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솔을 찍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목적지는 섬의 북쪽 끝에 있는 키레니아. 여기를 가려면 섬 중앙에 자리 잡은 수도, 니코시아(Nicosia)를 거쳐야 한다.
가본 적 없지만 왠지 모르게 신비로운 감정을 들게 하는 ‘바그다드’처럼, ‘니코시아’는 이름만으로 나에게 아련한 동경심을 불러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렸을 적부터 TV가 전하는 국제뉴스 보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시절 단골 국제뉴스는 바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이란-이라크 전쟁이었다. 헌데, 이 뉴스들은 꼭 이렇게 시작했다.
‘니코시아에서 수신된 바에 따르면∼’
그때부터 궁금했다. 도대체 니코시아가 어디일까? 꼭 가보고 싶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너무나 익숙한 도시 니코시아에 지금 가고 있다. 남들이 보면 더위를 먹었구나 했겠지만, 내 딴에는 감격스러워 운전하는 내내 히죽거렸다. 인생의 버킷리스트 하나와 드디어 마주한다는 짜릿한 흥분이랄까.
니코시아는 한 나라의 수도답게 고층건물도 눈에 띄고 차들도 많았다. 여느 평범한 도시에 온 것 같지만, 곧 삼엄한 국경검문소와 마주하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웬 국경검문소? 하겠지만, 키프로스는 현재 남과 북으로 나뉜 분쟁국가 맞다.
습관처럼 대한민국을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이라 하지만, ‘냉전이 초래한’이라는 전제조건이 달려야 맞다. 왜냐하면 여러 사유로 분단되었지만, 통일을 꿈꾸는 아일랜드나 키프로스 같은 분단국가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찌 됐건, 분단의 모습은 우리나라나 키프로스나 비슷하다. 지난 1974년 이후 남측과 북측의 정치지도자들은 서로 가시 돋친 설전을 벌여왔으며, 외세를 등에 업고 타협 없는 적대정책을 이어갔다. 주민들은 서신이나 왕래조차 철저히 금지당했으며, 한순간 자기 집에서 쫓겨난 실향민들은 평생 고향을 그리다 늙어갔다.
하지만 십여 년 전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EU의 압박과 유엔의 중재로 양측 지도자들은 연방제 통일을 놓고 정상회담을 거듭하는 중이다. 2008년에는 굳게 닫혔던 국경선도 개방되어 관광객뿐만 아니라 주민들도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해졌다.
(사진4-10. 분단국가 키프로스 지도)
키프로스를 남북으로 가르는 국경선을 그린라인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휴전선과 비슷하게 라인을 두고 폭 100m의 비무장지대가 설정되어 있다. 유엔 평화유지군의 활동영역이기도 하다.
휴전선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린라인은 수도 한복판을 가로지른다. 그래서 니코시아는 지구상 유일의 분단된 수도라 불린다. 니코시아의 그린라인을 도보로 넘어갈 수 있는 유일한 국경검문소가 제일 번화한 리드라스 거리에 있다.
남북으로 길이가 약 1km 정도인 리드라스 거리는 과거 식민지 시절, 민족주의자들에 의한 영국 관리 암살이 빈번하게 일어나 ‘머더 마일(Murder Mile, 굳이 옮기자면 ‘살인 골목‘ 정도 될까?)’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리 양옆에 온갖 브랜드샵과 스타벅스 등 다국적 프랜차이즈 상점들이 즐비한 니코시아 최고의 번화가다.
손에 아이스크림 하나 들고 기분 좋게 산책하다 보면 별안간 도로가 뚝 끊기고 홀연히 국경이 나타난다. 갑자기 눈앞에 회중시계를 든 토끼를 발견한 앨리스 마냥, 익숙하고 평범해 보이는 곳에서 마주친 예기치 못한 낯설음에 잠시 멈칫. 하지만 곧바로 그 말하는 흰토끼를 쫓아 토끼굴 속으로 홀린 듯 들어갔다.
국경이라고 거창한 게 아니다. 활기찬 거리 한쪽에 차단봉이 설치되고, 그 안쪽으로 길게 늘어선 줄이 전부다. 거리 분위기상 처음엔 어느 유명 맛집의 대기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출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남측 출입국 관리소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면 북측 출입국 관리소가 나온다. 양측 관리소 사이의 그 짧은 구간에, 분단 전에는 리드라스 거리의 평범한 상점들이 있었을 건물들이 곳곳에 락카로 휘갈긴 정치적 구호를 문신처럼 새기고 텅 빈 채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분명 니코시아란 도시 안에 존재하고 있지만,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한다고 말할 수 없게 된 이상한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시간마저 유령처럼 고요한 그 공간을 단지 몇 발자국 내디뎠을 뿐인데, 북측 관리소를 넘어가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하다. 이게 정말 같은 니코시아 맞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반세기 동안의 분단이 남과 북의 시간을 서로 어긋나게 만든 것이다. 일종의 타임워프라고나 할까?
니코시아 북측의 터키인 지역은 남측의 정돈되고 세련된 모습과는 달리, 뭔가 조금 시골스럽다. 화려한 쇼윈도나 글로벌 브랜드 대신, 아랍의 수크나 터키 바자르 같은 거리풍경이 정겹다. 물가도 남측보다는 훨씬 싸다.
그런데 여느 아랍의 모스크와 외관부터 다르다. 분명 두 개의 첨탑(미나렛)이 우뚝 서 있지만, 외관은 틀림없는 고딕성당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더욱 확실해진다. 이 건축물은 기 드 뤼지냥의 후손들이 다스리던 십자군 왕국 시기에 건립된, ‘성스런 지혜’란 뜻의 아야소피아 성당이었다. 비록 내부는 하얗게 회칠이 되고 성화들은 모두 지워졌지만, 제단을 향해 늘어선 날렵한 기둥과 높다란 천장은 성당 본래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무슬림이 후대에 덧붙인 미흐랍(메카방향을 가리키는 표식)만이 어색하게 붙어 있을 뿐이다.
이곳은 십자군 왕국의 로열채플이었다. 키프로스 왕들이 대관식을 올렸고, 일부는 죽어서도 묻혔다. 1310년 템플기사단에 대한 이단 재판도 여기서 열렸다. 이후 1489년 키프로스가 베네치아 공국의 식민지가 되자마자 성당은 1491년 발생한 대지진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이때 성당 내 휴(Hugh) 3세 대왕(기 드 뤼지냥의 증손자뻘 되는 키프로스의 5대 왕이자 예루살렘 왕국의 왕이었다)의 무덤이 드러나자 베네치아인들은 무덤 속 화려한 금붙이 매장품을 몽땅 약탈해갔다.
뿐만 아니라, 베네치아인들은 지진을 복구하면서 니코시아를 완전 새롭게 탈바꿈시킨다. 그러면서 아야소피아 성당을 이 도시 리뉴얼 계획의 중심에 둔다.
베네치아 공국은 지금의 크로아티아 해안부터 그리스 코르푸 섬과 크레타를 거쳐 키프로스까지 동지중해에 이룩한 해상왕국을 방어하기 위해 전략적 요충지마다 성벽도시를 건설했다. 크로아티아의 자다르(Zadar)나 몬테네그로의 코토르(Kotor) 등이 지금도 원형 그대로 남아있어 ‘베네치아의 성벽도시’란 목록으로 201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바 있다.
그런데 방어용 성벽도시 중 몇몇은 ‘미스터리 서클(영국의 밀밭에 하룻밤 사이 복잡한 문양이 만들어진다는 불가사의한 현상)’처럼 공중에서 보면 특이한 패턴을 땅에 새긴 것 같아 눈에 확 들어온다. 일명, 스포르친다(Sforzinda)라 불리는 환상형의 형태다.
(사진4-13. 스포르친다 개념도)
자세히 보면, 도시의 기본 전개도는 8개의 꼭지점을 가진 별 모양이다. 각 꼭지점은 도시 중심에서 등간격을 유지하는데, 놀랍게도 사각형 두 개가 45도 각도로 겹쳐져 있는 이 기하학은 바위위의 돔 사원에서부터 쭉 봐왔던 ‘이슬람의 별’ 문양이다.
문양은 다시 꼭지점을 연결한 원 안에 위치하는데, 가장 바깥의 원이 해자가 된다. 돌출된 꼭지점에는 망루가 만들어지고 안쪽으로 모서리가 만나 내각을 이루는 곳에 게이트가 설치된다. 동시에 이 게이트는 도시 중앙 광장에서 뻗어나가는 방사형 도로의 출구가 된다.
완벽한 대칭에 중앙집중적인 도시계획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상 도시를 상징했다. ‘필라레테(Filarete, ‘미덕의 숭배자’)‘로 불린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아베르리노가 저작 「건축론」에서 처음 제안했다고 한다. 그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묘사한 도시에서 중심개념을 차용했다고 한다. 알다시피, <유토피아>는 평등을 대원칙으로,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 동일한 부와 지식을 가진 시민들이 벽으로 둘러싸인 기하학적 형태의 도시에서 거주하는 상상 속의 섬을 배경으로 한다. 그만큼 스포르친다는 물리적 평등의 개념을 확실히 구현한 도시계획이다. 하지만 실제 건설된 적은 없다.
그렇게 이론적으로만 그려졌던 이상적인 도시는 변형되긴 했지만, 베네치아 공국에 의해 일부 실현됐다. 가령 베네치아 인근 팔마노바(Palmanova)라는 도시가 그러하다.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베네치아를 보호하려고 만들어진 이 병영도시는 8개가 아닌, 9개의 꼭지점을 가진 환상형 계획을 보여주지만, 전형적인 스포르친다의 모델이다.
키프로스의 니코시아 역시 11개의 꼭지점과 3개의 게이트를 가진 변형된 스포르친다 패턴으로 복원되었다. 베네치아인들은 패턴을 구현하기 위해 아야소피아 성당(셀레미에 모스크)을 중심으로 약 600m 반경의 원을 그리고 성벽을 세웠다. (아래에 있는 중세 니코시아 지도에는 원 중심에서 아야소피아 성당이 바로 확인된다) 성벽은 많이 허물어졌지만, 기단부는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
그런데 성벽을 건설하면서 주변의 수많은 궁전과 성당, 주택들이 철거되었다. 성벽의 재료도 얻고, 시야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안타깝지만 그 와중에 템플기사단 성당도 파괴됐다. 동시에 성당 안에 있던 기 드 뤼지냥의 무덤도 함께 사라졌다. 니코시아에서 템플기사단의 구심점이 되어주던 그들의 성당이 어디쯤 있었는지 이제는 알 수가 없다. 이 파괴가 도시 리뉴얼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믿고 싶지만, 혹여 템플기사단의 보물을 노린 의도적 행위는 아니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안타깝다.
사진4-10 : By United States Central Intelligence Agency - CIA World Factbook: Cyprus.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3 June 2003.,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9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