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숲 일기 / 에세이
올해는 이른 폭염에 밤에도 뜨거운 바람이 불었다. 방송에서 기상이변이라는 말을 쓴 지도 오래된 것 같다. 사계절이 분명해서 겨울에는 혹한(酷寒)으로 온몸을 감싸고 다녔고, 여름에는 혹서(酷暑)로 얼음 장사가 잘되었고, 봄·가을에는 나들이하기에 좋았던 시절도 이제는 한여름 밤의 꿈이 되었다. 재난 문자에 ‘극한 호우’라는 처음 들어보는 폭우 상황을 접하면서, 다가오는 폭염은 ‘극한 혹서’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것 같다.
아파트 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산들로 밤에는 산꼭대기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으로 뜨거워진 건물을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열린 창문으로 밤의 냄새가 나는 바람의 향내를 맡으면서 잠이 들곤 한다. 가끔 아파트 단지 내에서 들려오는 반려견들이 짖는 소리가 폭염 때문인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다시 아침부터 쏟아지는 뜨거운 햇볕으로 집안은 열기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오른 전기 요금 때문에 에어컨은 점잖게 잠을 자고, 애꿎은 선풍기만 돌고 있다.
다른 곳에 살 때는 이런 폭염 속에서 버티지 못하고 산이나 강가로 또는 시원한 백화점으로 피서(避暑)했지만, 이곳으로 이사 온 이후로는 더위를 자연과 함께 보내고 있다. 에어컨의 시원함도, 선풍기의 바람도 점점 멀어져 간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고 했나. 열은 열로써 다스려야 한다는 이치를 깨닫기 시작했다. 운동으로 땀을 낸 후 시원한 물에 샤워하고, 뜨거운 차를 마시면서 땀을 식힌다. 극한 혹서도 이열치열 앞에서 얼씬도 못하고 멀리서 서성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