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처럼 되돌아가는 나의 습관 하나부터 무심코 내뱉는 수많은 말과 행동 속에서 흔적이 묻어난다.
자신이 만든 습관인 줄 알았던 tea time.
따뜻한 차 한잔의 시간 동안 오롯이 혼자인 순간, 이제야 어떤 마음으로 그 순간을 비워냈을지 알 것도 같다. 여전히 티 테이블 세팅이 중요하기에 그날의 분위기와 날씨에 따라 홍차와 찻잔 그리고 달다구리로 풀세팅을 마친 후에야 홍차를 비워가는 내 시간은 꾸밈없이 숨 쉬듯 녹차를 비워가던 그녀의 시간을 조금은 닮아가는 듯 순간순간 홍차 대신 녹차에 옅은 시선을 보내며 하지만 아직은 홍차를 비워낸다. 그녀의 손길로 전해진 녹차가 아직은 조금 남아있음에 언젠가 비워져 사라질 그 손길을 시선으로 잡아본다.
화병 대신 투명한 잔에 꽂아 둔 후리지아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분홍꽃이 시들어간다. 투명한 잔의 물을 비우고 꽃을 다시 꽂는다. 건조한 실내공기 덕분인지 꽃은 투명한 잔에 꽂힌 채 자연스럽게 말랐다. 분홍꽃과 함께 꽂아둔 유칼립투스도 멋스럽게 건조됐다. 분홍꽃을 송이송이 하나씩 잘라서 정성스럽게 닦은 투명한 잔에 다시 담고 유칼립투스를 꽂는다. 싱그러움이 사라진 자리에 시간이 담겨진 듯 나름의 의미로 자리를 잡는다. 서재에 놓아둔 후리지아도 꽃 하나하나 조심스레 잘라내어 이번에는 홍차잔에 소복이 담아본다. 빛깔을 잃지 않았기에 가벼이 그대로 존대한다. 홍차잔 속에 담긴 후리지아 앞에 웅크리고 앉아 멍하니 있다. 낯선 나의 행동 끝에서 어느 날, 시골길에 떨어진 벼 몇 가닥을 줍던 흔적이 떠오른다.
집으로 가져온 나락을 한 톨 한 톨 벗겨내어 커피숟가락 반도 되지 않는 개수의 쌀알을 밥 지으실 때 같이 넣어 식사준비 하시던 모습이 스친다. 그날 이후 밥그릇에 밥톨이 보이면 가능한 깨끗하게 떼어서 먹었다. 점점 무신경해져 밥을 생각 없이 남길 때가 많아졌으나 어느 날은 문득 그 생각에 알뜰히도 밥그릇을 비운다.
어린 시절, 오르막길에서 무심코 버린 딸의 껌종이가 바람결에 떼굴떼굴 걸어온 길 끝까지 굴러갔을 때도 말없이 걸어온 길을 천천히 내려가 껌종이를 주워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말없이 다시 오르막길을 걸어오시던 그 모습이 평생 무심결에도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나의 평생 습관이 된 것처럼 아름다움이었던 꽃송이 하나하나를 가위로 잘라내는 내 손끝이 볍씨 한 톨 한 톨 무심한 듯 벗겨내던 그 손끝의 흔적으로 떠오른다.
퇴직하시는 분을 위해 동료들이 마음으로 함께 불러드렸던 조용필의 <바름의 노래> , 유명한 노래건만 나는 몰랐던 노래 가사를 손에 들고 내 감정에 눈시울을 붉히며 목이 메어 중간중간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가사의 의미가 뭘까 한참을 생각하며 한 동안 무한 반복으로 이 노래를 들었다. 여전히 가사의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 하지만 오늘은 '꽃이 지는 이유'를 나만의 해석으로 이해가 되는 날이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아직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른다. 노래에서는 그 해답이 사랑이라는데 그 사랑이 뭔지도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기꺼이 살아내다 보면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거라 미련을 가져본다.
천성이 게으름인 하루사리의 삶에 천성이 부지런함이었던 그 흔적들이 스며들어 불쑥 게으름을 이기는 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