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091014473542522
언론사에는 증권시장을 담당하는 '증권부'라는 부서가 있습니다. 한국거래소, 금융감독원, 금융투자협회, 그리고 각 증권사를 '출입'하면서 증권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소속되어 있는 부서지요. 대부분의 큰 기업들이 '상장회사'이기도 하니깐, 증권부는 '산업부'와 더불어 기자들이 결혼할 즈음에 가고 싶어하는 부서 중 하나입니다. (친한 기자들한테 들은 이야기-) 증권기사와 증권시장의 관계가 그렇다는 말.
증권기사들을 보면, 매년, 매시기 반복되는 레퍼토리들이 있습니다. 추석이 다가오면 명절 전에 사놓고 가야되는 주식은? 이라든가, 매 연말연초에는 증권사들의 내년 지수전망 기사라던가, 한국 애널리스트들은 '매도리포트'를 쓰지 않는다 라든가...... 물론 새로운 투자자, 새로운 독자들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에 같은 기사라도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순 있죠. 하지만, 언론의 역할이 펜으로 세상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그 결과로 세상이 어제보다 나아지는 것을 추구한다면(?) 이제는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는 것에 그치면 안되고,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십수년간 매년 같은 식의 문제제기 기사를 보고 있는 셈이거든요.
맞습니다. 한국 애널리스트들은 '매도리포트'를 쓰지 못합니다. 지난달에 제가 2020년 한국 주식시장에서 발표된 '매도리포트'를 집계해서 글을 쓴 적이 있는데요. 그때 이후로 현재까지 추가로 발간된 '매도리포트'는 없습니다.
https://brunch.co.kr/@bunbury/38
또, 애널리스트들이 욕먹는 레퍼토리가 더 있죠? '주가 다 오르면 리포트 쓴다'와 '증권사 리포트가 나와서 개미들이 관심을 보이면 기관들이 주식을 매도한다'.
주가에 '다 오른다'라는 것은 없고, 각자 포지션이나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므로 전자의 주장은 근거 없습니다. 후자의 주장 또한, 기관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마침 리포트가 발간되어 개인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이는 시점을 기회로 삼아 매도타이밍으로 삼을 순 있겠지만,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기관투자자들이 결탁하여 그러한 행위를 일삼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해서 취할 수 있는 이득 대비 손실이 너무 크기도 하고, 설령 그러한 행위가 일부 있다고 해도 그것을 '주식시장' 전반에 만연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은 '주식시장'의 시스템을 어디 뒷골목에서 운영되는 사설도박장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아무튼 '매도리포트'를 쓰지 못하는 증권사 리서치 시스템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이는 증권산업 나아가서는 한국 자본시장과 산업계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크게 절감하지 못하는 시장참여자(모든 투자자들)와 정책 결정자들의 직무유기에서 기인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고만고만한 사이즈의 증권사가 너무 많고(너 아니어도 증권 발행할 곳 많다), 산업 내 거인들 대비 금융투자업자들의 힘이 너무 작기 때문이기도 하죠. 이 문제는 근시일 내에 해결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런저런 부정적인 사실과 의견들에도 불구하고, 자기 판단으로 투자의사결정을 내리는 투자자들은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적극 활용해야 하고, 또 실제로 그러고 있습니다. 아래 글에서 이야기 했듯, 애널리스트 보고서는 기업의 미래수익추정이라는 분석대상의 특성상 '설명문'이 아닌 '논설문' 입니다.
https://brunch.co.kr/@bunbury/59
'이 기업의 실적이 좋아질꺼야, 이 기업의 주가는 00000원(목표주가)까지는 갈 수 있을 거야'라고 객관적, 주관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애널리스트는 기업의 미래실적을 추정하기 위해서 다양한 '유료데이터'들을 참고합니다. 흔히 여의도에서 '블대리'라고 부르는 '블룸버그(Bloomberg)' 터미널만 해도 별명 그대로 연 구독료가 대리 연봉 수준이므로, 보통의 투자자들이 직접 비용을 내고 구독하긴 어렵습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도 애널리스트 자리마다 블룸버그 터미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두대를 가지고 수십 명이서 돌려씁니다. 블룸버그 터미널은 전세계 투자자들이 투자의사결정 과정에서 필요한 수많은 데이터들을 실시간으로 열람하거나 내려받을 수 있는 데이터서비스 입니다. 애널리스트들은 'Refinitive(리피니티브, 구. 톰슨로이터)'사에서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데이터도 참고합니다. 이 또한 개인투자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고가의 데이터 서비스 입니다. 팩셋(FactSet)도 있죠.
위에 언급한 서비스들은 업종이나 투자전략, 기업분석 분야를 가릴 것 없이 모든 애널리스트들이 구독하는, 리포트를 쓰기 위해서는 필히 구독해야만 하는 서비스들 입니다. 산업별로 가면 또 수많은 고가의 유료서비스들이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Dram eXchange(?), Gartner 등 전문서비스들이 있고, 해운업종에는 Clarkson 등 각 산업데이터를 제공하는 무수한 서비스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서비스들은 각 산업에 속한 대기업들이 아닌 이상은, 증권사 리서치센터만이 구독하는 것들이고 이 데이터들은 증권사 리포트를 통해 간접적으로 증권시장에 전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애널리스트 리포트를 봐야 하는 이유 첫번째는 고가의 데이터에 (거의 무료로)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기업에 대한 접근성 때문입니다. 일부 스몰캡 종목들이 아닌 이상에야 개인투자자들이 직접 기업을 방문(탐방)하여 주식/IR담당자와 미팅을 하기 어렵습니다. CJ E&M 사태 이후로 일부 상장사들은 '바이사이드(펀드매니저)'의 기업탐방을 막기도 했습니다. '셀사이드(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상장사들이 자본시장에 그나마 가장 정보를 많이 제공하고, 또 소통하고자 하는 통로입니다. 해당 기업의 임원을 잘 알거나, 핵심정보에 접근가능한 직원인 지인이 있지 않은 이상, 우리가 상장기업을 간접적으로 가장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인적통로는 애널리스트, 애널리스트 보고서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시나 언론기사는 논외로 하고요.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봐야 하는 세번째 이유는, 애널리스트들이 자본시장에서 '마이크'를 가진 몇 안되는 '인플루언서'이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배터리(2차전지)사업부 물적분할을 발표하면서, 최근 가장 핫한 주식 중 하나였던 'LG화학'의 주가가 연일 폭락하고 있습니다. '언론'이나 '유튜브'에서는 LG화학의 배터리사업부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고, 분할된 배터리회사(LG에너지솔루션)을 직접 소유하고 싶었던 소액주주들이 화가 많이 났다고 하죠. 하지만, 분할공시 후 증권사에서 나온 수십여 개의 리포트 대부분의 LG화학의 미래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화가 난 주주'의 공식적인 목소리는, 실제로 얼마나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고 또 그것이 시장에 전파될 경로도 없습니다. 블로그, 유튜브 등에서 일부 표출될 수 있을 따름이죠. 애널리스트들은, 그들의 의견이 맞든 틀리든, 그리고 지금은 맞고 나중엔 틀리든 어쩌든 간에, 자본시장 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마이크'를 든 존재들입니다. 물론 '삼프로TV'를 위시한 뉴미디어들이 자본시장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긴 하지만, '삼프로TV'에 나와서 콘텐츠를 책임져주는 사람들 또한 대부분 애널리스트들이죠. 저 개인적으로는, 주가는 장기적으로는 기업실적에 따라 움직이지만, 단기적으로는 기대감에 따라 움직인다는 말을 믿습니다. 오히려 내일에 대한 기대감이 오늘의 주가를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실제로 주가가 실적과 만날 일은 없다는 겁니다. 내일의 주가는 모레에 대한 기대감을 따라 또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애널리스트들은 아직까지는 시장 내에서 이러한 기대감에 대한 스토리를 텔링할 수 있는 존재들이므로, 맞든 틀리든 그 이야기를 참고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별론.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유료화 해야 된다는 목소리도 십년 전, 아니 그 전부터 나왔지만 잘 안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일부 증권사들은 몇몇 인뎁스(In-depth) 리포트는 자기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한 고객에게만 전달하고 있지만, 누구나 비대면으로 5분이면 계좌를 만들 수 있는 시대이기에 눈가리고 아웅일 뿐이죠. 온라인 버전을 만들지 않고, 인쇄물로만 리포트를 만들어서 특정 고객들에게만 리포트를 전달하는 시도도 과거에 있었지만 컴플라이언스 이슈 등등 여러 문제가 있었기에 중단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리서치센터를 운영하는 증권사가 20개가 넘고, 품질면에서 큰 차별화가 잘 안되기 때문에, 즉 쉽게 대체 가능하기 때문에 리서치 보고서의 유료화가 어렵고 다시 그런 이유로 품질의 차별화가 잘 되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있다고 생각합니다. 몇번의 독립리서치 회사의 출현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모든 문제는 기업분석을 기반으로, 자기판단으로 투자하는 투자자의 수가, 즉 리서치 보고서의 실수요자의 수가 아직은 많이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광고.
저와 동료들이 운영하는 써핀SEARFin 서비스는, 제가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근무하던 시절 느꼈던......
기관투자자로부터 차별받는 개인투자자들에게도 저렴하지만 양질의 투자정보를 제공하면 좋겠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https://searfin.com
왜 (일부)개인투자자들은 언론기사들이 대충 받아쓴 종목기사에는 열광하거나 화를 내면서, 왜 리서치보고서는 읽지 않을까? 왜 숫자를 보지 않을까? 왜 남들이 불러주는 종목만 사고 팔고 있을까? 언젠가는 한국에도 기업분석을 즐기고, 애널리스트들과 숫자와 논리로 논쟁할 수 있는 개인투자자들이 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오래전부터 품고 있었던 문제를 해결할 적기라고 생각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시장을 움직이는 '기대감'을 만들어내는 개별투자자들의 '생각'을 어떻게 데이터화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이점은 아직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 좋은 의견 있으면 알려주세요. ) https://t.me/sear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