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망치지 않기로 한 마음
신입 시절,
나는 그와 말 한마디 나눠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차지 첫날,
환자 산소마스크 사이로 오투가 흘러넘쳤다.
나는 얼어붙었고, 그는 말했다.
“괜찮아.
침착해.
새 걸로 다시 달면 돼.”
그 순간,
산소보다 내 눈에서 먼저 오투가 흘러나왔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그의 눈을 제대로 마주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내 삶에서 잊히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멀리서 보면 푸우 같기도 하고,
가까이서 보면 또 야수 같은 사람.
그의 아내는 예쁘기로 유명한 여의사였고,
사람들은 둘을 보며 자연스럽게
‘미녀와 야수’라 부르곤 했다.
회식 자리에서 그 미녀 의사가 내게 물었다.
“불망아, 넌 아직 나이도 어린데 왜 병동 지원했니?”
신입인 나는 젓가락도 제대로 못 잡은 채
작게 대답했다.
“그냥… 열심히 배우고 싶어서요…”
사실 주사도, 피를 보는 것도 내겐 공포였지만,
교대 근무를 하면 시간이 조금 더 자유롭게 남는다는 걸
그 시절의 나는 은근히 알고 있었다.
그 미녀 의사는 잔을 내려놓고 활짝 웃었다.
“야, 배우고 싶으면 OR이나 DR로 와야지.
내려와. 내가 아주 잘 알려줄게.”
야수 원장님은 옆에서 슬쩍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야수 같은 사람이 불길 속으로
가장 먼저 뛰어든 사람이란 걸.
병원에 불이 난 그날은 늦은 밤이었다.
연기가 하얗게 자욱해
앞도, 사람도, 벽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
그 사람은 그 속에서
모든 문을 두드리고 다녔다.
손등으로 문고리를 만져가며,
산모들의 이름을 부르며
목이 찢어지도록 외쳤다고 했다.
그리고 결국
쓰러지듯이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다음날,
그는 그 모든 걸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몸이 먼저 움직였던 사람.
목이 완전히 쉬어 말이 나오지 않는 상태로 출근해
그을린 창문을 닦던 우리에게 다가와서
쉰 목소리로 말했다.
“… 고맙다.”
수많은 말들이 오갔지만,
그날 그을린 유리를 닦으며
내 마음속을 스쳐 지나간 건
훨씬 단순한 진실이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자기 병원 망할까 봐 그런 거 아니야?”
그러자 누군가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냐. 그분은 원래 그런 분이셔.
그런 상황 아니었어도 먼저 뛰어들 사람이야.”
그날 이후
나는 그를 그렇게 기억하게 되었다.
적어도—
사람을 살리는 의사로.
그날,
수없이 자책했다.
나는 적어도, 늦게라도 달려왔어야 했다.
직원들이 그 연기 속을 헤치고
목이 쉬어가며 산모들을 이끌던 그 시간에,
나는 엄마와 따뜻한 방에 누워 있었다는 사실.
그 사실이
내 마음을 가장 깊숙하게 후벼 팠다.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갓 태어난 생명들을 품에 안고
연기 속을 내달렸다던 신생아실 선생님.
자기 가디건이 타 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산모들을 이끌던 병동 선생님.
콧구멍 주위가 까맣게 그을린 줄도 모른 채
환자를 실은 앰뷸런스에 몸을 실었던 동료들.
수술한 지 몇 시간도 안 된 몸으로
힘겹게 계단을 내려갔다던 산모.
숨이 턱턱 막히는 와중에도
산모에게 산소를 양보했다던 직원들.
그 모든 장면이
아직 연기 냄새가 가시지 않은 복도 위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어쩌면
그날 이후 병원은 더 이상 ‘일터’가 아니었다.
그날 내 안에 조용히 붙은
가느다란 결심 같은 불씨.
평생 병원을 다닐 거라면
나는—
도망치지 않는 사람들 곁에서
이런 의사와 함께 걷고 싶다.
그 생각 하나가
십삼 년을 붙잡았다.
그날 이후
나는 도망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직 완전히 그렇지는 못하지만.
그 작은 불씨는,
지금도 내 안에서 아주 천천히—
그러나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다.
덧붙여,
그 야수 의사는 여전히 파란 가운을 휘날리며
병동을 누빈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의 등을 보며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