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리브와레몬나무 Aug 30. 2019

건강검진

 영원히 멈추어 있는듯 시간은 지루하게 흘렀다. 아들이 떠난지 2년이 지났다.탈선 위기에 있던 기차가 궤도를 찾고,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중간에 캐나다에서 공부하던 딸이 포기고 우리곁으로 오고싶다고 할때는 아찔했다. 그때까지 딸애의 마음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없지만 H언니의 부탁이 생각났다. 언니의 형제는 원래 1남 3녀인데 대학생 오빠가 갑자기 세상을 뜨면서 장녀가 된 이야기, 장남을 잃은 부모를 옆에서 보는 심정, 그리고 지인들이 자신에게 당부하는 말이 힘겨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딸래미가 받는 상처가 분명히 있을거라며 그 애를 잘 봐야 한다고 부탁했다.  

 그러던 아이가 마음을 다잡고 서울에서 인턴쉽을 하고 있었다. 

산타렝(Santaém) 노싸 세뇨라 그라싸 교회창문

그즈음 나는 속이 불편했다. 또 변의를 느껴서 화장실 가는 횟수가 잦았다. 나는 식사시간이 불규칙하기 때문에 변비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외출할때마다 남편이 기다리는 시간이 잦아지자남편은 한국방문을 권유했다. 

그때는 남편의 회사 가까이로 이사한지 얼마되지 않았기때문에 망설였다. 그랬더니, 남편은 인턴쉽하는 딸애도 격려하고, 가는김에 건강검진도 받고오라고 했다. 

노싸 세뇨라교회 정문 아치

 남편의 말이 맞았다. 사회에 나오는 연습을 하는 아이는 하루 8시간씩 서 있는것조차 힘들어 하기 때문에 며칠이라도 보고 오는 것이 나을것 같았다.  

 막상 딸애를 보니 걱정했던것 보다 잘 생활하는것 같았다. 딸아이와 며칠 즐겁게 보내고 나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대장내시경을 마지막으로 했는데 전과 다르게 배가 아팠다.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뜨거운 팩 찜질을 했더니 일어설 수 있었다. 

병원에서 전화가 올때까지 나는 서울의 봄을 즐겼다. 

교황바오로 2세, 파티마성당  1981년 암삼위기에서 벗어난 것을 감사하며 파티마에 3번 방문

 건강검진을 받은 병원에서 결과를 우편으로 보내는것 보다 직접 방문하는게 좋을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아주 작긴 하지만 직장에서 종양이 하나 발견됬어요. 진료의뢰서를 드릴테니 상급병원에 가 보시는게 좋을것 같아요." 담당자가 꺼낸 종이에는 "항문 위 4cm, 크기는 5mm"라고 씌여져 있었다.

 막막했다. 무엇을 먼저 해야할 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출국날짜는 다가오는데 큰 병원을 예약하려면 차질이 생길게 뻔했다. 다행스럽게도 예약은 생각보다 일찍 잡혔고, 의사는 종양인지 아닌지 확실치 않다고 했다. 여자들의 경우에는 작은 지방덩어리가 종양처럼 보일때가 있다고 해서 안심했다. 작은 동네병원도 아니고 한국에서 내놓을만한 큰 병원의 의사가 말하는 것은 신뢰할만하지 않은가! 내시경시술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기 때문에 나는 출국날짜를 열흘로 미뤘다. 그 뒤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채.

삼위일체 성당에서 본 파티마 대성당

내시경 시술을 하는날 병상에 누우니 만감이 교차했다. 병실에 누워있던 아들 생각이 났다. 아들은 수술로 한번 못하고 떠났는데 어미는 살겠다고 병실에 드러누운게 자식을 잃은 어미가 할 짓인가 싶었다. 아들에게 미안하고 스스로가 한심했다. 딸아이는 이동식 침상에 매달려 울었다. 나를 이송하던 직원은 딸아이를 제지했다. 나는 2년 전의 데자뷰가 보였다. 아들의의 병실에서 급박하게 움직이던 의료진들의 모습과 중환자실 문앞에서 대기하던 남편과 나, 2년 전의 그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래도 될까? 이래도 될까?' 지난 2년동안 나를 누른 죄책감에 다시 사로잡혔다. "엄마!"를 부르며 병원복도를 달려오던 딸애의 울부짖음에 가슴이 미어지는것 같았다.





이전 09화 섣부른 위로는 오히려 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