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이 부서지고 새로 지어질 줄이야...
이런 생각은 못해봤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봤어야 했습니다.
4m 도로를 두고 건너편에 있는 앞집들은 단층 주택들이었습니다.
1980년대에 지어진 낡은 주택들.
3종 일반주거지역.
저는 언제든지 이 집들이 부서지고 높은 새 건물이 들어설 거라고 상상해 본 뒤 건물 구입을 결정 했어야 했습니다.
제 건물은 도림천이 훤히 내려다 보일만큼 조망이 좋았는데 앞집의 단층 주택이 부서지고 6층짜리 새 건물이 들어선다면 도림천 조망을 다 가려버릴 것이 분명했으니까.
이 정도 생각은 했어야지.
안타깝게도 저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1종, 2종, 3종이라는 게 무슨 말인지도 몰랐는걸요.
2017년 어느 날, 건물에 들어갔는데 방마다 복도에 휴지 30 롤짜리 한 통씩 놓여있는 겁니다.
뭐지? 웬 휴지들이지?
앞집 건물 두 개가 같이 팔렸답니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 거라고.
곧 공사가 시작되는데 양해 좀 부탁한다고 새로운 건축주가 보내온 휴지였습니다.
큰일이다.
남쪽에 건물이 들어서면 조망도 가리고 해도 가리겠는 걸.
몇 층짜리가 지어지는 거지?
6층 짜리랍니다.
망했군.
아차 싶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조용하고 빠르게 공사나 했으면 좋겠다.
몇 달뒤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공사를 하는데 조용할 리가 없습니다.
날마다 왔다 갔다 하는 자재들. 아침 7시부터 뚝딱 거리는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저에게 말도 없이 우리 집 주차장을 자기들 주차장처럼 쓰는 사람들.
저는 화가 났지만 무작정 싸움을 하기보다는 협상을 하기로 했습니다.
도로는 비좁은 4미터 도로.
우리 집이 주차장을 내어주지 않으면 저 차들은 갈 곳이 없어 아수라장이 된다.
주차를 못하게 해서 공사를 방해할 필요는 없다. 대신 적당한 수준의 돈을 받자.
하루에 1만 원 정도면 어떨까? 이 정도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겠군.
건축주를 만났습니다.
공사를 얼마나 하냐 물어보니 6개월쯤 한답니다.
"그럼 200만 원만 주세요. 주차장 편하게 이용하면서 공사하는 게 훨씬 나을 겁니다."
건축주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알겠다고 합니다.
출근하느라 낮시간 동안 주차장 자리를 내어준 우리 집 세입자에게 이 200만 원을 그대로 줬습니다.
이 세입자의 차는 옆집 아줌마에게 칼부림 공격을 당해서 수리비가 잔뜩 나왔는데 그것도 물어줄 겸 해서.
이렇게 깔끔하게 처리하고 나니 저는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공사는 6개월보다 더 걸렸습니다.
주차장 요금을 추가로 받았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주차장 문제 외에도 우리 집 아래서 담배 피우고, 공사하면서 술 퍼먹은 쓰레기들 버리고 가고 하는 잔 문제들이 있었지만 이 정도는 너그럽게 넘어가 주기로 했습니다.
결국 공사가 끝나고 건물은 다 올라갔습니다.
우리 집은 더 이상 도림천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해도 조금 덜 들어오게 됐고요.
아쉬웠습니다. 그만큼 가치가 떨어져 버렸으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4미터 도로가 6미터로 조금 넓어진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요?
부동산을 구입할 때는 내 것만 보지 말고 주위에 있는 건물들까지 유심히 봐야 합니다.
내 건물은 그대로 있어도 주위의 건물들이 부서지고 새로 올라가면서 많은 것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걸 미리 잘 상상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업료치곤 좀 비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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