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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15. 2023

아아, 멀고도 험하도다. 신분상승. -3

메챠쿠챠 와타시노 일상.


마주 선 우리. 나는 들은 적이 있었다. 다른 일진 영감님과는 다르게 지금 내가 마주한 영감님께서는 거친 말과 껄렁한 태도를 빼면 소위 좁밥이라고. 소문과 같았다.



한바탕 드잡이를 끝내고 우리는 다시 운동장으로 나왔다. 영감님께서는 드잡이 내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집으로 향하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야, 세 달 뒤에 다시 싸우자.”


이새끼,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싸움을 약속하고 한다고? 진정 이따위 말이 고등학교 2학년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인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을 또래의 입에서 들었다. 마땅한 수준의 답변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으응.이라고 얼버무리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학교 정문을 나서던 중 방향이 같은 친구를 만나 같이 걸었다. 일진 영감님들 중 한 명을 잡았다는 생각에 뿌듯해하며 이것이야말로 신분 상승의 기회가 아니겠냐고 친구에게 신이 나서 떠드는데 누군가 내 머리채를 잡았다. 그러고는 아래로 당겨 때리기 시작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이에게, 이 매거진의 제목처럼 정말 메챠쿠챠 맞았다. 그의 매타작이 멎고 나서야 비로소 고개를 들 수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일진회라는 카르텔, 그에 소속된 영감님들과 그들의 종놈들이 나와 내 친구의 앞을 반원으로 둘러 서 계셨다. 그들은 적게 잡아도 이십 명. 우리는 아니, 옆에 선 이 친구와 나를 우리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혼자였다.


내게 매타작을 하사하신 영감님께서는 내게 무어라 떠들고 계셨는데 귀를 맞은 통에 계속해서 나는 삐 소리 때문에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 영감님으로 말하자면 나보다 키가 반만하고 더 말랐으나 배포가 어찌나 큰지, 선생님이 짜증 나게 했다는 이유로 수업 시간 도중에 교실에서 나와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운 업적을 갖고 계셨다. 무어라 떠들던 그는 할 말이 다 끝났는지 뒤돌아 무리 사이로 사라졌다. 그제야 귀가 트였다. 영감님 무리 중 구석 한켠에 서있던 다른 영감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더 할거면 오고.”


더 한다는 건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는 얘기인가? 아아.. 신분 상승의 길이 이리 멀고도 험한 것이었던가. 나는 그들을 등지고 걸었다. 패배감보다 그들의 보복이 아직 끝난 것은 아닐지 무서웠다. 두려웠다.


이튿날 전교에는 소문이 돌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영감님들 중 한 명을 이긴 이야기는 쏙 빠져있었다. 오롯이 내가 두드려 맞기만 한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내 신분은 천민에서 좁밥이라 불리는 노예로 강등되었다. 졸업 후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은 나를 좁밥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영감님들 쇤네 천안을 떠나 서울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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