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 여자는 이미 떠난 뒤였다. 라산에 가지 않았더라면 댓바람부터 걷기 위해 떠난 여자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도 역시 내 집이고 싶은 숙소에서 작업을 마치고 한림항으로 향했다. 어제 협재해수욕장에서 바로 앞에 떠있던 섬 하나를 보며 굉장히 뜬금없다고 생각했었다. 그 섬의 이름은 비양도飛揚島였다. 나는 섬이라니. 협재도 그렇고 제주의 이름들은 어쩜 이렇게 기막힌지.
은박지를 구겨놓은 것 같이 다양한 각도로 반짝이는 바다 위를 배가 달달거리며 달렸다. 달래 할아버지는 제주가 항상 봄이라고 했지만 지난 십일 사이 한 계절을 지나온 것 같았다. 더 이상 비는 오지 않고 롱패딩을 들고 다녀야 했으며, 눈물을 쏙 빼놓던 바람은 이제 시원했다.
배가 섬에 도착했을 때 선원 한 분이 마이크에 대고 2시간이면 되는 코스라며 쉬엄쉬엄 잘 보고 뱃시간에 맞춰 나오라고 했다. 사람들이 줄지어 배를 빠져나왔고 이곳 주민으로 보이는 한 아주머니는 거울인지 문짝인지 모를 넓고 납작한 택배를 오래된 나무 리어카에 실었다. 이곳이 말로만 듣던 도서산간 지역의 그 도서임을 실감케 했다. 택배비 3천원이 추가로 붙는그곳.
섬에 내려 나는 섬을 천천히 걸었다. 방송에 나올 법한 차 한 대 없는 빈티지 감성의 아담한 섬이었다. 이 섬의 이름이 비양도가 된 까닭은 섬이 실제로 공중부양했기 때문이다. 고려 목종 5년(1002년) 우렛소리와 같은 지동과 함께 산이 바다에서 솟아올랐다. 안개와 구름이 자욱했고 7일이 지나 비로소 개었다. 갑자기 나타난 섬에 대해 사람들은 이야기를 쏟아냈고 중국에서 날아온 섬이라는 전설마저 생겼다. 원래 비양도는 약 27,000년 전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으로 바다에 가려져 있다가 이때 또다시 폭발하면서 지금의 형태가 되었고, 그때까지 우리나라에 화산활동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덕분에 비양도에는 화산탄과 호니토(마그마가 올라오며 생긴 굴뚝 형태의 화산체)를 비롯한 화산 활동의 흔적과 더불어 다양한 식물종과 철새종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비양도에만 자생하는 비양나무가 있다고.
이과 졸업 후 공대에 진학했지만 과학 알못인 나는 불행히도 섬의 지질학적 의미에 깊이 공감하지 못했다. 대신 여러 장면을 발견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다를 둘러싼 쓰레기였다. 해안로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도는데 파도에 쓸려온 쓰레기들이 울퉁불퉁한 용암대지에 걸려 곳곳에 거대한 쓰레기통을 만들었다. 이 아름다운 섬이 쓰레기통이라니. 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제 아무리 비싸고 고급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종국엔 쓰레기가 된다. 매일 먹는 음식이 매일 똥이 되는 것처럼. 바다는 인간의 배설물을 받아내느라 신음하고 있다.
여유롭게 걷다 보니 어느새 뱃시간이 되었다.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선원의 말을 믿고 슬렁슬렁 걸은 것이 화근이었다. 비양봉에 올랐지만 결국 정상에 다다르지 못하고 뛰어내려왔다.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사람들의 속도와 나의 속도는 다르다는 것을. 함부로 타인의 속도를 규정짓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혹시 비양도를 찾는다면 음료 이용 시 무료로 대여해 주는 자전거를 타고 해안산책로를 달려볼 것을 권한다. 그렇지 않으면 섬의 특성상 본의 아니게 섬의 둘레를 온전히 돌아야 하는 수가 있고그랬다간 나처럼 뱃시간이 간당간당해질 수 있다.
귀항길에는 2층에 자리를 잡았다. 항해사는 작정한 듯 배를 흔들었는데 파도가 높아서라기보다 승선객들을 위한 일종의 서비스 같았다. 항해사는 쇼맨십을 발휘해 자신의 항해 기술을 다양하게 선보였고, 후룸라이드보다 스릴 있는 배 위에서 사람들은 오, 오, 원숭이 소리를 내며 즐거워했다. 남자아이는 쇠봉을 꼭 잡고 엉덩이를 뒤로 빼면서도 배의 출렁임을 온전히 느끼고자 줄곧 서 있었다. 휘청거리는 배 위에서 십여 년 전 신비의 나라 이후 단 한 번도 놀이동산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