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알못

스물세번째 억지

by 그런남자

'패알못', 패션을 잘 알지 못한다는 말의 줄임말이다. 옷을 잘 못 입는 혹은 소위 tpo에 맞게 입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변을 둘러봐도 몇몇은 옷을 정말이지 잘 못 입는 사람이 있다. 어디서 저런 컬러의 티셔츠를 샀을까? 혹은 저런 치마는 왜 사는 거지?라는 의구심과 의아함이 동시에 드는 경우가 돌아다니다 보면 꽤 있곤 하다. 그들 중에는 본인의 독특한 스타일을 드러내기 위해서 입은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옷을 못 입는다.'라고 말하기보다는 스타일이 독특하다고 말하곤 한다. 누군가는 요즘 들어 많이 눈에 띄는 레깅스만 입고 다니는 여성들을 보면서 그녀들의 스타일을 이해 못하기도 하고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일명 '고스족'처럼 위아래 검은 옷에 굽이 큰 혹은 높은 구두를 신고 다니는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처럼 다른 사람의 스타일을 이해 못해서 오는 거부감(?)이 아닌 그냥 옷을 잘 못 입는 사람들이 있다. 패션은 지극히 유행이라고 하는 것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물론, 과거에 유행했던 스타일 혹은 패션 아이템이 지금 다시 유행하고 있긴 하지만 이런 유행 혹은 트렌드와는 무관하게 본인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경우 혹은 본인의 스타일 자체가 없는 경우에 주로 '옷을 잘 못 입는다.'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옷 혹은 패션은 그저 겉으로 보이는 대단히 거추장스러운 부분이라 치부될 수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꼭 맞는 말도 아니다. 옷이라고 하는 것은 본인 만족이 가장 중요하지만 남에게 보이는 부분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괜히 결혼식에 갈 때는 흰옷을 입지 않고, 조문을 갈 때는 짙은색 혹은 검은색 옷을 입고 가는 것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도 바로 그 이유일 것이다. 나 역시 대학 입학 후 군입대 전까지는 패알못에 가까웠다. 학교 다닐 때 그냥 트레이닝복 한벌을 위아래로 입고 다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남녀공학 대학이었지만 공대생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다 군 제대 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꽤나 많은 노력 끝에 패션에 어느 정도 관심도 생겼고 나에게 잘 어울리게 입고 다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과거의 나를 회상해 보면서 현재 내 주변에도 몇몇 바로 생각이 드는 패알못에 대해서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1. 옷 자체에 관심이 없다.

내가 20대 초반 '패알못' 시절 그랬었다. 옷 자체에 별 관심도 없을뿐더러 패션 자체에 크게 관심이 없다 보니 패션 브랜드 역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냥 폴로, 빈폴, 나이키 정도 수준. 그저 옷을 사도 저 세 가지 브랜드 중 하나에서 샀던 거 같다. 솔직히 옷을 샀던 기억은 거의 없긴 하다. 그저 술 먹고 놀기에 바쁜 나날을 보냈었기 때문에. 이처럼 옷 혹은 패션에 관심 자체가 아예 없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한 두어 가지 옷을 돌려가면서 계속 입는다는 것, 그리고 직장인이라면 회사에 갈 때, 학생이라면 학교에 갈 때 '교복' 같은 옷이 지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매일 다르다면 그 사람은 패알못의 자격이 없다. 많아야 두 가지 정도의 옷을 갈아입어가면서 입고 다니며 주말엔 거의 입는 옷이 정해져 있다. 이 사람들에게 요즘의 겨울은 너무도 좋은 계절이긴 하다. '롱패'라는 것의 등장으로 그거 하나 입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게다가 사람들이 추워서 입었다고 모두가 이해해주니 말이다. 내가 과거의 옷 잘 입기로 소문한 모 카드사의 부회장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강연 말미에 qna시간이 주어졌고 관객 중 한 명이 부회장께 질문을 했다. '어떻게 하면 부회장님처럼 옷을 잘 입는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까요?' 답은 대단히 간단하지만 명료했다. '옷을 본인이 사야 합니다.' 대부분의 패알못들은 어린 시절에는 엄마가, 나이가 들고 나면 여친 혹은 아내가 옷을 사다 주면 그걸 그냥 입는다. 마치 어미새에게 음식을 받아먹는 아기새 마냥. 이런 패턴이 지속되었고 그 패턴에 익숙해지게 되면 본인은 옷을 사러 갈 일이 없어지고 자연스럽게 더더욱 옷에 관심이 멀어지게 된다. 약간 다른 관점이긴 하지만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나 애플의 스티브 잡스 역시 어떤 옷을 입는 것에 관심을 가질 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지 않다고 에둘러서 말하긴 했지만 역시 패알못이긴 하다. 누군가에겐 트레이드마크가 되기도 하는 웃픈 현실이지만.


#2. 본인만의 확고한 스타일이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본인만의 확고한 스타일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통바지만을 선호한다던지, 하얀색 운동화만 신는다던지, 혹은 얼어 죽어도 코트만을 고집한다던지. 난 어떠한 이유에서 그 사람이 그런 스타일을 고수하게 되었던지 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해 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패션은 남에게 보이기 위함도 있지만 자기만족이 더 중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게다가 그런 다른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스타일이-예를 들어 양말을 신고 샌들을 신는- 어느 시점에선 대단히 힙한 스타일로 주목을 받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본인만의 확고한 스타일이 일반적인 잣대로 평가했을 때-평가라는 단어가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누군가에 눈에는 옷을 못 입는 혹은 특이하게 입는 스타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런 확고한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 보기엔 다른 사람들은 그저 남들을 따라 하는 패션의 p 도 모르는 사람일 뿐인데 말이다.


#3. 그냥 귀차니스트이다.

어떤 행동을 하지 않고,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바로 '귀찮음' 때문이다.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강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는 부분이다. 옷을 잘 입는 사람들에만 국한해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인스타그램의 활성화로 인해서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본인이 운영하는 비즈니스를 알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커피집을 오픈하던, 식당을 오픈하던, 혹은 쇼핑몰을 오픈하던.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커피집을 오픈한다면 오픈 과정부터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가오픈을 알리고 사람들이 자기네 커피집에 방문해서 자신의 커피집과 관련이 있는 해시태그를 걸고 본인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개시를 하게 되면 그 계정에 찾아가서 댓글도 남기고. 이와 동시에 본인의 커피집 내부를 공들여 사진 찍어서 정기적으로 공식 계정에 포스팅을 하고 신메뉴가 나오게 되면 그 역시 잘 찍고 잘 보정해서 그럴싸한 설명들로 포스팅을 하게 된다. 이런 고단하고 힘든 일련의 과정들을 하는 이유는 모두 본인의 커피집을 조금이라도 사람들에게 '그럴싸하게' 알려서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게 끔 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매출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련의 힘든 과정들을 '귀찮음'을 이기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옷을 입는 행위는 그런 귀찮음을 이겨야 할 어떠한 명분도 이유도 목적도 없다. 가끔 소개팅을 한다던지 데이트를 하는 경우에 신경을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더더욱.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일단 그들은 다음날 날씨를 체크한다. 그리고 어떤 옷을 입을지를 정한다. 그다음 그 옷에 어울리는 소품들을 결정한다. 마지막으로 그 모든 옷과 소품들이 제자리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잠에 든다. 귀차니스트들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이들은 매일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패알못들은 그저 그런 '짓'이라고 불릴 만한 것들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뿐이고.


현재 나는 패션 업계 근처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내가 속한 곳에서 취급하는 아이템은 '안경'이다. 패션 아이템 중에서 어찌 보면 작은 부분이긴 하지만 나처럼 그리고 안경을 착용하는 사람들에겐 상당히 중요한 아이템이다. 없으면 일살 생활을 함에 있어서 큰 어려움이 있고,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하며, 그것도 가장 많이 노출되는 얼굴에 얹고 다녀야 하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매를 하러 오는 사람들의 90% 이상은 이 안경을 착용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그리고 그 고민을 나에게 가장 많이 물어본다. 그때마다 내가 항상 해 주는 이야기가 있다.


'여자 친구 혹은 아내 있으세요? 그분이 괜찮다고 하면 그냥 그거 하시면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고객님이 어떤 안경을 쓰고 출근 혹은 등교를 해도 못 알아봅니다. 그러니 본인이 맘에 드는 걸 일단 고르고 여자 친구 혹은 아내에게 허락을 받으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패션은 자기만족이다. 그게 최우선 순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선택이 옳은지 궁금하다면 위에서 언급한 한 명에게만 물어보면 된다. 그럼 선택은 훨씬 편해진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당신이 밖에 나가서 패알못으로 평가받으면서 다니는걸 원치 않을 테니까. 단, 어머니는 안된다.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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