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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면 불안하신가요?

[엄마의 쉼표23 : 내 안의 북극성을 향해, 오늘도 항해.]

by 삐와이


지난 한 달, 우리 집은 마치 오래된 괘종시계 같았다.

삐걱거림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는, 그저 초침 하나를 겨우 밀어내는 것만으로도 온 힘을 다해야 했던 시간들.

밤마다 남편과 나는 같은 말을 주고받았다.

"미안한데, 내일은 조금만 더 일찍 나갈게."

그 말 속에는 피로가, 미안함이, 그리고 서로를 향한 애틋한 이해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새벽 어둠 속에서 각자의 출근 준비를 마치고, 잠든 서로의 어깨를 조심스레 흔들었다. "오늘도 잘 부탁해." 그 짧은 말이 우리가 하루를 견딜 수 있는 유일한 주문이었다.


아이들은 매일 아침 작은 투쟁을 벌였다.

양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가방에 책을 한 권 더 챙겨야 한다고.

달래고, 설득하고, 때론 단호하게 선을 긋고, 그렇게 가까스로 등원을 마쳤다. 차에 올라타면서 속으로 다짐했다. "오늘은 제발 제시간에 퇴근하자." 하지만 회사는 늘 우리의 다짐보다 강했다. 마감이, 회의가, 갑자기 튀어나온 업무가 우리를 붙잡았고, 결국 '미안한데 오늘 좀 늦을 것 같아'를 다시 한번 가슴속에 삼켜야 했다.

모든 결정은 언제나 늦게 내려졌고, 모든 계획은 번번이 수정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새벽 네 시에 눈을 떴고, 아이들이 문화센터 수업을 듣는 동안 복도 벤치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하루치 삶이 매일 우리를 압도했다. 숨 쉴 틈 없이, 여백 없이.



KakaoTalk_20251012_225746188.jpg 모처럼 둘만의 저녁 데이트를 떠났는데 받은 사장님의 해피추석 서비스.

그렇게 버티던 우리에게 마침내 긴 명절 연휴가 찾아왔다.

출발 삼십 분 전에야 비로소 짐을 싸기 시작했지만, 어쨌든 네 식구는 밤 고속도로를 달렸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가로등 불빛이 마치 시간의 잔상 같았다. 나와 남편이 동향인 덕분에 우리는 나의 친정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엄마는 연신 "들어가서 쉬어라"를 되풀이하셨다. 아이들을 엄마가 데리고 나가는 동안, 우리는 오랜만에 둘만 남았다. 늦잠을 잤다. 삼시세끼를 걱정하지 않았다.

집안일도, 업무 메시지도,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 며칠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브런치 연재도, 회사 일도, 자기계발 유튜브도, 인스타툰도. 오직 쉼에만, 온전히 쉼에만 몸을 맡겼다.


그리고 돌아왔다. 서울로, 일상으로.

몸은 출근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고향집 소파에 누워 있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변해 있었다. 자기계발 콘텐츠 대신 예능이, 영화가, 책 리뷰가 추천 목록을 채우고 있었다. 처음엔 불안했다. "이렇게 멈춰도 괜찮을까?" 익숙한 죄책감이 가슴을 조였다. 하지만 이번엔, 묘하게도 괜찮았다. 조급하지 않았다. 무너지지 않았다.




성공한 구글러이자 리더십 컨설턴트 조용민 대표는 그의 책 『언리쉬(Unleash)』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음속에 북극성을 품으면 길이 보인다."

그의 말에 따르면, 북극성은 ‘도달할 수 없지만 늘 머리 위에서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존재’다.

그것은 목표가 아니라 방향이다. 그래서 북극성을 향해 걷는 여정에서 잠시 멈춰 서거나, 돌아가는 길을 택하거나, 심지어 주저앉더라도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옳은 방향을 보고 있는 것이니까.

이번 쉼을 통해 나는 그 말을 비로소 이해했다. 내가 잠시 멈춘 것이 아니었다.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속도를 늦춘 것이었다.


이제 다시 하루를 정리한다. 아이들을 재우고, 짧은 홈트로 굳은 몸을 풀고, 내일 아침거리를 미리 챙기고, 회사에서 해야 할 일을 적는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쓴다.

쉬어도 괜찮다. 우리는 '꾸준함'을 직선으로만 생각하지만, 사실 꾸준함은 점들이다. 멀리서 보면 그 점들은 결국 하나의 선이 된다. 흐릿하고 떨리는 선이지만, 분명히 선이다.

작심삼일이 문제라면, 4일째마다 다시 마음을 먹으면 된다. 중요한 건 '삼일(三日)'이 아니라 '마음(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방전되었던 에너지가 스며들 듯 채워지는 기분이다. 풀어졌던 몸이 다시 뛸 준비를 한다.


문득 어릴 적 아빠가 늘 말씀하셨던 "오뚝이처럼 일어나라"는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오뚝이는 넘어지지 않는 게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다 목표에 미치지 못해 처절하게 슬퍼하는 나를 향해 "나는 자기가 아무리 밑으로 내려가도 다시 언제든 올라올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믿어"라고 말해주는 남편의 믿음에, 이제야 조금 보답하는 느낌이다.


오늘 그렇게 나는, 쉼으로 나의 북극성에 한 걸음 더 다가가본다.


25.10.13


PS. 그간 연재를 뛰어넘었던 저의 게으름을 이렇게 포장해봅니다.

다들 긴 연휴 재충전의 시간이 되었길 바라며, 늦었지만 계절의 바뀜도 여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날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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