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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

by 해진

겨울이 지났으면 봄이되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겨울은 지났지만 그 사이에 또 다른 겨울이 있었다


혹한의 겨울을 견디고 살아남았음에도 또 다른 겨울을 견디지 못해 다시 얼어버린 연약한 풀뿌리들이 있었다


또 다른 겨울을 이겨내지 못한 부지기 수의 영혼들이 있었다


봄의 등은 북극의 얼음 덩어리처럼 차가웠고 결코 그 화사한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뒷걸음 치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다가왔다


또 다른 겨울로 위장한 봄은 결코 그 본색을 드러낼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봄은 한 항아리도 안 되는 햇빛에 녹아내린 등을 돌려 그를 녹인 해 보다 더 눈부신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봄이 내 앞에 얼굴을 드러내었을 때는 이미 내 심장은 푸른 청색으로 변해 있었고 그 주위에는 검푸른 피딱지들이 엉겨 붙어 있었다


한 항아리의 햇빛, 아니 두 항아리, 세 항아리의 햇빛이라도 나의 얼어붙은 심장을 다 녹일 수가 없었다


그래도 기적처럼 나는 살아 있었다

얼어붙은 심장으로라도 살아가야만 했기

때문에 나는 살아 있었다

살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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