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를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어야 할까요? 함께 고민해 봅시다
이번 편에서는 다소 무거운 주제일 수 있는 트라우마(Trauma)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누군가가 "삶을 살아가면서 트라우마가 전혀 없다면 확률적으로 봤을 때 극히 낮은 확률 그룹에 속한 것"이라고 말 한 것처럼, 총알과 폭탄 파편이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삶을 살면서 총알이나 폭탄에 의해 작은 데미지조차 안 받고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크고 작은 인생의 굴곡과 크다면 크다고 할 수 있는 상처를 받고 오랜 시간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경험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고난과 역경은 사람을 단련시켜주기도 하지만, 차마 감당하기 어렵고 "아무 의미 없이 폭력적이고 악하다"는 해석 말고 다르게 해석할 수 없는 그런 경험은 사람의 마음 속에 쉽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로 남아 그 사람의 인생에서 지속적으로 독소를 내뿜고, 그 사람의 능력 발휘에 지장을 주고, 더 나아가 대인 관계에도 악영향을 주며, 인생을 쉽게 음미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트라우마는 그리스어로 "다친/상처 (Wound/Injure)"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외상을 의미하지만, 심리학이나 철학적으로는 내면 안에 있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깊은 정신적 상처를 의미합니다. 과거 히포크라테스는 여성들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히스테리 (Hysterie)"적 신경증의 원인이 여성들의 "자궁(Hystera)"소유 때문이라고 보았지만, 이후 프로이드를 비롯한 정신학자들의 지속적 연구에 의해서 히포크라테스의 분석은 올바른 것이 아니고, 그보다 개인이 어린 시절 성적으로 학대(성폭행, 강간, 성희롱 등)를 당하거나 배신, 지속적 따돌림, 전쟁 경험 또는 자연 재해 (지진, 화산) 등에 의해 시각적으로 각인된 경험이 그 사람을 트라우마의 늪에 빠지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Herman, 2015).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들은 그 기억을 평소 기억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억눌러서(Repress) 그 기억과 경험에 대해 거의 마비된 듯한 감정(Numbing)을 형성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과 비슷한 상황에 마주하게 되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기억이 섬광처럼(Flashback) 재현됩니다. 가령, 어느 빨간색 옷을 입은 사람에게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사건이 발생하고 몇 년이 지나서도 멀리서 빨간색 옷을 입고 걸어오는 사람만 봐도 오금이 저리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들은 그 트라우마에 대해 반응하고 대응하기 위해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하며 그 분노를 외부로 분출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그 폭력성과 독성을 외부가 아닌 자신 자신의 내부를 향해 화살을 돌려서 자신을 자책하거나 원망하며 심한 경우 실어증에 걸리는 등의 증세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몸은 기억한다(The Body Keeps the Score)"의 저자인 베셀 반 데어 코크(Bessel van der Kolk, 2014)는 트라우마 환우들은 상상력이 결여되고 정신적 유연성이 소실되어 세상을 일반인들과 조금 다르게 본다고 했습니다. 과거의 트라우마라는 어두운 렌즈를 조금이라도 투과해서 현실을 해석하고 있다는 말이죠. Kolk(2014)는 트라우마 환우들은 일반적으로 뇌에 일종의 변화가 생긴 상태이며, 그 동안 자신들에게 생긴 경험에 대한 기억이 조직적으로 규칙적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고 단편적으로 불규칙하게 끊어진(Disconnected) 상태라서 과거 그들의 경험은 현재 그들의 삶과 연결되지 못해서 일종의 다리(Bridge)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Kolk(2014)는 또한 트라우마는 그 사람의 마음, 뇌, 그리고 몸에 일종의 자국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이 따뜻한 태도로 위험한 요소가 지나간 사실을 그 환우가 심리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깨닫고 주어진 현재의 현실을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트라우마가 뇌에 영향을 주어 뇌가 변화했다는 점에 착안해서 과학자들이 노력한 결과, 1950년대 클로르프로마진이라는 정신의약품의 개발을 필두로 해서 트라우마 환우들을 돕기 위한 수 많은 정신의약품들이 개발되고 생산되어 1950년대는 이른바 "약물의 시대"가 되었고, 의사와 환우들은 이제 트라우마를 비롯한 정신질환도 과거 각종 전염병들이 적합한 약물의 개발과 동시에 해결되고 사라진 것처럼 정신질환도 약의 힘에 의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정신질환은 그런 제약회사와 정신과 의사들의 자신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습니다. 물론 "프로작"으로 대표되는 정신과 의약품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런 약은 환우들에게 좋은 치료로써의 보조적 도구는 되지만, 궁극적 해결책(Final Solution)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Kolk(2014)는 또한 트라우마는 그 사람에게 말문이 막히게 만들며,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도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도하려고 하면 매우 괴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했습니다. Kolk(2014)는 트라우마 환우들이 신체적으로는 공포와 격렬한 분노, 무기력함을 느끼고 그런 경험에 맞서 싸우거나 도망가고 싶지만, 트라우마의 본질은 언어적 표현을 차단해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런 감정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환우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현상은 경험이 분리되어 조각난 감각의 기억이 현실로 끼어드는 해리 현상과 머릿 속이 텅 빈 듯한 이인증(자기와의 분리) (Kolk, 2014), 그리고 끊임없는 과거 경험의 재현(Doubling)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환우들은 그들이 경험한 끔찍한 일이 또 발생할까 봐 전전긍긍하기도 하고, 그런 슬픈 감정이 오래도록(때로는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하는데, 환우들의 뇌는 비유적으로 살펴보면 마치 출입문이 열려 있고 여과 장치가 없는 것과 같아서 감각 정보가 금세 넘처나서 환우들은 그 시스템을 정지시키려다 보니 시야는 좁아지고 한 가지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경향이 생긴다고 합니다 (Kolk, 2014). 그래서 환우들은 이런 시스템이 알아서 넘쳐나는 감각이나 정보를 차단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외부 세상을 차단할 수 있도록 약물이나 알코올의 힘을 빌리게 되어 심한 경우 중독되기도 하는데, 비극적인 것은 이렇게 문을 닫게 되면 기쁨이나 즐거움을 주는 원천도 동시에 차단된다는 점이라고 합니다 (Kolk, 2014). 그리고 트라우마 환우는 극도의 불안과 분노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 사람이 겪은 트라우마가 그 마음과 신체에 본인의 가치나 상식, 그리고 경험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트라우마 환우가 자신의 팔을 칼로 긋거나 하면서 자해를 하는 이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또는 설명되지 않는 경험"을 팔에 피가 나게 함으로써 "칼로 팔을 그으니 피가 나고 아프다"라는 설명 가능한 고통으로 전환하려는 심리에 기인한다고 합니다 (Kolk, 2014).
Kolk(2014)는 트라우마 환자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했는데, 그 중에 도움이 될 만한 점을 뽑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환우의 몸과 마음, 인지 등이 균형 있게 활성화되고 통합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환우가 "과거의 경험은 이미 종료되었고 지금은 안전하다"는 점을 확신하며, 지금 경험하는 현실의 현재(Here and Now)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2) 트라우마가 극복되지 않은 환우의 경우 그 사람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다양한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어 혈액 중에 계속 둥둥 떠다니고 있어서 그 사람은 방어적인 행동과 감정적 반응이 반복된다. 그런 호르몬을 중화시키거나 없애려면 "운동"이나 "명상", 또는 "마사지"가 효과적이다. 또한 안구 움직임을 통한 EMDR요법도 트라우마로 인한 불안감 해소에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EMDR을 배워보고 싶은 분은 링크 참조: https://brunch.co.kr/@byungilkim/22)
(3) 트라우마 환우의 뇌는 정서적 뇌와 이성적 뇌가 서로 갈등을 겪으면서 둘 사이에 주도권 다툼이 벌어진다. 이 전쟁은 위, 장과 심장, 폐에서 치러지며 신체적 불편함과 고통이 발생한다. 트라우마 환우는 불안과 신체적 고통 앞에서 쉽지 않더라도 자신이 그런 불편을 감수할 수 있으며, 신체와 감정의 균형과 조화를 "주도적으로 장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물론 환우 혼자서 이런 것들을 모두 갑자기 시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 중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격려해줄 수 있는(Empowering) 사람과 건강한 관계(Healing relationship)를 맺는 것이 필요하며, 그런 연합(Reconnection) 안에서 주변 사람과 대화하고 교류하며 공포를 더 이상 두려워하기보다는 효과적으로 음미하고 맞대응할 수 있는 "Taste fear"를 배워나갈 수 있습니다 (Herman, 2015). 힘들겠지만, 두려워하는 기억이나 유사 상항에 노출하는 것이 필요하며, 비록 탈진하고 울부짖더라도 그런 노출을 통해 그들은 귀한 일보 전진을 할 수 있습니다 (Herman, 2015).
Kolk(2014)는 너무나 좋은 연구결과와 분석, 그리고 의사로서의 제안 등을 많이 했는데, 트라우마 환우 본인과 트라우마 환우를 주변에 둔 가족이나 친구들은 Kolk가 제안한 다음의 네 가지를 주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p.79 - p.80).
(1) 인간은 서로를 치유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대인 관계와 공동체 관계의 회복은 다시 행복을 찾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2) 언어는 자기 자신과 타인을 변화시키는 힘을 부여한다. 서로 이야기하며 서로 공통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3) 인간은 호흡, 움직임, 접촉과 같은 활동을 통해 신체의 생리적 기능을 조절한다.
(4) 사회적 조건을 변화시켜 어른과 아이 모두가 안전하게 머물고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수 있다.
트라우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본다면, "마음 속 상처" 이 외에 또 무엇이라고 정의하거나 설명할 수 있을까요? 트라우마는 완치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굳이 꼭 완치를 해야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그런 트라우마에 대응해왔고,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Shelly Rambo (2010)는 트라우마 환자를 생명과 죽음 사이의 놓인 회색 지대(Grey Area)에 놓여있는 사람들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 회색 지대에서 자신과 다시 화해/통합하고 또 다른 의미와 사랑의 삶을 위해 정진할 수 있다는 것이죠. 지금까지 제가 읽어본 문헌과 자료에 의하면 트라우마는 감기나 충치치료처럼 물리적으로 변화시키고 제거할 수 있거나 또는 제거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Herman (2015)은 트라우마의 완치라는 말은 의미가 없으며, 삶의 과정에서 그것을 주도적으로 다루고 대응하며 그 부산물로 인생의 숨겨진 또 다른 묘미나 새롭고 깊은 의미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신체 질환도 꾸준히 재발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도 치료를 받아서 건강해진 상황에서 결혼을 한 뒤에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을 학대했던 아버지와 비슷한 언행을 보이는 남편의 모습이나, 자식에게 소리를 치는 자신의 모습에의해서 과거의 트라우마에 다시 영향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Herman(2015)은 그렇게 해서 다시 트라우마의 늪에 빠지더라도 다시 나오면 되는 것이므로 그것을 결코 자책하거나 수치스러워하지 말라고 강조하면서 트라우마로 고생하는 환우가 치유를 위한 노력 끝에 인생의 즐거움을 음미할 수 있는 능력을 재생하고 주변 사람들과 좋은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면 그 보다 좋은 것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궁금해 할 환우들을 위해서 Herman(2015가 제시한 트라우마가 치료되었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트라우마적 요소가 주는 임팩트가 당사자가 스스로 관리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2) 당사자가 트라우마가 주는 기억과 관련된 느낌이나 감정을 견딜 수 있다
(3) 당사자가 트라우마의 기억에 대한 권한과 통제권을 가지고 그런 기억을 장악한다
(4) 트라우마적 기억이 감정과 연관되어 일관된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표현할 수 있다.
(5) 그 사람의 손상되었던 자존감이 회복되었다.
(6) 그 사람의 다양한 관계(본인과의/주변과의/기타 자연 및 신(神)과의 관계 등등)가 회복되었다
(7) 그 트라우마적 경험을 통해 이제 그 사람이 일관되게 재구성된 의미와 신념의 체제를 다시 구축했다.
트라우마로 마음과 몸이 피폐해져 있을지 모를 독자분이나 독자분들의 주변분들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런 경험을 겪고 깊고 긴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환우들의 손을 잡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같이 함께 버텨보자고 격려하고 싶습니다. 버티고 버티면, 그 터널의 끝에는 기대도 하지 못했던 보상과 위로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 때쯤이면, 아마 당신도 설명하거나 이해하기 불가능했던 그 경험을 조금은 더 쉽게 이해하고 이야기로서 설명하며 어색하게나마 미소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 주변에 트라우마로 힘겨워하며 매일 술이나 담배, 그리고 트라우마로 동반되어 나타나는 정신질환으로 고민에 빠진 외로운 친구가 생각나면, 전화 한 통해주세요. 그리고 힘들어하는 그 분을 위해 함께 슬퍼하고 우는 것도 나중에 돌이켜 봤을 때 무척 귀중한 추억이 되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독자분들 모두 건강한 한 주 보내세요
닥터 부메랑 유튜브 채널에 방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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