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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회귀 Jul 04. 2021

각인

이름과 모습이 사라진다는 것은

책에 내 이름이 사라져 가듯 사진에서도 내 모습이 사라져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서가를 바라본다. 딱 10권의 집착을 내려놓고자 한다. 배신감에 버럭 했던 책부터 앞으로 다시 읽지 않을 책을 고른다. 책 속 흔적 지우기에 들어간다. 어김없이 나의 이름들이 여기저기 있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모른다. 책 모서리마다 뭐가 좋다고 도장으로 이름을 찍고, 손수 이름을 적어 놓은 흔적, 그것도 부족했는지 어김없이 속지를 펼치면 구입 날짜와 이름이 있다. 권당 이름이 기본 2번 이상 적힌 책이 대부분이다. 네임펜을 준비하고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이름을 지운다.


오래된 책일수록 내 이름이 많다. 책을 영원히 보관할 거라 생각했던 걸까!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확신이었던 걸까! 자존감 높았던 그때의 나였던 걸까! 구석구석 4번의 이름이 적힌 책을 지나 3번 적힌 책, 2번 적힌 책 순서로 지운다. 최근 구입한 책에는 속지에만 구입한  날짜와 이름이 있다. 버릴 때 그 부분만 찢어서 버려야겠다는 구입과 동시에 버릴 것을 생각한 책이다.


서가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앨범 칸을 보며 아! 한다. 꼭 기억하고 싶은 사진은 인화를 하고 매거진 형태로 만들어 보관한다. 30대 초반까지의 사진들은 기승전 모든 사진에 내 얼굴이 있다. 심지어 인화한 사진을 오리고 붙이며 정성 들여 만든 사진첩 속에는 배경은 잘려나가고 똑같은 내 얼굴만 한 페이지 가득이다. 30대 중반에 만든 사진첩에는 간혹 내 얼굴이 있으나 대부분 풍경과 그 순간의 배경과 느낌이 많이 담겼다. 그 후로 내 모습은 간간이 배경 속에 함께 존재한다. 사진 찍을 때마다 친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옆모습이 예쁠 나이지 하던 것이 뒷모습이 예쁠 나이를 지나 내가 여기 있었지 하는 사진들로 존재한다. 사진 속 내가 아닌 내 시선이 머문 흔적들이 의미 있어졌다.


읽히는 내용보다 마음에 담기는 의미와 생각이 중요해지면서 읽을 때마다 다른 색으로 와닿는 부분에 줄을 긋고 메모하는 습관이 있기에 혹시나 하여 책 속도 살펴본다. 없다. 줄 그은 흔적이 거의 없다. 제목과 목차 등 나름 살펴보고 선택한 책이건만 20장을 넘기지 못하고 덮은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정작 책 속에는 내 흔적이 없다. 다행인 건지 신중하게 책을 구입하지 못한 낭비적 습관을 반성해야 하는 건지 여하튼 반성한다. 폐휴지 버리는 날이라 지금 버려야 하는데 무의미한 미련이 남는다. 차 한 잔 하고 버려야겠다.




그림자가 아름다운 하루살이는 풍경이 되어 비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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