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해? 데이트 중인 거 잊었어?”
“아 미안~ 회사일이 갑자기 생각이 나서”
“회사일? 신기하네~ 오빠가 주말에 회사 일을 다 생각하고”
그녀의 말이 맞았다. 난 주말엔 회사 일은 ‘전혀 생각 안 한다’라고 하면 거짓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생각 안 하려고 노력한다. 굳이 주말까지 ‘팀장’으로 살고 싶은 생각은 1도 없기에.
“무슨 일인데? 내가 회사일은 잘 모르지만 들어봐 줄게”
“아니야~ 괜찮아 이젠 잡생각 하지 않고 우리 시간에 집중하겠어~”
“뭐야? 무시하는 거야? 나도 오빠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고”
“무시가 아니라 뭐 굳이…”
“말해 말 안 하면 나 삐질 거니까”
그녀의 귀여운 협박(?)에 당해 낼 수가 없었다. 난 지난번 회사에서 임원과 나눈 대화 내용을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 내가 한 말을 다 듣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난 아직 이렇다 저렇다 답을 하진 않은 상태야. 그러고 보니 보내준 소개서도 아직 제대로 보질 못했네”
“음… 그래서 오빠의 지금 생각은 어떤데?”
“고민 중이긴 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언젠가는 회사에서 잘릴 거고 그러면 뭐 해야 하지?라는 조금은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살긴 하거든”
“하긴 나 같은 경우는 그런 부분에선 좀 유연한 편이긴 하지”
“그렇지~ 게다가 슬이는 본인만의 기술도 있으니까, 그리고 잘하기까지 하고”
“치 내가 잘하는지 오빠가 어떻게 알아? 봤어?”
“아 그러네 한번 보러 가야겠다 ㅋㅋ”
“안돼 절대 안 돼 오기만 해 봐 아주”
“왜? 나도 궁금한데~ 엄청 엄한 샘인가 본데. 내가 보면 쫄 수도 있나 봐 ㅎㅎ”
“응 맞아 정말 쫄 거야~ 그래서 오빠가 나한테 말도 못 걸 수도 있어”
“그래서 슬이는 어떻게 생각해?”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긴 했다. 난 공공연하게 다른 사람들 말은 안 들어도 여자친구 혹은 아내의 말은 들어야 한다고 주변 남자후배들에게 말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렇게 말은 하고 다니지만 정작 나는 말을 잘 들었었나?라고 반추해 보면 항상 그랬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내 생각이 궁금하긴 해?”
“그럼~슬이는 나한테는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니까 궁금하지”
“진짜? 그럼 내가 하라는 대로 할 거야?”
“결정은 물론 내가 하는 것이지만 결정 함에 있어 엄청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 슬이가 하지 말라고 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까”
“가끔 보면 오빠는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른 경우가 있어~ 대부분 남자들이 그런 건가? 우리 아빠도 그런 거 같기도 하고 ㅎㅎ”
“응? 무슨 말이야?”
“내 의견이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왜 나한테 먼저 물어보지 않아? 남자들은 가만 보면 멍청한 거 같아 ㅎㅎ 말이라도 하지 말던가”
머리를 세게 맞은 거 같았다. 그랬다. 그녀의 의견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그녀에게 의견을 먼저 물어보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혼자서 생각을 하면서 결정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추가로 의견을 묻는다면 내 친구에게 물어보는 정도. 그래 봐야 결정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어떤 결정을 함에 있어서 주변인들과 상의를 한다. 부모 혹은 친구 혹은 그 외 조언을 해 줄 사람들과. 난 부모와 하는 경우는 거의 없긴 하다. 대부분은 나의 친구에게 묻는 정도. 하지만 꽤 많은 사람들은 결정을 함에 있어서 조언을 구하기보다는 본인이 내린 결정에 대한 동의를 얻고자 묻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건 특히 남자들이 더 심한 것 같다. 가정교육과 학교 교육의 잘못된 결과라고 말하곤 싶지만.
“응 그러네. 미안해 다음부터는 좀 더 신경 써야겠네. 좋은 지적 고맙습니다!!”
“그래~ 이번엔 용서해 줄 께. 그리고 지금 오빠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좀 더 고민해 봐~ 난 이미 답을 정했지만 이건 오빠에게 중요한 문제이니 내 의견 신경 쓰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