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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우 Nov 17. 2019

오래된 일기장에는

항상 일기를 쓰기 싫어진 날의 흔적이 남아있죠


오래된 일기를 두어 권 찾았어요

맑고 나긋한 기억들이 배인 종이들.


팔랑이는 소리를 내며 한 장, 한 장.

일기를 넘기다 보면, 손에 묻어나는 먼지만큼

행복한 글자들이, 글 송이들이 달라붙어

떨어지지를 않죠.


웃음도 많고, 미소도 많은 나의 한 시절.


하지만 오래된 일기에는 언제나,

일기를 쓰기 싫어진 날의 흔적이 남아있죠.

예고 없이 펼쳐지는 희고 외로운 페이지.


쌉싸름하게 고이는 침을 꿀떡 삼키고

이 날도 참 잘 이겨냈구나, 잘 참아냈구나

젖은 속마음을 내뱉으며 일기장을 덮어요.


희고 외로운 그 페이지들이

서로를 따스히 덮고 잠이 들게끔.

일기장을 덮어요.


- 오래된 일기장에는





#위로 #힐링 #시집 #담쟁이에게 보내는 시


일기장이라는 단어는 참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어느 한 시절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글. 일기장에서는 때때로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추억을 발견하곤 하죠. 방을 정리해야 할 일이 있어, 이곳저곳 얌전히 놓여있던 추억거리를 꺼내다 오래된 일기장을 찾았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기가 아닐까 싶은데, 삐뚤삐뚤한 글자에 적힌 하루가 참 귀엽더군요.


나름 많이 자라서 방학 숙제를 할 필요는 없지만, 가끔씩 글을 적어 기억을 남깁니다. 사진에는 담기지 않는, 문장으로만 담을 수 있는 것들을 조심스레 모아 일기를 적죠. 하지만 하루 이틀, 일주일 차곡차곡 쌓이던 일기는 항상 예기치 못한 일들로 끊어지곤 해요. 일기를 적을 마음의 여유가 남지 않을 만큼 지친 하루를 보냈거나, 남겨두고 싶지 않은 일들로 가득한 하루를 보냈기 때문이겠죠.


오랜만에 펼쳐 든 일기장에는 항상 추억과 함께 그 하루가 남아있습니다. 기억마저 흐릿한, 사소하게 바빴던 앳된 하루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간혹 흉터처럼 남은 하루를 마주할 때도 있죠. 마음이 시큰한 과거의 어느 날. 백지에 남은 쓰린 마음은 까끌까끌하게 겉이 거칠어요. 그래도 잘 다독이고 이겨낸 우리는 단단히 또 삶을 살아갑니다. 기특하지 않나요, 우리.


상처보다는 행복한 추억을 끌어안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또 기왕이면 슬픈 하루도 따뜻하게 감싸 두었으면 좋겠고요.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살면 분명 더 행복할 테니까요.


오늘 하루에 딱 맞는, 따뜻하고 행복한 글자를 골라보아요.



- 담쟁이에게 보내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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