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리브와레몬나무 Aug 30. 2019

직장을 잃고

서울의 봄은 화창했다. 검사결과를 보러가는 떨림도 벛꽃과 더불어 바람에 묻어가는 것 같았다. 딸아이와 나는 병원 본관으로 가는 길에 흩날리는 벗꽃아래서 셀카를 찍었다. 포르투갈도 지금 자카란타 꽃이 한창 이쁠텐데......그날 결과만 괜찮으면 수일내로 포르투갈로 돌아갈 것을 생각했다. 의사를 만나기 전까지 계획대로 진행되는것 같았다.

내시경 시술후 사나흘만에 퇴원했지만 조직검사결과를 보는게 남아 있었다. 이날이 있기까지 떨렸지만 " 괜찮아. 문제가 있으면 진작에 병원에서 연락 왔을거야."라는 S언니의 말에 그나마 웃으며 병원에 갈 수 있었다. 

파티마 어린목동의 집 외양간

"악성입니다. 외과진료 보시고 수술여부를 판단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의사는 시술 전에 개연성을 열어두고 말하던 사람같지 않게 단호했다. 어리석게도 "악성"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암"이라는 것을 수납창구에 와서야 이해했다. "오늘부터 암환자로 등록되어서 국가보조금이 ......"라는 말에 나는 딸아이를 보았다. 그애도 나를 보았다. 나는 얼른 딸애의 눈을 피했다. 집을 나설때는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담담히 받아들이자 생각했지만, 당황스러웠다. 외과의사와 일정을 잡고 포르투갈로 귀국하는 비행기표를 다시 늦췄다. 

외과의사를 만나고나서야 병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직장에 악성종양이 있었고 그것은 내시경 시술로 해결되었지만 끝은 아니었다. 문제는 종양의 위치가 더 심각했다. 직장은 항문과 바로 연결된 대장이다. 종양이 항문에서 4cm 위에 있고 혈관과 꽤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림프절 전이가 의심된다고 했다. 

파티마 십자가의 길

"그래서요?" 의사의 짧은 설명이 끝난 뒤 물었다. 지난 번 내시경시술 했던 의사의 진료실에서 멍청하게 앉아 있었던 것을 후회하면서 일정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었다.

 의사들의 화답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작은것 하나라도 속시원하게 말하는법이 없다.  

"음, 만약에 림프절 전이가 되었으면 직장은 잘라야 하는데, 종양이 워낙 작아서 전이까지 되었을까 하는 의견도 있어요. 가족들과 의논하셔서 수술을 결정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종양이 크는 것을 봐가면서 수술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어요." 가족이라고 알 것 같은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의사를 붙들고 다시 물었다.

"그럼, 수술을 하면 어떻게 되나요?"

"수술을 하면 종양이 항문과 너무 가까워서 항문대신에 인공장루를 할 수도 있어요. 만약에 임파선 전이가 되었으면 직장을 제거하는게 맞는데, 전이가 안되었으면 직장만 잃게 되는거지요." 들어도 들어도 결정하기 어려웠다. 건강검진 때문에 신체기관에 직장이 있는것도 처음 알았는데 임파선, 인공장루 등은 여전히 생소했다.

 결국 다시 입원하고 수술하기로 결정했다. 

종양은 의사들이 염려했던 대로 임파선에 전이되었고, 예정에 없던 항암치료까지 하게 되었다. 

열흘간의 한국방문은 4개월이 걸렸다.  





이전 10화 건강검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