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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 Grace Mar 18. 2024

우는 아기와 부부싸움

아기를 보랬더니 정말 보기만 하는구나......

엘리베이터문이 열리고 초인종을 누르려는 순간 안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새어 나왔다. 비명이라기보다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키우는 치와와가 간간히 짖어댔고 나의 도착시간을 의식하듯 다급한 남편의 위로는 성에 차지 않은 듯 산모는 일방적으로 화를 토해내고 있었다. 이 타이밍에서 나는 두 사람에게 시간을 주어야 했다. 아니. 왜?? 울일이 뭐가 있겠냐? 라고 하겠지만 많다...... 남편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 눈물이 쏟아질 수 있고, 뭐가 그리 서러운 지 목이 쉴 정도로 울어대는 아기울음을 못 알아듣는 게 그저 미안해서 울 수 있고, 눈꺼풀은  무거워지는데 잘 수없는 현실에 설움이 복받쳐 울 수 있다. 


잠시 후 민망한 웃음으로 맞이해 준 남편을 보며 일부러 밝게 인사를 하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아빠한테 안겨있는 아기는 엄마 아빠의 냉랭한 기운에는 관심이 없는 듯 주먹을 빨았고 치와와는 소파 한쪽에서 쭈그려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남편의 시점


"... 와이프가 저한테 화가 났거든요... 제가 잘못했죠..."

"저도 모르게 그만 말실수를 해버렸어요......"

안방 쪽을 힐끔거리며 속삭이는 남편은 대화 중에도 몇 번이고 와이프를 달래려 방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별 소득 없이 나오는 게 안쓰럽기까지 했다. 솔직히 남편말만 들어서는 산모가 왜 화가 났는지 알 수 없었고 어쩌면 바로 이런 부분 때문에 화가 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모의 남편은 젖병을 세척하고 삶고, 수유를 한 후 트림을 시켜주고, 기저귀를 가는 법, 배변을 하면 욕실에서 엉덩이를 닦는 법, 그 어렵다는 신생아 목욕까지 직접 하려는 열혈아빠임은 분명한데 뭔가 1% 부족한 엉성함이 묻어있었다. 초보 아빠 본인도 신생아 양육법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 속도에 비해 행동이 미처 따라가 주지 못해 답답하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말했다. 남들 다 자는 고요한 새벽은 한계에 부딪히는 '마의구간'이다. 쓰러져 잠든 와이프의 도움 없이. 잘해보겠노라 다짐했건만 녀석의 표정이 심상치 않더니 어김없이 울어재꼈고, 희미한 수면등에 의존한 채 기저귀를 열자마자 똥테러!!! 순식간에 이부자리는 똥 범벅이 되버렸다. 이미 자신의 선을 넘어버렸음을 알았지만 와이프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아니 모르는 척하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기 울음소리는 더 거세졌고,

 "잠든 지 겨우 몇 분 지났는데 애를 못 봐? 나 지금 손목도 엄청 아프다고..."급기야 벌떡 일어난 와이프의 푸념에서 질책과 무능력을 꾸짖는 거 같아 자신도 모르게 실언이 방언 터지듯 나와버렸다...

"아기 낳는 게 그렇게 생색 낼 일이냐......"


아차!!!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나질 않는단다.


좋은 역할


"아이고 저런!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남편의 자책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어 '그랬구나'로 시작한 나는 여자들이 겪는 출산 후 보이지 않는 호르몬의 변화를 말해주었고 당신의 주니어를 출산하는 경험을 두고 생색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공간에서 부부와 함께 양육의 시간을 갖는 경우에는 제삼자의 역할도 신중해야 한다. 어느 한쪽의 입장에서 생각해서도 안되고 이래라저래라식의 훈수도 위험하다. 양쪽 눈치를 봐가며 밸런스를 맞추는 센스도 필요하다. 한 껏 예민해진 산모에게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한 숨푹 자고 나면  감정쓰레기통이 비워지듯 개운해질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산모가 좋아하는 오므라이스를 예쁘게 담아 방문을 열고 조심스레 다가갔다. 

"아이고.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아직 빨갛네... 배고플 텐데 따뜻할 때 조금 먹고 더 쉬어요."

왜 그러느냐는 질문대신 '많이 속상했지? 다 알아.... 맛있는 거 먹고 기분 좀 풀자.' 이거면 되었다.

슬그머니 나오는 산모에게 다가가 어깨를 다독이는 남편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산모 역시 남편에게 더 이상의 분노를 표출할 필요는 없었다.


아내의 시점


한결 부드러운 아내의 표정을 보니 남편은 어린애처럼 들떠하며 식사 내내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고 영양제도 챙겨주는 모습이 그저 귀엽기만 하다. 강아지와 산책을 나가는 남편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소파에 앉은 산모는 그제야 평상시 밝은 모습으로 재잘거렸다.

"남자들은 정말 모르는 거 같아요. 나 눈 좀 붙일 테니 자기가 애기 좀 봐. 이랬거든요? 근데 00가 막 우는 거 예예요. 좀 지나면 괜찮을까 싶어 그냥 자려고 했어요. 그런데도 울음소리가 점점 심해서 일어나 보니  정말 보기만 하는 거 있죠..."

침대가드가 높다 보니 아기를 안을 때마다 손목을 잡으며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엄살 부린다고 생색을 내냐는 말에 순간적으로 울화가 치밀었다고 했다.

 


타이밍의 중요성


타이밍


스노우스톰에 덜덜 떨며 기다리던 버스에 오르자마자  급 출발하는 바람에 커피를 쏟았다. 

순간 앞에 앉아 있던 여자에게 피해를 주었을까 걱정이됐는지 아니면 창피했는지  남편은 왜 커피를 들고 탔냐고 눈을 부라리며 나를 나무랐다. 

추운 날 꽁꽁 얼었을 내 손은 안중에도 없었을까?  

그때 난 미안함 무안함보다 그렇게 말하는 남편한테 화가 치밀어 낯선 외국버스 안에서 한국말로 고래고래 악을 썼다.

"너는!!! 괜찮아?라고 묻는 게 먼저야! 그 상황에  꼭 내 잘못을 확인시켰어야 하는 게 우선이었어?"

"너는 내편이야? 남의 편이야?" 

세상 유치하게 싸웠던 기억이 가끔 나는데 이국땅에서 느꼈을 막막함과 두려움에 외로웠을 타이밍에 그 말 한마디는 비수처럼 꽂혔던 거였다.

 

양육의 시작점에서 느꼈을 막막함과 두려움 역시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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