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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07. 2023

제발 그 어묵탕을 변기에 넣지마… -1

메챠쿠챠 와타시노 일상

소설 마션의 도입부를 인용하자면,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2017년 28세 천안의 바리스타 타요쿠.

인근한 카페 바리스타 중 가장 높은 연봉을 받고 있다. 그래봐야 이 생태계가 워낙 박봉인지라 이천오백만 원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세금 떼고 실수령 백만 원 후반의 돈으로 한 달을 살아남는다.


위태로운 가계 경제 탓에 얼마 전 기존에 살던 곳보다 저렴한 원룸으로 이사했다. 월세만 따지면 전보다 저렴하지만 옵션 확인을 잘못해서 인터넷을 따로 가입해야 했던 탓에 고정 지출 금액은 똑같아졌다는 사실은 굳이 적지 않겠다. 결과적으로 같은 같은 금액을 나누어 각각 다른 곳에 송금하며  전보다 컨디션이 더 낮은 집에서 살게 되었다고는 아아, 나는 도저히 적을 수가 없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돌아온 너저분한 집에서 다 큰 사내가 홀로 할 일이 뭐가 있었을까. 운동과 위로. 그리고 혼술. 일주일에 사나흘은 술잔을 기울였다. 주종과 안주를 달리해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을 덜었다.


오늘은 어묵탕과 데운 사케가 식탁 위에 올랐다. 먹기 좋게 퉁퉁 불은 어묵과 따뜻하게 데운 사케, 조도가 낮은 방, 보고 싶었던 영화, 한겨울, 적당히 스며드는 외풍. 한 시간 남짓 낭만적인 시간이 지나고 자리를 정리하며 나는 무심코 남은 어묵탕을 변기에 부었다. 그리고 변기물을 내림으로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꽉 막힌 변기를 넘어 흐르는 물에 화장실 타일이 젖었다. 늦은 밤. 사방으로 뛰어다니지는 않고 가만히 방 한구석에 앉아 휴대전화로 인근 마트를 검색했으나(아아… 문명의 노예여.) 뚫어뻥을 팔만한 곳들은 이미 영업을 종료한 뒤였다. 버리기 전 어묵과 무의 크기가 컸다. 뚫어뻥으로 밀어냈다가는 일만 더 커진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현명하게 생각하자. 현명하게… 그렇게 현자를 자처하며 내린 결론.


‘변기를 통째로 뜯어내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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