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아 Mar 11. 2022

비하인드 스토리 1









퍼스널 도슨트 제이

비하인드 스토리

첫 번째





박물관들이 오디오 가이드를 팟캐스트에 올리기도 한다는 걸 모두 알고 계셨요? 뒤늦게 국립 중앙 박물관의 채널을 발견하고 산책 시간마다 짤막한 작품 소개를 챙겨 듣던 그날은 눈이 펑펑 쏟아지던 12월이었습니다. 코로나로 거리를 두게 된 전시에 대한 그리움을 오디오 가이드로 달래다 <퍼스널 도슨트 제이>의  밑그림이 완성되었니다.


홀로 듣는 오디오 가이드는 퍼스널 도슨트의 음성을 듣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도 그런 직업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외 체류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오디오 가이드를 제공하는 도슨트들이 있다고. 퍼스널의 P와 도슨트의 D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이니셜 J가 붙었습니다.


독일에 머물 때 언니는 내게 최대한 많은 전시를 보라고 얘기해주었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베를린은 박물관의 도시, 전시관의 도시입니다. 3년간 내가 들른 곳은 열 곳이 채 되지 않지만, 그곳에서 얻은 메시지들은(요즘 말로 인사이트) 여전히 내 안에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 언니의 말은 늘 옳아요.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는 '돌아온 수도자'라는 타이틀의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전시였습니다. 선선하면서도 부드러운 새벽의 공기, 아주 멀리서부터 내려오는 빛이 느껴지는 고요하고 깊은 그림들. 그의 그림으로 <퍼스널 도슨트 제이>의 문을 열게 되었고 '겨울 풍경' 그림 속 목발을 내던진 남자가 재우의 모티브가 되었니다.  그리고 그림을 중심으로 그의 대칭점에 선 인물로 문수가 완성되었습니다.


이야기를 위한 그림을 찾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지만 즐거웠습니다. 먼저 다분히 취향에 치우친 그림들을 다시 살피는 데서 출발했어요. 저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빛은 바랜 녹색 또는 모스 그린(이끼의 녹색) 컬러. 화려한 그림이나 추상적인 그림보다는, 구상을 담되 여백이 많고 조용한 그림을 좋아합니다. 조르조 모란디, 에드워드 호퍼,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폴 세잔의 그림들에 이 모든 것이 담겨있. 이 작가들을 (마치 세트처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보이지 않는 동지들을 발견한 기분이 들어 '혹시 당신도 사색적인 INFJ?'하고 묻고 싶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막힐 때는 그림들이 실마리가 되어주었어요. 그림을 이음쇠로 글을 쓰다 보니 글만 쓸 때보다 슬럼프를 빨리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영웅의 추락을 그림의 한쪽 구석에 그려 넣은 피터 브뤼겔의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은 재인의 심정에 빗대어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뒷면에 반전이 있는 비토레 카르파치오의 '편지걸이' 그림도 많은 것을 투영해볼 수 있는 멋진 작품이었어요. 오늘날의 SNS처럼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보인 편지걸이는 '이 작품을 설명하시오'라는 문수의 메시지와 연결 지을 수 있었습니다. 페니 브레이트라는 여성 화가의 발견도 반가웠고요. 이밖에도 소설에는 미처 담지 못한 매력적인 그림들을 참 많이 만났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부족한 글인데도 출퇴근길 짬을 내어

재우와 문수의 이야기를 들여다봐준 모든 들께.

그리고 또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고 마무리해낸 나에게.




이전 08화 머릿돌 작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