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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부메랑 Mar 13. 2023

불안의 수수께끼를 마주하며

인생의 변곡점에 서있는 내담자

 2022년 11월 무렵의 어느 날, 평소처럼 수요일 오후 미팅을 끝마치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11월이 되면 오후 4시만 돼도 벌써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기온이 떨어져서 스산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미팅을 끝내고 나와서 맡게 되는 사무실 밖에 있는 꽃과 나무들의 자연향은 내 몸과 마음이 다시 한 번 리프레쉬되는 힘을 주었다. 그 향을 느끼며 잠시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였는데 전화를 받자마자


"OOO 박사님이시죠? 네, 저는 S라고 합니다"

라고 말하며 나를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반가워하며 부르는 어떤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미팅을 위해 다른 곳으로 가느라 자세한 대화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내가 일전에 LA지역에서 어떤 기자를 통해 인터뷰했던 기사를 보고 거기에 적힌 내 연락처를 보고 전화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현재 불안감과 불면증으로 몹시 힘들어서 나와 상담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날 저녁 나는 그에게 다시 전화를 했고 그의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듣게 되었다. 그리고 접수 상담 (Intake) 세션을 예약하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 다음 주 어느 날 나는 그를 드디어 대면하여 만날 수 있었다. 사무실로 들어온 그는 회색 정장을 입고 있었고, 큰 키에 검게 그을린 피부를 지닌 준수한 외모를 가진 30대 남성이었다. 그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며

내게 악수를 하며 인사했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주차장에서부터 빨리 걸어 온 것 같아서 그에게 쥬스를 한 잔 따라주며 호흡을 가다듬도록 권했다. 이후 간단히 상담에 대한 규정과 방침 등을 설명하고 그것들에 대한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오늘이 첫 접수 상담 (Intake) 시간인 만큼 기본정보들을 수집하는 것에 집중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이 내담자는 초등학교 때 미국에 이민을 왔고, 현재 직장을 다니며 개인 사업도 겸하여 하고 있는 야망이 많고 자신감도 많아 보이는 남성이다. 그는 약 10년 전에 결혼을 해서 현재는 세 아이의 아빠로서, 또 남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성실히 사는 것에 만족한다고 했다. 그러던 그는 약 6개월 전부터 과호흡, 불안감 등으로 인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게 되었고, 그런 불면증과 불안감, 그리고 신체화 증상이 계속 지속되어서 자신감도 많이 떨어져서 괴롭다고 말했다. 내담자의 증상과 반응, 그리고 심리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심리검사를 진행하고 보니 그의 증상이 공황장애와 불안장애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나를 만나기 약 한 달 전에 이미 신경정신과 전문의를 만나서 해당 증상에 대한 약을 처방받았는데 약의 부작용을 우려하여 약복용하는 것을 지금까지 주저하며 약을 먹지 않고 있었다. 내담자는 본인이 어떤 불안이나 걱정이 있을 때 모든 가능한 상황들을 다 상상하고 거기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타당한 이유들을 다 마련해야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남성들에 대해서 어떤 일반화된 생각이나 편견을 갖고 싶지는 않지만, 그는 내가 만난 남성 내담자들 중에서 말을 굉장히 잘하는 편에 속했다. 보통 남성 내담자들은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자신들의 상황을 축소해서 간략히 말하는 경우가 많은 데, 이 분은 자신의 감정, 살아온 경험, 증상, 그리고 바라는 것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나로서도 이렇게 동기부여가 되어있고 나와 협력하려는 의지가 많이 보이는 내담자와의 세션은 나를 고무시키고 또 새로운 힘을 주기도 한다. 한 시간의 시간이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훌쩍 지나가 버렸다. 세션을 끝내고 그는 내게 다가와 잘 부탁한다며 악수를 했는데, 내 손을 꽉 잡는 그의 손 힘을 통해 어떤 간절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그 날 그와의 세션이 끝났다.


그 이후로 매주 나는 내담자와 화요일마다 세션을 가져왔다. 삼십 대 가장으로서의 고충과 불안감과 맞서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강한 의지, 그리고 쉽게 개선되고 있지 않는 불안 증상들로 인해 그는 기진맥진해져 있는 상태로 보였다. 어린 시절부터 20대까지 겪은 다양한 트라우마적 경험들을 이야기하며 내담자는 이제 자신은 그런 경험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빨리 건강을 되찾고 앞으로 정진하고 싶다고 매 세션마다 이야기했다. 세션을 거듭할수록 이 내담자를 자동차로 비유하면 주기적인 점검이나 관리를 받지 않고 그 동안 매일 과속으로 장거리 운전을 해온 차량처럼 느껴졌다. 그 결과 이 차는 지금 매우 과열되어 있고 손 볼 곳이 많아 보였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빨리 회복을 하고 다시 예전처럼 트랙에 들어가서 다시 달리고 싶어 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담자 본인이 자신의 감정이나 건강상태를 제대로 밀착해서 파악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냈다. 처음의 몇 차례의 세션에서는 주로 내담자의 상황과 증상, 기분 등을 듣고 이해하는 것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그리고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급하게 어떤 특정 상담 기법을 써서 세션을 이어가기보다는 내담자가 본인 스스로와 더 깊이 연결되는 것 (attached)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내담자가 느낀다고 믿는 상태가 아닌 진짜 자신의 몸과 마음이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연결되어 느낄 수 있게 유도했다. 처음에는 내담자가 나의 의도와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만큼 그런 안이함 속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들도 있었다. 


 내가 가장 먼저 내담자에게 물어본 것은 

"내담자님은 본인의 몸이 무엇을 원하고 있고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하고 계신가요?"

였다.


내담자는 이 질문을 제대로 이해 못 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내게 이 질문의 뜻을 다시 여러 번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차차 이 질문을 매 세션마다 듣고 자신과 점차 연결되어 가는 것을 느낀 내담자는 점차 내 질문의 의도와 뜻을 정확히 이해했고, 시간을 들여 자신의 몸과 감정을 관찰하며 그 몸과 감정과 깊이 교류하기 시작했다. 첫 출발이 조금 힘들었지만 내담자는 그 단계를 지나자 점차 가속이 되어 그 동안 무엇을 간과하며 살아왔고, 어떻게 자신을 필요이상으로 밀어붙였는지, 그리고 무엇을 더 생각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내가 묻기도 전에 미리 생각해서 장황하게 이야기를 해 나가기도 했다. 


지금까지 약 3개월 간 세션을 진행했다. 그리고 아직 갈 길이 더 펼쳐져 있지만 그와 내가 함께 협동하며 도착하게 된 중간지점에서 우리는 내담자가 다음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재구성 (Reframing) 해야 한다는 의견을 공유하게 되었다.


첫째, 내담자는 그 동안 자본주의 세계가 강요하는 가치에 지나치게 몰입하며 살아왔다. 물론 이런 부분들이 필요하지만 이것은 내담자의 몸과 가치관들이 정말 원하는 삶과는 차이가 있다.

둘째, 내담자는 자신의 몸을 비롯해 자신의 감정과 스트레스 등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고 지내왔다. 

셋째, 내담자는 그 동안 마음 속에 "이것은 절대 안 돼" (Never again)라는 식의 여러 가지 의무론적 사고를 다짐하며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제어하며 살아왔다. 


내담자 S의 마음에는 의무론적 사고방식이 많이 엿보인다. 그래서 그는 세션 중에 "남자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들을 자주 사용하며 자신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 등을 설명했다. 가령 남자는 야망이 있어야 하고, 돈을 많이 벌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아이들에게는 든든한 아버지가 되고, 아내에게는 의지할 만한 남편이 되어야 하고, 부모님들에게는 신뢰할 만한 아들이 되어야 하고, 동업자들에게는 능력 있는 동료가 되어야 하며, 남자로서 늘 강하고 능력 있는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내담자 S의 삶의 가치관의 큰 축이었다. 그래서 그는 청소년 때에도 또래 그룹에서 용기 없는 남자로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 위험한 행동도 친구들 앞에서 서슴지 않고 하기도 하고 그랬다. 물론 그의 그런 말들을 나는 너무나 깊이 동감하며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런 마음과 사고방식을 많이 가지고 살아왔고 지금도 그런 사고방식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마음과 사고방식을 삶의 현실 속에서 다른 가치들과 얼마나 균형 있게 조화시키며, 그 생각들의 강도를 낮추거나, 필요한 경우에는 그런 사고방식들을 다른 사고방식으로 대체할 수 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과정을 재구성 (Reframing)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사실 내담자 S에게는 이런 과정과 더불어 본인의 신체를 돌보는 것도 매우 필요해 보였다. 



내담자 S는 자신의 그런 의무론적 사고방식대로 살아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약 한 달 전 나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빡빡한 업무 스케쥴을 마치고 집에 와서는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 일을 돕고 나서야 밤 늦게 잠에 들어야 한다는 내담자 S에게 매일 밤 본인의 일간 스케쥴과 그 날 무엇을 했는지를 적고 그 날을 돌이켜보며 그 날 느낀 생각이나 감정들을 되새기며 일기를 써보라고 권면했다.


이런 식의 세션을 가지면서 내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내담자 S의 변화는 그가 스스로 이제 자신의 마음과 몸이 정말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며, 무엇이 그에게 격려의 힘을 주는지를 점차 깊이 그리고 정확히 발견하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내담자 S는 남자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그런 슈퍼맨적 이미지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스스로 상당한 무리를 해오도록 한 자기 자신의 그런 행동패턴을 알게 되었고, 이제 누구에게 자신을 보여주고 증명하기보다 무엇이 자기 다운 삶이며 자신의 가치를 최적화된 방법으로 실천해 갈 수 있는지를 예전과는 다른 각도에서 점검하고 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보다 깊이 돌보려 하는 내담자를 위해, 최근 세션에서 나는 그에게 매주 한 주 동안 자신을 돌보고 격려하기 위해 어떤 것을 했는지, 이른바 무슨 셀프 케어 (Self-care)를 했는지 물으며 세션을 시작한다. 그리고 의무와 책임감이 강한 그에게 가끔 자기 자신에게 가끔이라도 꼭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예외적인 상황을 허락할 수 있는지, 만일 그렇다면 그런 것이 어떤 의미로 느껴지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려운지 묻기도 한다. 그리고 슈퍼맨의 가면을 오랫동안 쓰면서 자신을 몰아세우며 살아온 그에게 이제 그 가면 뒤에 있는 내담자 S에게 정말 힘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 묻기도 한다. 세션을 시작하며 하는 이런 반복되는 질문들에게 대해 그는 매주 다른 답변들을 한다. 그것은 그가 한 주 동안 그런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하며 그런 것들을 자신의 삶의 맥락에서 재해석하고 또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천하려고 몸부림쳤다는 것을 나타내기에 세션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실행하려고 하는 그가 상담사로서 고맙기도 하다.


세션을 시작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다행히도 그의 수면은 예전보다 개선되었다. 그러나, 내담자 S의 케이스는 단순한 케이스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와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세션을 통해 다루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슈와 테마들이 계속 발견된다. 그리고 그 역시 자기 자신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발견하고, 깨닫게 되는 것들을 귀하게 여기고 있다. 지금 현재 내담자 S에게 제일 필요해 보이는 것은 정기적으로 주어질 수 있는 육체적인 휴식 그리고 그를 향한 타인의 따뜻한 사랑이다. 상담을 시작할 무렵에 내가 만약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내담자는 자기 자신이 강한 슈퍼맨 같은 남성으로서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신과 상담사인 나에게 보다 솔직해졌고, 자신을 깊이 직면할 수 있는 안목과 용기가 생겼다. 이렇게 동기부여가 되어있고 상담 목적이 분명하고, 직관력이 좋은 내담자의 경우는 내가 내담자를 가이드하기보다 그와 동행하되 그의 반발 뒤에 물러서서 그의 여정이 그의 행복과 안위를 위해 올바른 방향으로 유지되어 가도록 그와 협동하며 그를 돕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접근법이 된다.



며칠 전에도 나는 내담자 S와 세션을 진행했다. 그 세션은 기본적으로 내담자 S를 위한 시간이다. 그런데 그 날따라 세션을 마치고 나는 내가 일종의 위안과 격려를 느끼게 되었다. 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의 모습을 통해 마치 거울에서 내 모습을 본 것처럼 나도 나 자신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며 나의 길과 방향, 그리고 나 자신을 새롭게 돌보는 아이디어들을 갖게 되어서일까? 


내담자 S와는 아직 다뤄나가야 할 이슈들이 많다. 그리고 그의 수면문제는 예전보다 개선되었으나 그는 여전히 불안감과 우울함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이제 며칠 뒤에는 그와 사무실에서 또 상담 세션을 갖게 된다. 한 시간 동안의 상담시간을 통해 내가 그를 위해 어떤 의미 있는 말이나 질문, 또는 격려를 할 수 있을까? 잠시 하늘을 바라보니 어느새 밤이 된 검은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과 달이 유난히 반짝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검은 하늘에서 빛을 주고 있는 별과 달처럼 나도 그에게 빛을 전달하는 상담사가 되고 싶다. 그 빛은 그를 향한 존중과 호기심일 수도 있고, 인간으로서의 예의와 사랑일 수도 있고, 나의 힘이 아닌 어떤 절대자의 그를 향한 은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그런 빛을 통해 내담자 S가 회복되려면 내가 더 겸손해야 하고 내 의지를 더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그래야 그만큼의 공간이 생기고 그곳에서 내담자 S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을 테니까. 


이번 주 그와의 상담 세션 시간이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그 상담시간을 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준비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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