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먼 여행, 이문세 8집 오래된 사진처럼 - 1993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K-Pop 레전드,
그리고 페르소나
K-Pop 역사, 특히 한국형 발라드의 지나온 길들을 되짚어 보다 보면, 거치지 않고서는 설명 자체가 되지 않는 사람, 이문세, 그리고 그의 영혼의 단짝 이영훈.
이문세는 80~90년대 이제 막 한국형 발라드의 기초가 태동되던 그때, 천재 작곡가였었던 유재하 그리고 이영훈 모두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너무나도 그의 음악적 행복이 일찍 찾아온 걸까, 운명과도 같이 그는 두 사람 모두를 먼저 하늘로 떠나보내게 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재하와 영훈씨 음악은 모두 클래식으로부터 시작했는데, 재하는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삐딱한 시선이 있어서 팝적인 요소가 보다 많았고, 영훈씨는 클래식의 느낌이 음악에 많이 녹아져 있었죠."
유재하는 팝에서,
이영훈은 클래식으로부터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이문세가 회상하는 이 두 레전드 천재의 음악적 차이에 대한 설명이다. 물론 어떻게 한 사람의 음악을 하나의 장르로 설명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어쩌면 가장 명쾌하게 두 사람의 음악적 차이를 설명한 것이 아닐까도 싶다.
K-Pop 80~9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이자 방송인이었던 이문세의 음악 그리고 그의 인생 스토리는 수많은 매체에서 이미 다루어 왔기에 보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몇 가지만 간략히 요약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놀랍게도 이문세의 K-Pop 데뷔는 1980년 신인이었던 김기록의 싱글 앨범에 4곡(이 중 3곡은 번안곡)을 부르고, 1곡은 작곡으로 참여한 것이 시작이다. 김기록 싱글 앨범에 왜 이문세가 작곡과 노래로 참여했는지 지금은 누가 봐도 그 구조가 이상하기만 한데, 당시에는 싱글 앨범 발매 시, 어차피 남는 트랙을 다른 가수가 채우는 경우가 많이 있었기에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키우는 신인이나 앨범이 더 팔릴만한 노래들을 섞어서 넣는 일명 옴니버스 앨범을 통한 마케팅이라고 해도 무방한, 보편적 방법이었다.
흔히 데뷔앨범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이문세의 0.5집 '떠돌이 인생도 하늘은 있다'는 1983년 이문세 1집 '나는 행복한 사람'이 나오기 일 년 전인 1982년에 발매되었으나, 굉장히 적은 수의 앨범만 제작되었기에 대중에게는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선천적인 입담과 진행솜씨로 인해 가수보다 방송인으로 더 알려지게 된 이문세는 1985년 3집에 이르러, 운명과도 같은 유재하 그리고 이영훈과 만나게 되는데, 이 앨범에서 난 아직 모르잖아요, 휘파람, 소녀와 같은 곡들이 히트하면서 K-Pop 발라드의 판도를 아예 바꾸어 놓기 시작했고 평생의 음악 동반자 이영훈과 17년이 넘는 긴 여정을 함께 시작하게 된다.
이후 K-Pop의 최대 명반 중 하나로 손꼽히는 4집, 5집을 지나 7집이 이르는 1991년까지 약 8년여 동안 앨범을 낼 때마다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이야기, 붉은 노을, 해바라기,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옛사랑, 저 햇살 속에 먼 여행 등의 불멸의 명곡들을 대중에게 선보이게 된다.
익숙해질 때,
가장 나태해질 수도 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이들은 이문세 8집에 이르러, 잠시 서로가 떨어지게 되는데, 서로를 위해 잠시 각자의 활동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아마 추정컨대 직접적인 음악적 견해의 차이라기보다는, 익숙해지는 것, 그래서 나태함에 대한 두려움, 새로운 예술적 창조에 대한 갈망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영훈이라는 거대한 음악적 장벽을 벗어난 이문세는 본 숨은 명곡 시리즈에 자주 등장하는 유정연(아침), 손진태, 김현철, 장기호(빛과 소금) 등의 새로운 프로듀서, 뮤지션들과 함께, 그 시절 가장 Hot한 주가를 올리고 있던 김현철과 함께 프로듀싱한 8집 앨범을 선보이게 되고 또한 이 앨범에서 이문세는 '또 기다리는 이 밤', '종원에게', '한 번쯤 아니 두 번쯤'의 작사에도 참여하는 프로듀서로의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이 전 앨범과는 완전히 다른 퓨전, 재즈 풍의 곡들로 채워진 이 앨범은 굉장한 호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앨범에 비해 대중으로부터는 '종원에게' 등을 제외하고는 큰 히트를 기록하지 못했고, 이영훈과 다시 9집을 함께 하게 된다.
10집, 11집의 경우는 이전과 같이 이영훈이 전곡을 작사/작곡하지는 않았지만 '겨울의 미소', '해바라기'와 같은 노래로 앨범에 참여하였고, 12집, 13집에 다시 대부분의 노래를 프로듀싱하면서 둘 간의 음악적 행보를 같이 하였다.
2006년 대장암 판정을 받은 이영훈이 2008년 하늘의 별이 되기 전까지 두 사람이 함께한 마지막 앨범은 2002년 컴필레이션 앨범인 'OLD&BEST'인데, 이후 이문세는 같은 해 14집을 발매하고 2015년 15집이 나올 때까지 콘서트 등에 매진하게 되고 2018년 16집, 그리고 올해인 2023년 12월 17집을 발매하여 그의 음악적 열정과 근면함을 과시하고 있다.
오늘 소개할 일흔 번째 숨은 명곡은 1993년 이문세 8집에 실려있는 손진태 작사/작곡, 김현철 편곡의 '지난 먼 여행'이라는 노래이다.
지난 24번째 숨은 명곡인 이승철의 '비개인 오후'를 선정하면서도 고민한 것이지만, 수십, 수백 곡의 명곡들을 만들어낸 레전드의 노래 중 숨은 명곡을 찾는 것이란 굉장히 위험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https://brunch.co.kr/@bynue/81
앞서 잠시 설명했지만, 이문세 8집을 숨은 명곡의 앨범으로 선정한 이유는 수년간 이문세를 지탱해 왔고 또 함께 성장했던 이영훈과의 음악적 동거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홀로서기를 준비했던 첫 번째 음반으로 높은 수준의 음악적 완결성을 보여준 결과물이었지만, '종원에게', '한 번쯤 아니 두 번쯤'과 같은 일부 노래가 방송에 노출된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히트하지 못했고, 대부분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명작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DRUMS : 김민기, 김승환, 배수연, 강윤기
GUITARS : 함춘호, 조준형, 장재환, 손진태
PIANO, KEY BOARDS : 박성식, 이영경, 김현철
BASS : 장기호, 강기영, 신현권, 최원혁, 차현, 조동익
SAX : 이정식, 김원용 FLUTE: 이정식 TRUMPET: 신영환
CHORUS : 유정연, 김건모, 이문세, 박승화, 김현철, 장기호
또한 이 앨범에서 이문세는 손진태, 유정연, 김현철, 장기호, 이재경 등의 출중한 실력을 겸비한 작사/작곡가와 협업하여 다양한 장르와 색깔을 받아들이고, 자신도 직접 3개의 노래의 작사에 참여함으로써 어쩌면 갇혀있던 이영훈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음악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기념비적인 음반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혹자는 이 앨범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꾸준히 이루어져 온 이문세의 음악 생활이 지속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도 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100% 동의하진 않지만, 그만큼 이문세는 이 앨범을 계기로 자신의 음악적 스펙트럼의 넓힘은 물론 직접 앨범을 프로듀싱하는 능력과 용기까지 얻게 된 것은 맞는 것 같다.
멀리 뛰기 위한 움츠림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법
오늘의 숨은 명곡 '지난 먼 여행'은 들국화의 전 멤버이자 52 그리고 57번째 숨은 명곡의 노래를 프로듀싱한 손진태의 곡으로 위의 두곡과 같은 전형적인 보사노바 재즈의 리듬과 멜로디를 가진 곡이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이 노래들을 듣다 보면, 이 즈음 그가 얼마나 라틴 재즈에 심취해 있었고, 또 얼마나 수준 높고 멋진 작품들을 만들어 냈는지 알 수 있다.
https://brunch.co.kr/@bynue/114
https://brunch.co.kr/@bynue/109
드럼의 보사노바 비트로 시작되는 전주, 그리고 손진태의 잔잔한 기타와 조동익의 베이스, 이영경의 Rhodes Piano가 늦은 밤 오래된 어느 재즈바로 나를 안내하고, 어쩌면 서글프게까지 느껴지는 이정식의 플루트 멜로디와 이어지는 담담하지만 이보다 더 감미로울 수 없는 이문세 특유의 보컬이 그 옛날 그녀와의 아름다웠던 그 추억들을 소환한다.
아마 이 노래를 듣다 보면 다소 불편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도 일부 있을 수 있을 텐데, 이 시기의 손진태가 프로듀싱한 라틴 재즈들은 일반적인 수준을 넘는 높은 음악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쩌면 일반인들이 쉽게 듣기는 조금은 어려운 변조나 마디 등 재즈곡의 구성들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생각만 해도 가슴을 뛰게 만드는 잊지 못할 여행의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우린 진정으로 사랑했고, 우리의 사랑이 영원할 거라 굳게 믿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그녀와 헤어지고 난 뒤에도, 그때의 그 부푼 가슴과 기억의 씨앗들을 혹시 그녀가 다시 돌아와 찾을까 하는 마음에, 버리지 못해 차곡차곡 내 맘 한 구석에 묻어두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어느덧 그 씨앗에서 자라난 꽃, 그리고 그녀의 향기에 괴로워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같이 보낸 추억들
아름답게 꾸민 정원과 같아서
꽃이 시든다고 괴로워하지 말자.
언젠가 새로운 씨앗이 내 안에 더 아름다운 향기와 모습으로 나를 반겨줄 테니...
작사 : 손진태
작곡 : 손진태
편곡 : 김현철
노래 : 이문세
지난 기억 속에 있는 먼 여행 이야기 그대는 아는지
우리 함께 떠났던 설레던 기분에 부푼 가슴을
옷깃에 스치는 바람 따라 늘 함께 나누고 싶은
소중한 꿈들을 밤새도록 속삭였지
우리같이 보낸 추억들 아름답게 꾸민 정원과 같아서
견딜 수 없는 슬픈 나날들 되풀이되는 나의 모습뿐
그러나 이제는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된 것만 같아
곧 시들어 버릴 향기처럼 무뎌진 외로움 쌓여만 가고
아직도 당신을 기다리는 초라한 나의 가슴이
얼마나 힘들어하는 지를 당신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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