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는 행복이자 축복이며, 동시에 불안감이다
나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
나는 우리 헤어질 경우를 준비해
나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
나는 우리 끝이 올 경우를 준비해
안예은 <경우의 수> 中에서
지난가을,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하는데 같은 반 친구 엄마가 아내와 등원 인사를 나누다 짧게 대화를 했었다. 보통 어린이집 데려다주거나 데리러 갔을 때 부모들끼리 짧게 안부인사를 나누고 근황을 묻고 답하는 것은 이 바닥의 예의인 듯하다. 그런데 이날 아이 친구 엄마는 묻지도 않은 심각한 이야기를 전혀 심각하지 않게 털어놓았다고 했다. 둘째 아이 친구가 몸에 단백질이 자라지 않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었다. 점점 근육이 붙는 것이 어려워지다가 뇌나 장기에도 단백질 합성이 어려워서 이 희귀병을 앓은 사람 중에 20세를 넘게 사는 사람이 없다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아이 친구는 만 2세가 지난 현시점엔 특별히 아프거나 부족해 보이지 않았기에 아내는 많이 놀랐다고 했다.
그런데 더 놀랐던 것은, 이 얘기를 너무 태연하고 아무렇지 않게 꺼낸 친구 엄마의 태도였다고 한다. 우리 부부라면 도저히 타인들에게 이 얘기를 꺼내지 못했을 텐데, 혹여나 가까운 사람들과 있을 때 술의 힘을 빌려 괴로워하며 꺼냈을 법한 아이의 불치병 이야기를 친구 엄마는 툭툭 털어내듯 말했다고 했다. 어떤 마음일까? 상상만 해도 고통스럽지 않을까? 그 이야기를 꺼내면 기정사실화 될 것 같아서 더 비밀로 할 것 같은데 말이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결론을 냈다. 친구 엄마는 그렇게 아이의 희귀병 이야기를 공유하며 더 씩씩하게 아픔을 이겨내려는 것이리라. 의학이 발달하니 수년 안에 별 일 아닌 듯 치료될 수도 있을 것이니, 희귀병이란 이름의 무게에 짓눌리지 말자. 원래 아픈 건 소문내야 낫는다고 하니 많이 이야기하고 응원을 받아서 완치되리라. 그 심정이 어떤 것인지 세세하게 묻진 못했지만, 위의 그런 마음으로 친구 엄마가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라 추측을 했다.
출산율이 상상 이하로 치닫는 요즘 시대에 드물게 아이를 넷이나 낳아 키우는 대학 절친이 있다. 그 부부의 금슬이나 자식 사랑은 멀리서 보면 대단하지만, 하나하나 생기고 태어나던 시절을 다 지켜본 나로선 용감하기도 무모하기도 기특하게도 느껴졌었다. 그런 그 가족에게도 유산을 한 아픔이 있었다. 둘째와 셋째 사이 때 와이프의 컨디션이 별로였는지 초기에 유산을 했었다. 마음 아팠지만, 그나마 초기라 흔히 생길 수 있는 일로 개념치 않고 잊으려고 했었더랬다. 그런데 어느 밤, 친구는 얼굴에 이목구비가 없는 아기가 문지방에 서서 아빠를 찾는 모습에 화들짝 놀라 일어나니 지독하게도 선명한 꿈이었다고 했다. 짧게 붙어 있다가 태어나지 못하고 떠난 아이인 것 같아, 잠든 아내를 깨워서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고 했다. 아빠가 미안하다고, 만약 다시 우리에게 찾아와 준다면 그땐 꼭 태어나서 함께 행복하게 살자며 기도 아닌 기도를 했다고 했다. 그날 그 꿈과 약속처럼 내 친구의 셋째 혹은 넷째로 그들 곁에 찾아와 지금 함께 있는 것일까?
나보다 아이가 먼저 떠나가는 일은, 요즘 같이 아이를 하나 둘 키우는 소가족 구성에서 부모가 살면서 겪을 수 있는 가장 심한 고통일 것이다. “아빠, 내가 물에 잠기는 것이 안 보이세요?”라고 말하는 아이를 오늘도 꿈에서 만나고 있을 많은 분들이 떠올랐다. 이 꿈은 고통일 테지만, 그 꿈에서 깨어나는 일은 그보다 더한 고통일 것이다. (신형철 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中에서 인용) 매년 4월 16일이면 꿈을 꾸지 않는 나도 고통스러운데, 먼저 아이를 보낸 그분들 마음은 어떠할까? 둘째 아이 생일이 4월 15일이라, 아무 연관성이 없지만 다행히 비극을 피한 것 같은 상상에 감사하는 마음 반, 이유 없는 죄송스러움이 반이다.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본인의 실수로 아이들을 잃은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치유될 수 없고 그냥 묵묵히 견뎌내야 하는 슬픔이 있다는 것, 깊은 슬픔이 소멸되듯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조금 무던해진다는 것을 상상해본다. 능력도 자격도 없는 내가, 두 딸을 낳아 함께 하는 게 얼마 큰 축복인지 알면서도 이 아이들을 잃는다는 건 상상만 해도 견딜 수가 없다. 그리고 이것은 일종의 불안감이기도 하다. 몇 해 전 커다란 배가 가라앉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뉴스로 봤던 그 날 이후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예고 없이 아이가 날 떠나갈 수 있다는 가정은 가능해졌다.
그래서 나는 약간 미신에 가까운 습관을 갖고 있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그려보는 것이다. 차가 인도로 돌진하고, 건물이 불타고, 하다 못해 친구와 다투다가 넘어져서 치명적인 부상으로도 아이는 나보다 먼저 떠날 수 있다. 얼굴을 찡그리며 매일 그날 아이의 일과를 곱씹다가 막연하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나쁜 그림을 그리고 나면, 마치 내가 그 상상을 한 덕분에 그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어릴 적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답안지를 밀려 쓰는 등 제대로 망치는 상상을 하고 나면, 그 일은 피해 가고 나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는 듯해서 대범하게 시험에 임할 수 있었다.
아이가 아프기만 해도, 모든 게 미안하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낫게 하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처음 태어날 때, ‘그저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만 태어나서 자라 다오’라고 빌었던 초심으로 돌아가곤 한다. 하루를 마치고 잠든 아이를 보면, 그날 하루 동안 화내고 짜증내고 혼냈던 일들이 떠오르며 반성을 하고, 그저 나보다 먼저 떠나지 않고 이렇게 건강하게 옆에 있는 것만으로 더 바랄 것이 없다.
육아휴직을 내고, 둘째 아이 옆에서 꼬박 2년을 보냈다. 우울증에 시달릴 만큼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이 아이가 나보다 먼저 떠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나는 나’이고 ‘나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나’이지만, 그래도 내 아이들이 더 소중한 건 부정할 수 없다. 보잘것없는 내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작게나마 얻은 깨달음을 빌려서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모두 아이들 덕분이다.
아이가 먼저 내 곁을 떠난다는 최악의 상상만큼이나, 아프고 아쉬운 경우의 수가 있다. 어떤 예고도 없이, 급작스럽게 내가 먼저 아이들의 곁을 떠나는 것이다. 아내는 5살 때 아버지를 급성 간암으로 먼저 떠나보냈다. 내 어머니도 아버지를 3살 때 갑작스레 잃었다. 가까이에서 어린 나이에 부친을 잃은 상처와 공허함, 성장하며 생기는 결핍을 간접적으로 알기에 오늘도 나는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하루를 보낸다. 20대를 보내며 천둥벌거숭이 망나니처럼 살았다면, 아이가 태어난 이후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 된 것도 그 덕분일 것이다. 그다지 훌륭한 아빠는 아니지만, 내 공백으로 인하여 혹여나 아이들이 자라는데 누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아이가 먼저 내 곁을 떠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에 내가 먼저 아이 곁을 떠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그렇게 어설픈 모양새로 닮아있는 듯하다. 그래도, 혹시 그래도 퇴근길에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를 맞고 내가 떠날 수도 있으니까, 아이들에게 반드시 꼭 하고 싶은 말을 아래 기록으로 남긴다. 집 벽장에 몇 번째 서랍을 열면 비싼 값어치의 보석이 있다 같은 게 아니라, 널리 알려진 영화의 아름답고 소박한 이야기를 인용하며 이 이야기를 갈무리하고 싶다.
의미 있는 일이라면, 그리고 꿈이 있다면
나이가 얼마든 결코 늦다거나 이르지 않다
시간에 제한은 없다. 네가 원하는 언제든 시작해라
넌 변화할 수도, 그대로 머무를 수도 있다. 정해진 규칙이란 없단다
최선일 수도 최악일 수도 있다. 난 네가 최선이길 바라마
놀라운 일을 경험해보길 바란다. 전혀 새로운 기분을 만끽해보렴
너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사귀었으면 좋겠구나
인생이 뿌듯하길 바라마
설령 그렇지 못하다면 용기 있게 다시 시작하길 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中에서)
For what it's worth,
it's never too late,
or, in my case, too early,
to be whoever you want to be.
There's no time limit.
Start whenever you want.
You can change or stay the same.
There are no rules to this thing.
We can make the best or the worst of it.
And I hope you make the best of it.
I hope you see things that startle you.
I hope you feel things you never felt before.
I hope you meet people with a different point of view.
I hope you live a life you're proud of.
And if you find that you're not,
I hope you have the strength to start all over again.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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