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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조 맨홀 뚜껑 사고 썰

건물을 사고 정화조 청소를 해야 한다는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정해진 기간마다 의무적으로 정화조 청소를 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똥을 싸고 물을 내리면 어디로 내려갈까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죠.


주택 소유주들은 최소한 1년에 한 번씩 정화조 청소를 해야 합니다.

매년 구청과 연계된 업체에서 연락이 오는데 전화로 날짜를 예약하면 똥차가 와서 똥을 퍼갑니다.

저는 지금까지 8번의 정화조 청소를 했지만 작업하는 걸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아저씨들이 알아서 정화조 뚜껑 열어서 작업해주시고 우편함에 영수증을 꼽아주고 가셨습니다.


올 해는 조금 달랐습니다.

정화조 아저씨가 청소가 끝난 뒤 전화를 해서는 뚜껑을 교체해야겠다고 말합니다.

"네? 뚜껑이요? 뚜껑은 왜요."

"이게 흔들흔들 하네요잉. 걸어가다 잘못하면 다치겠어요잉."

"네? 그걸 어떻게 교체를 해요? 어디서 어떻게 교체를 하면 되는데요?"

"글쎄, 그 뭐다냐 철공소에 한 번 알아보세요잉."

"철공소요? 철물점 말하시는 거예요?"

"철공소라고 있어요잉. 거기 연락하면 뚜껑 맞춰줄꺼에요잉."


아이고 골치야, 철공소는 또 뭐여.

찾아봐도 서울에 몇 개 있지도 않습니다. 진짜 이런 데서 뚜껑 교체를 하는 게 맞나?


정화조 뚜껑을 살펴보니 살짝 흔들거리기는 합니다만 누가 다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뭘 이 정도를 가지고 그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공소인지 뭔지 이상한 곳에 연락하기도 싫고 해서 그냥 넘어갑니다.




두 달쯤 지나서 정화조 뚜껑 앞을 지나다가 정화조 뚜껑이 훨씬 더 흔들리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헉 이건 큰일이다. 크게 다칠 수 있겠다.

정화조 뚜껑이 있는 곳은 필로티 주차장이었기 때문에 주차도 하고 사람도 지나다닙니다.

아마 자동차가 계속 들락날락하며 뚜껑을 밟아서 점점 더 흔들리게 된 것 같습니다.


오늘 바로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동네에 있는 철물점과 집수리를 해주는 곳에 전화를 해봤는데 다들 안된답니다.


큰일이네, 어쩌지?


쿠팡에 정화조 뚜껑이라고 검색해봤더니 엄청 많습니다.

지름만 알면 됩니다. 저희 집 정화조 뚜껑 지름은 600mm였습니다.



네이버에서 정화조 뚜껑 교체라고 찾아보니 블로그가 몇 개 보입니다.

그냥 뚜껑만 사서 교체하면 되는 것은 아니고 뚜껑 주변 콘크리트를 깨내고 새 뚜껑을 잘 자리 잡은 다음 다시 콘크리트로 굳히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사람을 불러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 군데 전화를 해서 물어봤습니다.

30만 원을 부르는 사람 1명

26만 원을 부르는 사람 2명이 있습니다.


이렇게 공사 약속을 잡을 때 저는 꼭 세 군데 정도 연락을 해서 알아봅니다.

전화해서 가격을 물어보고 뚜껑의 종류도 물어보고 종류별로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도 물어봅니다.

이렇게 여러 군데에 전화하는 건 약간의 품이 들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저도 앞으로 어떤 일들이 진행되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되고 눈탱이를 맞을 위험도 줄어듭니다.


가격 흥정은 짜증 나는 일이지만 날짜 흥정은 더 짜증이 납니다.

공사하는 아저씨들은 며칠 몇 시에 오겠다. 이 말하기가 그렇게 힘든가 봅니다.

"수요일에서 금요일 사이에 해드릴게요. 지금은 확정해서 말씀드리기가 어려워요."


아니 아니, 난 확실한 날짜와 시간을 원한다고.

그때 가봐서 더 좋은 건이 있으면 자신에게 유리하게 일정을 조율해가면서 일하겠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약속을 잡으려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26만 원을 부르고 시간 약속도 정확하게 잡은 분에게 일을 맡깁니다.

이틀 뒤에 와서 공사해주기로 했는데 그 이틀 동안 사고가 나진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주차하는 사람과 지나다니는 세입자들에게 정화조 뚜껑이 흔들흔들 하니 지나다닐 때 조심하라고 당부를 합니다.


아, 그런데 불길한 예감은 왜 피해가질 않나.

공사하기 바로 전 날, 계단 청소를 해주시는 분이 결국 사고를 당했습니다.

정화조 뚜껑을 밟고 지나가다 발이 껴서 넘어졌나 봅니다.


저에게 전화를 해서 빨리 교체를 하셔야겠다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많이 다치셨냐 물어보니 타박상 정도라고 괜찮다고 말하십니다.

그래도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청소 업체에도 조심하라고 미리 얘기를 해줬어야 하는 건데... 제가 놓쳤습니다.


보상금을 드리고 싶은데 얼마를 드릴까.

5만 원? 10만 원?

CCTV로 어떤 사고가 난 건지 돌려봅니다.

CCTV가 정화조 뚜껑 쪽을 향하고 있진 않아 확실하게 알 순 없지만 넘어지면서 청소도구를 놓치는 장면은 보입니다.

또 바지와 신발에 물을 계속 뿌리던 걸로 봐서 똥물이 튀었던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설마 발이 빠진 건가?

30만 원을 드리기로 합니다. 제 잘못이니까요.


이렇게 많이 안 주셔도 된다 하시며 미안해하셨습니다. 미안한 건 나인데.




결국 다음 날 공사를 마치고 제 마음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공사하는 것을 저도 지켜보고 대화도 나누며 많이 배웠습니다.

정화조 안에 그렇게 파리? 나방? 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을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나중에 더 큰 값을 치르곤 했습니다.

정화조 청소 후 아저씨가 처음 흔들거린다 말했을 때 바로 고쳤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정화조 뚜껑 공사비 26만 원 보다 많은 돈을 보상비로 쓰고 말았습니다.

몸이 좀 이상해도 병원에 안 가보는 것도 이와 비슷한 저의 나쁜 버릇 중 하나입니다.

이제는 이 버릇을 꼭 고칠 때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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