는 결혼을 했다. 나는 그 사람이 좋았다. 이청준의 소설 한 토막을 소개해주며 눈물을 보이는 따뜻함도, 같은 직업을 가졌기에 나눌 수 있던 공감대도, 늘 내 입장에서 생각하며 말해주는 배려심도 좋았다. 물론 마음에 쏙 드는 예쁜 사람이라는 점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를 온전히 이해받는다는 느낌.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사귄 지 1년 쯤 되던 어느 저녁. 여느 때처럼의 긴 통화 중 그녀가 말했다.

“오빠. 그런데 오빠 나랑 결혼할 생각이 있어요?”

 갑자기 던진 그녀의 질문이 뜬금없기는 했지만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30대 연인이라면 결혼을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대답은 쉬웠다.

“그럼요. 나는 진지하게 만나고 있어요. 자기는요?”

 그녀가 답했다. 다만, 이번엔 나를 당황하게 했다.

“아! 오빠. 그러면 1월 말에 유럽 비행기 표가 얼리버드로 싸게 나왔는데 내일 모레까지예요. 우리 이거 예매할까요?”
“아...”


 그녀가 내게 했던 프러포즈다. 결혼을 준비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왜 나와 결혼하기로 했냐고. 그녀가 말했다. 평생을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온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했다. 오빠와 함께라면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나 자신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도 더했다. 쉬운 이야기였다. 평생 큰 고집 안 부리고 살아온 내겐 어려울 것 하나 없었다. 적어도 그 때 마음에는. 그렇게 우리는 결혼했다.


 어제 함께 영화 한 편을 봤다. 그 두 시간 동안 아내는 많이 울었다. 나는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영화 속 명절은 우리의 지난 추석이었다. 예쁜 앞치마를 아내에게 선물하던 모습, 몸이 약해 아이가 안 들어서는 거라며 보낸 한약. TV만 응시하던 아빠와 늦잠을 자던 형. 추석 전에 울며불며 내게 토로한 마음을 단 한 마디도 내 부모에게 전하지 못 하며 부엌을 오가던 아내와 형수. 그리고 무기력하게 주변을 서성거리며 머쓱해하는 나...


 “오빠 하나만 믿고 결혼했어. 나 공부 정말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갔고, 장학금도 받으면서 다녔고, 좋은 직장에서 인정받으면서 열심히 살았어. 결혼하고도 나답게 살고 싶어서 양가에 조금도 기대지 않고 잘 해보려고 했어. 그런데 이게 뭐야... 이건 내가 아니야. 어디서나 당당하고, 씩씩한 내 모습이 아니야.”


눈이 새빨개지도록 울던 아내에게 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라든가 ‘내가 엄마랑 전화로 추석 때 안 간다고 얼마나 싸웠는지 알잖아.’ 같은 이야기로 변명할까 생각했지만, 역시 변명일 뿐이다.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다. 아내가 틀리지 않았으니까. 나와 결혼해서 당신이 많이 아픈 거니까.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나오며 아내와 영화 이야기를 했다. 곁가지들. 그렇게 울어 놓고는 남자 주인공 친구들이 너무 늙어서 이입이 안됐다는 영화평을 한다. 비난보다 더 아프다. 난 공유가 연기를 너무 잘했다고 말했다. 마치 영화 속 상황은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는 듯, 비주얼 배우가 과감한 선택을 했다며 평을 늘어 놓았다.

82년생 김지영보다 86년생 K씨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고 믿었다. 같잖은 사회과학서 몇 권을 읽고 쌓은 지식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더 잘 하리다짐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페미니스트와 결혼했다. 그녀는 그녀답게 살기 위해서 나와 결혼했다. 페미니스트 K씨는 나를 사랑한 죄로 많이 아프고 힘들다.


 “니가 아픈 게 다 내 탓인 것만 같아서..”

영화 속 오열하는 공유의 한 마디가 내 가슴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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