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성 원형탈모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사무실의 업무 강도는 갈수록 심해졌다. 일하는 사람은 늘어났지만 업무가 늘어나는 속도를 따라가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나의 주된 업무였던 공모전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하게 모두들 더 많은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었고 더 열정적으로 달라붙었지만 효율은 도리어 더 떨어지고 있었다. 동시에 나를 포함한 직원들 모두 자신들의 생각을 주장하는 데는 더 격렬해지고 있었다. 나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이제껏 당선된 공모전에서 나의 역할은 대체 불가이지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나의 생각을 남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것에 알 수 없는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나의 의견이 가장 맞으니 그것에 동의해줬으면 하는, 적어도 내가 맞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어느새 프로젝트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생활은 더 피폐해지고 있었다. 당시 베를린과 바르셀로나를 오가던 장거리 연애 생활은 이미 한계에 다다렀고 언제까지 이렇게 길바닥에 돈을 뿌리고 다닐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냥 모든 게 다 싫었다. 아니, 싫어지고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지인이 ‘어? 이게 뭐야’ 라며 내 머릿속의 땜빵을 발견했다.


“어? 잠깐만 그게 뭐야?”


“응? 뭐?”


“가만있어봐. 머릿속에 뭐가 있는 거 같은데?”


“(머릿속을 훌훌 털며) 이쪽? 아님 이쪽?”


“세상에, 너 여기 머리 빠진 거 알았어?”


“뭐? 머리? 어디가? 머리가 빠졌다고?”


(더듬더듬 머릿속을 만졌다) 갑자기 밋밋한 부분이 만져졌다. 나도 모르게 이야기했다.


“뭐야 크기가 얼만 한데? 그렇게 커? 그럼 나 볼 수 있게 사진 찍어봐.”

아.. 지금 봐도 끔찍하다. 원형탈모

사진으로 내 머릿속을 본 나는 충격에 빠졌다. 당연히 혼자 살았으니 어떻게 원형탈모를 스스로 알 수 있었겠는가. 우연히 타인에 의해 발견된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한 나의 땜빵은 정말 충격이었다. 느닷없이 심장마사지를 받는 기분이었다.


물론, 그즈음에 스트레스가 좀 많기는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뭐 그렇게 스트레스받을 일인가 싶지만 어디 일하는 게 그런가. 서로 얽혀 과도한 의욕들로 가득 찬 사람들이 열정을 바늘의 끝처럼 날카로운 지점에 모두 쏟아내면 그게 바로 용광로인걸. 뒷목을 쓸어내리는 듯한 느낌을 종종 받기는 했었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그러고 집에 가면 저녁을 대강 먹고 편히 쉬질 못했다. (물론 저녁 먹기 애매할 정도로 늦게 끝나는 날도 수두룩 했지만 말이다.)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석사 수업 준비, 나에게 로또를 안겨줄 개인 공모전, 자잘한 집안일 등 자는 시간 빼고는 머리나 마음이나 편히 쉬질 못했다.


실은 몇 년 전, 나의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던 시절, 그가 심각한 원형탈모를 겪고 있다는 얘기를 어머니를 통해 전해 들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미 마드리드 편에 많이 털어놓았다.) 그때만 해도 잘 상상이 안 갔다. 원형 탈모라는 것이 어떤 모양으로, 어떤 원인들로 인해 나타나는 것인지. 그저 어머니가 ‘ 너 아버지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앞에서 보일만한 위치에 휑하게 머리가 빠졌다’고 하셨을 땐, 그냥 막연히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으셨나 보다 싶었다. 심지어 얼마 후 나는 아버지의 “땜빵”을 실물로 목격했고 그 심각성을 본인에게 적나라하게 들었다. 더 신기한 것은 그의 땜빵에선 기존의 머리 색깔과 다른 아예 하얀 흰머리가 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억지로 가리기 위해 모자를 즐겨 착용하고 있었다. 마음이 참 안타깝고 답답했지만 설마 몇 년 후에 내가 저 증상을 겪을 거라고는 정말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굳이 유전적으로 연관 짓지 않아도 우리 부자의 가장 핵심적인 원형탈모의 원인은 “과도한 스트레스”였다.


이 동그란 원형탈모는 내가 생각이 많아지게 했다. ‘내가 정말 행복한가’하는 철학적 질문부터, ‘당장 나의 상황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하는 현실적 질문까지 갖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대로는 아니다’라는 결론에 아주 가깝게 다가가도록 이끌었다. 무언가 저 먼 미래를 생각하며 ‘아, 지금 이렇게 무비자에 빠듯한 월급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하지’라고 고민하던 나에게 원형탈모는 ‘그래서 지금 내가 무얼 할 수 있지?’라는 실천적 질문을 하게 했다.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베를린에 있는 사무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를 떠난다면 스페인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건축일을 그만두면 모를까 계속 바르셀로나에 있는 한 내가 사랑하는 ‘건축’은 내 삶의 질을 계속 형편없게 만들 것임이 분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석사는 이제 첫 학기 중이었지만 그것을 끝내리라고는 감히 상상해보지도 못했다. 그럴 마음의 여유도,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다. 바르셀로나 곳곳에 건축을 공부한 사람들이 널려있었고 그 사람들 중 석사학위가 나은 더 나은 삶의 질을 보장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이것도 핑계였을 뿐,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 명분 좋은 ‘석사’ 학위도 나의 땜빵에 의한 충격을 완충시키지는 못했다. 결국 떠나려는 나의 엉덩이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짜 바르셀로나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나에게서 자라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를 떠나며 아쉬운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는 그 많은 것 중 단연코 이 생선 튀김이 가장 아쉬웠다. 구 시가지 끝 자락의 구석자리에 위치한 조그마한 이 가게는 할아버지들이 장사를 하신다. 그들만의 명칭을 보면 막역한 친구 사이들이신 것 같다. 집에서 만든 듯한 신선하고 차게 보관된 와인과 신선한 생선 튀김, 배고픈 자를 위한 초리쏘(소시지) 구이 등이 있다. 가게는 항상 인산인해라 가게 앞 골목에서 삼삼오오 모여 먹고 마신다. 상호는 사진을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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