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 하루 전이 엄마 생신이다. 이른 퇴근을 하고 조각케이크 하나 사서 엄마를 뵈러 가려고 했는데 직장 동료의 아버님 부고에 조문을 가게 되었다. 누군가의 삶의 시작을 축하하는 날 누군가의 마지막을 슬퍼하는 자리에 앉아 있노라니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들이 뒤섞인다.
부처님 오신 날, 눈을 뜨자마자 간단히 챙겨 엄마를 뵈러 간다. 부처님 탄생일날 엄마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모두의 마지막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납골함 앞에 놓여있는 엄마의 사진을 보며 '엄마 생신 축하드려요.'라고 인사를 전하는데 갸웃한다. 납골당에서 전하는 3번째 생신 축하인사인데 처음인 것처럼 낯설다.
돌아오는 길 걷고 싶어 진다. 갈까 말까 하는 고민이 무색하게 운전대는 화포천을 향한다. 햇볕이 뜨겁다. 너무 준비 없이 온 탓에 햇볕을 온전히 받으며 평소 즐기던 산책로로 걸을 자신이 없다. 오늘은 가볍게 벚나무 둑길로 천천히 걸었다 되돌아오자 생각하고, 둑길 양쪽으로 쭉 뻗은 벚나무가 만들어 준 그늘길을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예상보다 길게 느껴지는 둑길을 걷는다. 저 멀리 엄마랑 즐겨 앉던 공간도 보이고 함께 걷던 길도 보인다. 한적한 길을 천천히 걷다 보니 되돌아와야 하는 지점에 또 예상보다는 빨리 도착한 것 같기도 하다. 되돌아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요즘 재방송 중인 드라마 '도깨비'대사가 떠오른다. "저승은 유턴이니까요."
유턴해서 걸어온 길을 다시 걸으며 '언젠가 내가 살아온 길을 이렇게 걷게 된다면 나는 내 삶의 발자취를 어떻게 바라볼까?'라는 의문이 든다. 내 삶의 순간순간을 역순으로 걸으며 '아!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었지! 그랬었지! 그럼에도 참 기특하게 잘 지나왔구나! 수고했다! 대견하다! 잘했어!'라며 기꺼이 미소로 화답해 줄 수 있을까.
벚나무마다 노랗게 붙여둔 찍찍이들이 줄지어 있는 것을 보니 마치 파노라마로 펼쳐놓은 내 삶의 발자취를 시간대별로 보여주는 사진들 같다. 가장 최근의 기억부터 띄엄띄엄 떠올리며 몇 년씩 점프하며 기억을 소환하는데 40년 넘은 내 삶의 기억 파편이 다채롭지도 많지도 않다. 아직 노란 사진들이 앞에 쫙 펼쳐져있는데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목적지를 향해 갈 때보다는 돌아올 때가 더 짧게 느껴진다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 이 순간 유턴해서 돌아가는 길은 한 없이 길다.
인생의 의미를 사색하기에는 한참 부족한 기억력 탓에 모자람만 남는다. '되돌릴 수 없는 어제를 기억해서 뭐 하며일어나지 않은 내일을 생각해서 뭐 하겠냐' 하며 머리 한 번 흔들고 입구로 향하는데발밑에 달팽이가 횡단 중이다. 저녁부터 비예보가 있으니 횡단 중에 말라죽지는 않겠지만 간간이 지나가는 사람과 자전거에 밟혀 죽을 수는 있을 것 같다.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녀였다면 풀잎에 달팽이를 올려 풀숲에 던져줬겠지만, 나는 가던 길 간다. 이 또한 달팽이의 삶이니까. 몇 발자국 걷는데 '이런' 내 발밑에서 바스락 '앗' 확인하지 않고 의연한 척 그냥 가던 길을 간다. 이 또한 그 달팽이의 삶이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