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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미 선 Dec 06. 2023

아줌마 탐구하기(4)

붕어빵의 계절

길거리엔 여름내 자취를 감췄던 붕어빵이 등장했다.

바야흐로 붕어빵의 계절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아무래도 따끈한 것을 찾게 마련이다.

그런 이유로 붕어빵은 지나가다 생각지도 않게 사 먹을 때도 많다.

그만큼  겨울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이다. 


처음 국화빵이 우리나라에 등장한 것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시기이다.

그 무렵 일본에서는 붕어빵의 원조격인 `타이야끼`붐이 일어났다. 

`타이야끼`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도 국화빵 문양의 틀이 도입되면서 

거리에 국화빵이 등장하게 되었다. 

지금도 재래시장에 가면 국화빵을 만날 수 있다. 

 

본격적으로 붕어빵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950~60년대로 볼 수 있다.

미국의 밀가루가 원조되고부터  국화빵, 문화빵, 붕어빵의 수순으로 풀빵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가난한 시절의 국화빵, 문화빵, 붕어빵은

그 어떤 음식보다도 친근했고 푸근했으며 맛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퇴근하시던 길에 가끔 국화빵을  사들고 들어오셨다.

제비새끼 같은 자식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은 아무리 종종걸음을 쳐봐도 멀기만 했으리라. 

행여 그것이 식을세라 허름한 점퍼 속에 국화빵을 감추고 들어오시던 아버지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다.

국화빵은 이미 눅눅해질 대로 눅눅해지고 서로 엉켜 붙어있기 일쑤였다. 

급한 마음에 붙어버린 국화빵을 떼어내다가 팥소가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볼품없어진 풀빵이었지만  세상에서 그것과 바꿀만한 알천은 없었다.  


늘어질 대로 늘어지고 납작해진 국화빵은 아버지의 사랑의 표현이요, 

자식들을 향한 연민의 징표였다.

늘 배가 고팠던 시절 부모로서 자식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약소하나마 국화빵으로 대체되었다. 


지금이야 먹거리들이 넘쳐나서 다이어트가 화두가 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도 왠지 겨울에는 꼭 붕어빵을 먹어줘야만 할 것 같다.

얼마 전에 남편이랑 어딜 다녀오다가 아파트 앞에서 붕어빵 포장마차를 봤다. 

나는 얼른 차를 세우라고 성화를 부렸다.


아버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붕어빵을 그대로 지나칠순 없었다.

그때는 국화빵이었지만  모양새가 붕어로 바뀐 그 둘은 동족이다. 

오랜 시간 차를 타고 오느라 화장실 노래를 부르고 오던 길임에도 

나는 길게 늘어선 줄 뒤에 섰다. 

남편에게 시퍼런 종이 한 장을 받아 들고 거기에 동심을 꽂았다. 


그날따라 날씨가 어찌나 쌀쌀하던지 그냥 들어갈까 하다가 끝내는 내 차례가 되었다.

밀려드는 손님을 맞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람은 젊은 청년이었다.

"몇 시부터 하세요?"

"오후 다섯 시부터요."

"장사가 잘 되네요."

"쿠쿠쿠쿠"


저녁을 잔뜩 먹고 오던 길이라 세 개만 사봤는데  값은 2.000원이었다. 

앙금으로는 팥과 슈크림 두 종류가 있었다.

좋아하는  팥은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슈크림이 든  붕어빵을 들고 좋아라 집으로 뛰어가는데 어린 시절의 내가 보였다. 


붕어빵 한 입을 베어무니 세상에 이럴 수가.

이렇게 맛있을 수가. 

겉바 속촉의 우리 시어머니 같은 성품의 붕어빵이었다.

붕어빵은 우리 아버지도 모셔오고  동네 골목도 재현시켰다.

언니들도 불러오고 어디서 사는지 모르는 친구들까지 모두 불러들였다. 


둘이서 붕어빵 세 마리를 한 개 반씩 먹어치우고 우리는 파안대소했다. 

멀뚱하게 서있던  행복이란 녀석이 우리 곁에 와 앉아 있었다. 

장사를 처음 시작했을 텐데도 타지도 않고 연 노랑으로 구워낸 

붕어빵은 찰지고 구수하고 달척지근 했다. 


다음엔 더 많이 사 먹어야지.

그 후  집을 나설 때마다 붕어빵 마차가  문을 열었나 보면 비닐만 펄럭일 뿐 썰렁했다. 

저녁에 일부러 밥을 적게 먹고 현금 오천 원을 들고나가봐도 여전히 문을 열지 않았다. 

학교 옆에 비닐로 싸매져 있는 붕어빵 마차. 



무슨 일일까?

청년이 갑자기 바쁜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아니면 어디가 아픈가.

기계에 밀가루 반죽을 풀어낸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그새에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 


위치는 아파트 후문이고 상가 하고도 멀다.

초등학교 후문이라 아이들만 바글거리는 장소다.

청년에게 어떤 사정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추운 날씨에도 긴 줄로 청년을 성원해 줬던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할 것이다.


이곳은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다. 

우리 아파트 만으로도  2.300 세대가 넘는다. 

그 옆으로 아파트들이 줄줄이 들어서면서 초등학교 학생수가 급격히 늘어나 

지금 교실을 증축 중이다. 

학교가 소멸되느니 어떠니 걱정스러운 뉴스와는 거리가 먼 곳이다. 


이런 요지에 붕어빵 청년은 탁월한 안목으로 자릴 잡았다.

떼돈은 아닐지라도 새로운 일에 대한 호승감으로 그 자릴 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며칠만 성업 중이었고 이내 붕어빵 마차가 온기에서 냉기로 변해버렸다. 

요즘에는 붕세권이라고 할 정도로 붕어빵 있는 곳을 찾아다닌다.

길거리에 흔하던 붕어빵 장사들이 많이 사라졌다는 증표다.


장사들이 사라진 첫 번째 이유는 붕어빵을 만드는 재료들이 대폭 올라서 

장사를 해봐야 별로 남는 게 없다는 이유다.

하루종일 팔아도 이것저것 빼고 나면 헛장사하는 것 같단다.

박리다매도 안되면 굳이 장사를 할 이유가 없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서울 강남에서는 붕어빵 한 개 값이 오 천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붕어빵이 크루아상처럼 결대로 찢어져 부드럽단다.

아무리 부자 동네라 하더라도 붕어빵 한 개에 오 천 원은 비싸다.

홍대 부근에서 사 먹던 붕어빵은 한 개에 500원이었다. 

붕어빵조차  빈부격차가 심하게 느껴진다.


이제 한 해가 마감을 하는 시점이다. 

벚꽃을 쫓던  엊그제 같던 시간이 정처 없이 떠나갔다.

한 여름의 폭염 앞에서 얼른 여름이 지났으면 좋겠다고 푸념하던 시간들도 다 가버렸다. 

알록달록했던 가을 단풍들도 어딘가로 실려갔다.

속절없이 떠나간 것들 뒤에 우리는 지금 나목처럼 서있다. 


나목들이 말없이 서있는 거리엔  군고구마 장사가 등장하곤 했다.

군고구마는 지금 슬그머니 편의점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기기의 현대화와 맥반석의 절묘한 조화는 맛있는 군고구마를 굽기 딱 좋은 조건을 만들었다. 

편의점의 인기 품목으로 자리 잡은 군고구마는 거리의 먹거리들을 시시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거리에서 파는 군고구마, 붕어빵, 호떡, 떡볶이, 어묵 같은 음식들이 더 정겹다.

한 겨울에는 이런 품목들을 마음대로 장사할 수 있도록 좀 내버려 뒀으면 한다.

아빠도 엄마도 언니도 누나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군고구마, 붕어빵, 호떡을 가슴에 안고 

뜀박질을 좀 해봐야 되지 않겠나.

옛날의 우리네 아버지들처럼 그렇게.


아울러 썰렁하던 붕어빵 마차에도 다시 온기가 찾아들길 기원한다.

청년은 지금  고작 다섯 시간 안팎으로 일을 시작한 일터에서 시베리아 벌판보다 

무서운 강풍을 맞고 있다.

어떤 이가  장사가 잘되는 것이 배가 아팠다면 얼른 빗장을 풀어주라.

찢어진 국화빵 속에서 아버지의 온기를 발견하던 유년의 길목이 

그 길과 연결될 수 있도록 말이다.


연말에는  붕어빵 하나씩이라도

서로의 손에 온기를 전하는 인간애가 살아났으면 한다.

비싸지 않지만 비싸지 않은 것도 얼마든지 우리네 삶에 활기와 온정을 전할 수 있다. 

하루를 마치고 이부자리에 드는 순간, 오늘도 내 마음 온도가 따뜻했는지 점검해 볼 일이다.

누군가의 가슴이 더더욱 허전해지는 연말이니까.

A4용지에 유화로 그린 붕어빵. 필자.

                                    



油畵(유화)는 문자 그대로 기름으로 그리는 그림이지요.

다 아실 거예요. 

기름으로 그리다 보니 캔버스 천 위에 그림이 올라가야 맞지요.

그런데 난생처음으로  A4용지에 유화 그림을 그려봤습니다.


왜냐?

붕어빵 얘길 썼는데 종이에 한 번 그려보고 싶었어요.

그리다 보니 아무래도 색을 입혀야 할 것 같았지요.

붕어빵은 노릇노릇하게 구워야 맛있잖아요.

흐여멀겋게 그리면 익다 만 고기가 되는 거니까요.


유화물감을 칠해놓으니 훨씬 맛있어 보이고 리얼해 보였어요.

시판되는 붕어빵 크기와 같은 사이즈 일거예요. 

밀가루 값이 많이 올랐거든요.

그전보다 사이즈가 작아졌어요. 


노릇하고 바삭하게 구웠으니 많이 드시고 가세요.

이 그림이 잠시나마 실제 붕어빵을 먹듯 맛있게 느껴진다면 좋겠습니다.

캔버스보다 종이에 그리는 유화는 더 어려워.  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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