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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09. 2023

제발 그 어묵탕을 변기에 넣지마… -2

메챠쿠챠 와타시노 일상

종종 막힌 변기가 수압만으로 뚫리는 것을 경험한 바, 이번에도 희망을 품고 변기 수조에 물이 찰 때마다 레버를 눌렀다. 얇은 벽 하나를 두고 복도와 맞닿아 있는 화장실은 외풍이 가장 심했다. 들이치는 새벽의 한기와 레버를 누를 때마다 넘쳐흐르는 차디찬 변기 물이 타일을 얼렸고 그 위에 얹은 두 발은 시리고 시리더니 이제는 푸르뎅뎅 부어올라 감각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변기 물은 빠지지 않았다. 금붕어 키우면 딱 좋겠네. 그런데 한겨울에도 붕어가 살 수 있던가? 하는 의문을 뒤로하고 나는 화장실을 나왔다. 일단 언 발에 물기를 닦아내고 전기장판이 깔린 이불 속에 넣어 녹였다. 휴대전화로 몇 시간 전 네이버 지식인에 올려놓은 질문을 확인했다. 답변이 없었다. 암, 지식인들도 주무셔야지. 검색 또한 확실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도리어 뚫어뻥으로 밀어내려고 하다가는 큰 공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겁을 줬다.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입고 있던 반팔을 벗어던지고 문지방을 넘었다. 변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고놈의 목구녕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무언가 손에 쥐였다. 무 아니면 어묵일 터인데 보이지 않는 그 짧은 순간 소름이 끼쳤다. 꽉 쥔 손을 빼내었다. 역시 무였다. 다시 손을 넣었다. 손가락에 살짝 닿기는 하지만 손에 쥘 수는 없었다. 실랑이가 시작됐고 한동안 이어졌다. 얼었다 녹은 발이 다시 얼었다. 손과 팔도 버얼겋게 색이 변했다. 그리고 이 글을 마냥 웃기게 적고 싶은데 왜 점점 처절해지는지 나는 모르겠다. 얼어버린 손과 발을 녹여야 될 것 같았다. 밖으로 향하는데 감각이 둔해진 발바닥에 무언가 밟혔다. 곰팡이가 슨 석고였다. 변기를 바닥에 고정하는 석고는 샤워를 하다 보면 종종 떨어져 나와 발에 밟히고는 했다. 시선이 변기의 아랫부분으로 향했다. 석고가 반 이상 떨어져 나갔다. 이제 막 운동을 시작한 초심자의 치기였는지, 해결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어쩌면 사고라는 것을 더 하기 귀찮아졌는지. 나는 변기 수조를 들어내 바닥에 고이 두었다. 그리고 변기의 테두리를 잡고 바닥에서 뽑아내듯이 들어 올렸다.


타일 위에 들어낸 변기를 눕혀 고여있던 물을 따라냈다. 변기와 바닥의 접합부를 보니 어묵과 무가 끝까지 밀려 빼곡하게 껴있었다. 뚫어뻥을 썼다면 변기가 아니라 하수도를 막아 버렸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어묵과 무를 빼내고 다시 변기를 원래 자리에 바로 두었다. 그리고 수조를 올렸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멀쩡한 모습에 안심하고 몸을 씻은 후 화장실에서 나와 이불 속에 몸을 묻었다. 전기장판에 달궈진 이불이 세상 그렇게 따뜻하고 포근할 수가 없었다. 일을 완벽하게 해결했다는 보람에 젖어 잠에 들었다.



이튿날, 눈을 뜨자마자 화장실로 향했다. 전날 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멀끔했다. 소변을 볼 때까지도. 평소와 같이 출근 준비를 마치고 현관을 나서자 변의가 느껴졌다. 당장은 아니지만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는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아 다시 방으로 들어와 옷을 벗었다. 그리고 앉은 변기는 덜컹 소리를 내더니 왼쪽으로 기울었다가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힘에 다시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전날 마신 술 때문인지 이미 시작된 거사는 자의로 멈출 수 없는 수준이었고 그런 와중에 조준하랴 넘어지지 않으랴 결국 몸을 한껏 숙여 벽에 손을 집고서야 흔들거리는 변기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술은 나를 강하게 했고 또 나를 현명하게 했다. 그리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무모했던 나를 후회한다. 아아, 그래서인가? 그래서 디오니 소스가 포도주의 신이자 동시에 광기의 신이기도 한 건가?’


따위의 생각을 하며 중심을 잡았다. 어디 한군데 조금만 힘 조절을 잘 못해도 무너질 듯한 변기 위에서. 아랫배와 양 다리까지. 세 군데에 힘을 적절히 주기가 여간 성가시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뒤 방문한 관리인 아저씨께서는 일의 경위 들으시고는 힘이 대단하다며 혼내기는커녕 칭찬하셨다. 그러고는 도리어 노후화된 시설을 방관하는 집주인을 욕하셨다. 변기는 석고를 다시 바르는 것으로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아저씨께서는 남는 재료로 한 것이니 비용은 됐다고 사양하셨다. 그 후 몇 개월 뒤, 계약 기간 일 년을 다 채우고 나는 다른 원룸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금붕어를 키우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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