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의미를 찾아 되뇌며 생각하고 생각했던 낱말이건만 다음 날 눈을 뜨니 낱말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이토록 자신에게 생소한 낱말이었던가!
몇 주 전 도서를 구매할 상황이 생겨 고민을 하다가 도서관 대출 목적으로 적어뒀던 '차라투스트라, 그에게 삶의 의미를 묻다.'를 구매했다. 난독증처럼 읽기 힘든 철학서를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해준 고마운 작가님의 책이기에 망설임이 없다. 간간이 퇴근길에 카페에 들러 몇 장씩 읽기는 했지만 매번 멍하게 찻잔을 비우느라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토요일 아침, 초록이들 물도 주고 청소도 하고 빨래까지 마무리하고 나니 반가운 비가 내린다. 황사로 뿌옇던 대기가 비로 뿌옇게 된 창 밖을 보고 있노라니 가볍게 차를 우려 서재 창가에 자리를 잡게 된다. 워머에 티팟을 올려놓으니 차가 식을 걱정 없이 느릿하게 책을 읽을 여유도 생긴다.
철학 입문자로서 매번 '니체' 책을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의미를 찬찬히 되뇌며 책장을 넘기는데 익숙한 내용에서 너무나 생소한 낱말이 불쑥 나타났다. "긍지"라는 낱말이 이렇게 낯설게 느껴질 일인가 싶다. 낱말의 뜻을 생각한다. 긍지가 뭐였더라. 쉬운 이 낱말이 나에게 있는지 대수롭지 않게 자각하는데 의미를 모르겠다. 나에게 긍지가 뭐였던가!
검색으로 사전적 의미를 찾는다. '자신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가지는 당당함'이란다. 나는 나의 능력을 믿고 있나? 내가 살아온 삶의 순간들에 대해 당당한가? 나는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신뢰하고 믿는다. 그리고 항상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다 여긴다. 그런데, 조금 자세하게 목적어를 붙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나는 나의 능력을 믿고 있는지, 나는 삶 자체에 당당한지. 그래서 긍지를 갖고 있는지.
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어제의 낱말을 떠올린다. '기역, 기역, 기역' 초성만 떠오를 뿐 낱말이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뭐 이런 경우가 있나 하며 뒹굴뒹굴 하다 간신히 떠올린다.'긍지'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긍지에 찬 당당한 모습의 사람이 있나? 긴 세월을 굳건히 살아온 소나무의 거칠고 단단한 나무껍질을 손으로 만졌을 때의 느낌처럼, 유연하면서도 곧게 뻗은 흔들림 없는 나무둥지처럼 삶의 당당함이 느껴지는 사람. 그녀 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한 번도 그녀의 모습을 보며 긍지에 찬 멋진 사람이라 연상하지 못했다. 자신의 삶을 200%의 의지로 버티며 살아낸 그녀이기에 존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잔함이 있었는데 '나약한 자식의 오만함이었구나' 한다.
'잘 살았다. 후회 없다.'던 그 말이. '젊을 때는 남들보다 몇 배는 더 힘들게 살았고,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기에 그만해도 된다.'던 그 말이. 자식으로서 마음이 너무 아팠던 그 말이 진정 긍지에 찬 한 인간의 멋진 마무리였다는 것을 이제야 섬광처럼 박힌다.
스스로 자존감 높다 여기며 타인의 눈에 '당당해 보인다. 흔들림 없어 보여서 부럽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뭔가 찝찝하고, 불편하고, 탈이 나기도 하는 모순적인 나 자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원인을 찾지 못했었는데, 내면 깊이 나에게 없는 것 '긍지'가 답이었나. 긍지가 없는 자존감을 허상일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