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봉 해변, 곶자왈, 애월해안 돌염전
< 4. 21. 금>
새벽부터 짖어대는 개들.
산짐승이라도 내려왔나?
애월의 중산간은 부산하게 아침을 맞는다.
안개에 포위된 하늘.
오늘도 무척 덥겠다.
간단한 복장에 모자는 필수.
첫 여행지는 바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미리 점찍어 놓은 신창풍차해안이다.
네비는 50분을 가리킨다.
중산간에서 해변 쪽으로 내려오니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신창항에 내려보니 송곳 바람에 닭살이 돋는다.
제주도가 손바닥만 한 곳이라고 가소롭게 보았다 큰코다친다더니 무슨 말인지 알겠다.
수월봉으로 가자.
프랑스 신부님을 모시고 중국에서 배를 타고 몰래 조선에 들어오시던 김대건 신부님이 풍랑에 밀려 닿았다는 대정.
차가 정상 코앞까지 들어가는 수월봉.
차귀도와 누운봉이 바람에 펄럭인다.
다시 올지 장담할 수 없어 수월이와 녹지의 전설이 숨 쉬는 수월봉 해안 절벽 길을 걷는다.
검은 현무암과 층층이 다른 세대의 이야기가 쌓인 언덕 사이로 구불거리며 차귀도 선착장까지 이어지는 산책길.
이것이 제주도의 바람 그리고 바다이다.
당산봉을 가보려니 했는데, 이 복장으로는 어렵겠다.
포슬포항 돈방석.
제자가 추천한 현지인들이 많이 간다는 식당.
지난겨울에 방어회를 너무 맛있게 푸짐하게 먹었던 기억.
사람이 없다.
옆 미영이네는 바글바글 한데.
손님 많은 곳이 회전이 빨라 재료가 신선하겠지 싶어 발길을 옮겨본다.
입구에 비치된 화면에 메뉴를 시키고 기다리란다.
그러면 못 참지.
어린 녀석의 건조한 표정도 얄밉지만, 가격도 만만치 않다.
방어 잘하는 집이 다른 음식 못하겠냐는 경험의 지혜를 믿기로 한다.
방어보다 기름기가 적은 담백한 부시리 회.
꼬독꼬독한 미역귀 절임, 방어 김치, 소라 장조림 등 딱 봐도 제주산.
배불뚝이 손자가 발에서 연기 나게 가져다주는 대방어구이, 한치물회, 쫄깃한 무청이 덮은 대방어 조림, 대방어 지리, 겉빠속촉인 고구마튀김까지.
부시리 무침은 더 넣을 구석이 없다니 포장해주신다.
5월 1일부터 자리 정식을 한다니 어쩌면 다시 올 것 같다.
할머니의 손맛과 투박하지만 솔직한 손자를 다시 봐야겠는데,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얌체 같은 내 심보.
근처 미쁜제과(믿을 만하다는 순우리말)
해안가 기와지붕이 어설퍼 보이는데, 가게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
이 구석까지 어떻게들 찾아오시는지.
소문이 한나절 만에 전 우주로 퍼지는 무서운 세상.
빵도 라떼도 맛있다.
잘 꾸며진 정원은 어디로 시선을 돌려도 영화의 한 장면이다.
대정 해변에선 남들은 몇 번을 왔어도 보지 못했다는 돌고래, 우리가 왔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온 동네 식구를 다 데리고 나와 반겨준다.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숲으로 가자.
곶자왈(용암 숲)도립공원이 근처에 있다.
가는 길에 교육특구라는 안내판을 보았는데, 고급 아파트들과 번듯한 건물들은 아마 국제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위한 것인가 보다.
유격대 주둔지라고 설명해놓은 간판.
베트남의 밀림과 흡사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숲.
땅을 찢고 나온 용암이 식고, 비와 바람에 깎여 흙이 되어 풀과 나무의 씨를 키웠겠지.
4.3의 아픈 기억을 자신 있게 말하고 있는 종가시나무.
한 시간 반의 유격훈련이었다.
퇴로를 찾아 눈을 번득이며 장애물을 뚫고 전진 또 전진.
오로지 뱀을 피해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애월 해안 돌염전.
빨갛게 노을이 지는 깎아지른 해변.
펑펑 어깨를 부딪쳐오는 파도.
물을 넣어 두면 햇볕에 물은 증발하고 소금만 남는다는 해안 절벽 위의 돌염전.
시멘트로 구불구불 칸을 막아 시늉만 해 놓았다.
이야기만 있으면 됐지, 사실인지 아닌지 토를 달 생각은 없다.
싸 온 부시리 무침에 소주 한 병.
제주도 바람 앞에 겸손해진 하루.
열심히 뛰며 보낸 아까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