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흔 살을 앞둔 할아버지께선 내가 태어났을 때 기어코 본인의 똥고집을 꺾지 않으시고 사랑스럽기만 한 손녀에게 선주라는 촌스러운 이름을 강경하게 밀어붙이셨다고 한다. 나중에 아빠한테 들은 이야기론 내가 갓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얼마 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이름이 원래는 선주였다고 한다. 할머니의 이름은 정지안인데 원래 이름은 또 정선주라니. 도통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겠다. 할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삶처럼,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처럼 누군가를 밝게 비춰주며 살라는 의미에서 선주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다는데 난 썩 내키지 않았다. 세상에 예쁜 이름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선주가 뭐람. 촌스럽게.
일요일 아침이 되면 우리 집은 늘 분주하다. 아침 일찍부터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졸린 눈을 비벼 가며 서둘러 외출 채비를 해야 한다. 원래는 우리 집에 함께 머물면서 전기도 만져 주시고 정원도 가꾸어 주시던 박 씨 할아버지(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할아버지께 물어보면 알려주시겠지만 굳이 이름보다는 박 씨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더 정겨웠다.)도 초창기 예배 멤버셨는데 십 년 전에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나서부터는 할아버지, 아빠, 엄마, 나 이렇게 네 명이서 교회에 나간다.(가끔 아빠와 엄마는 일 때문에 빠지기도 하시지만) 돌아가신 박 씨 할아버지도 오래 사신 편이지만 우리 할아버지에 비할 바는 못된다. 엄마 말에 따르면 사랑하는 할머니에 이어 친구 같던 박 씨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시자 할아버지는 그때부터 말수가 부쩍 줄었다고 한다. 이상하다. 할아버지께선 나랑 둘이 있을 때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 편인데 말이다. 아무튼 평일은 이른 아침에 학교에 등교해야 해서 일요일만이라도 늦잠을 자보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불호령이 거센 비가 되어 우수수 떨어지기 때문에 얼마 전부터는 그냥 내 삶과 운명이 이려러니 하면서 자포자기한 상태이다. 아빠와 엄마는 진작부터 교회 갈 준비를 차분히 마치셨고 난 서재에서 아마도 고전 문학을 읽거나, 큰 글자 성경을 보시거나 혹은 투고할 원고를 쓰고 계실 할아버지를 모시러 2층 서재로 올라가야 했다. 늘 똑같이 반복되는 일요일 아침 우리 집의 정경이다.
서재 앞에 도착하여 가벼운 노크를 네 번 두드린 후 슬그머니 문을 열었다. 네 번의 노크는 '제 정체는 선주예요. 잠시만 들어갈게요.'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할아버지와 나만의 모스 부호와도 같은 것이다. 할아버지는 수북이 책이 꽂힌 책장 바로 앞에 놓여 있는 널찍하고 기다란 원목 책상에서 낡은 만년필을 들고 뭔가 글을 쓰는 데 몰두하고 계셨다. 요즘은 인공지능 컴퓨터에 직접 육성을 입력해서 원고 작업을 하는 게 대세인데할아버지는 굳이 낡은 키보드를 손수 두드려서 글을 뽑아내고 계셨다. 가끔은 오늘처럼 직접 손글씨로 원고를 쓰기도 하신다. 아무래도 고령의 할아버지시다 보니 인공지능이나 키보드 같은 기계보다는 손글씨가 더 정감 있고 어울려 보이긴 했다.전자책이 대세인 시대인데 할아버지는 여전히 유물 같은 종이책을 고집하고 계셨다.
"할아버지, 교회 갈 시간 다 와가요."
"선주 왔니?"
할아버지는 늘 넉넉하고 인자한 미소로 하나뿐인 손녀를 반갑게 맞아 주신다. 때론 이렇게 자상한 할아버지가 내 아빠였으면 하는 바람이 상상처럼 찾아오기도 한다. 아마 아빠에게 이런 속마음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당장 수술용 메스를 들고 날 해치러 오실지도 모르겠지만 난 내 이름을 선주라고 작명해 준 사실 하나 빼고는 모든 면에서 할아버지가 좋았다. 내 이상형도 할아버지 같은 남자다.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해 주시고 늘 따스하게 품어주시고 결정적으론 부모님 몰래 용돈도 많이 주시는 편이다. 그렇다고 내가 용돈 때문에 할아버지를 이상형이라고 생각하는 자본주의의 괴물이란 말은 아니다. 난 영원이란 시간 속에서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이상적 연애주의자에 가깝다. 주변 친구들은 남자애들하고 연애도 자주 하고 쉽게 헤어지고들 하던데, 난 그런 연애 취향하곤 동떨어진 인간이다. 잘생기고 화려한 남자도 내 마음에 별로 와닿지 않는다. 할아버지처럼 내 마음을 이해해 주고 따스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 남자라면 일단 '변선주의 남자친구 자격시험'에서 1차 면접을 통과시킬 의향이 있다.
"그런데, 뭘 쓰고 계셨어요? 그것도 힘들게 손글씨로."
"별거 아니구나. 때론 손글씨가 그리워지는 날이 가끔 찾아오기도 하지.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건 왠지 내 생각과 글을 도둑맞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에이, 그런 게 어딨 어요. 인공지능이 얼마나 편한데."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기계한테 들키는 것 같아 할애비는 싫구나."
"할아버지, 이런 건 문명의 이기라고 하는 거예요.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해주는 홍익인간 사상이 점차 문명의 발달과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거나 혹은 진화하는 거라고요."
"선주, 너 요즘에도 글 쓰니?"
"네..."
나도 할아버지처럼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은데 우선 의사이신 부모님의 반대가 너무 심했다. 어떻게 할아버지 같은 문과형 인재한테서 아빠 같은 이과형 인재가 태어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돌아가신 할머니도 국어 선생님이셨다고 들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아빠가 의사라는 사실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아빠와 엄마는 두 분이서 은밀한 합이라도 맞춘 듯 지금 이 시대나 앞으로의 시대에선 글로썬 먹고살기 힘들 거라고, 남에게 빌어먹는 직업이 될 거라며 나의 꿈의 노선을 틀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셨다. 하지만 난 글을 쓸 때마다 내 삶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책을 읽으면 아직 가보지 못한 세상으로 설렘 가득한 여행을 떠나 낯선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를 놓고 친근하게 대화하는 것 같았다. 책은 비싼 강의료를 지급한다 해도 섭외하기 힘든 지성인(이미 돌아가신 대문호이던지, 돌아가시진 않았지만 몸값이 비싼 유명 작가라든가)을 책값만 지불하고 언제 어느 곳에서든 자유롭게 만날 수 있게 해 준다. 독서란 참 매력적이고 생산적이며 효율적인 활동이다. 글은 나란 존재를 이 세상이나 후세에 각인시키는, 일종의 불변하는 암각화와 같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 글이 잔잔하게 스며들어 그들의 지치고 메마른 영혼을 달래주는 글을 쓰고 싶다. 아무래도 난 아빠, 엄마보다는 할아버지의 피가 더 섞인 게 틀림없다.
"내가 왜 네 이름을 선주라고 지은 줄 아니?"
"돌아가신 할머니 예전 이름이었잖아요. 혹시 이름 지을 때 너무 귀찮으셨던 거 아니에요?"
"허허, 요 녀석 보게. 할애비가 귀찮았다니.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단다. 실은 이 할아버지가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것도 다 할머니의 격려와 지지가 없었다면 애당초 이루지도 못할 꿈이었어. 세상 바닥에 쓰러져 피를 철철 흘리며 울고 있는 날 따스하게 안아주고 일으켜주고 상처에 약을 발라주며 다시 걷게 해 준 사람이 돌아가신 할머니란다. 선주 너도 그런 삶을 살아야 해. 너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누군가의 꿈을 응원해 주면서 말이다."
"저도 글로써 어두운 세상을 환한 촛불처럼 밝히고 싶어요. 할아버지, 그런데 아빠랑 엄마의 반대가 너무 심해요. 할아버지 같은 사람한테서 아빠 같은 사람이 나왔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의 진심 어린 걱정쯤으로 생각하고 이해해 주거라. 할아버지도 사실 아버지의 반대 때문에 작가의 길을 포기할 뻔했었지. 하지만 선주야. 너의 도전과 꿈에는 제한 속도가 없단다. 멈칫거리는 순간 길을 잘못 들 수도, 혹은 목표점에 늦게 도착할 수도 있어. 할아버지도 원래 꿈을 되찾는데 십수 년이 걸렸단다. 물론 돌아가신 할머니가 다시 내 꿈을 그릴 수 있게 도움을 줘서 지금 여기까지 왔지만."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끔찍이도 사랑하셨나 봐요."
"...... 할아버지한텐 과분한 사람이었지. 할머니는 신께서 나를 긍휼히 여겨 내 곁으로 보내준 천사와도 같았어."
"할머니가 안 계셔서 많이 속상하거나 슬프세요?"
"할머니가 천국으로 떠났을 때는 몇 날 며칠을 울었는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할머니의 생전 유언대로 교회에 열심히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점차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단다. 할머니는 아마 천국에서 천사들과 어울리며 맘껏 수다를 떨며 자유 할 텐데 말이지."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으시죠?"
"그럼. 매일매일 할머니 생각을 안 할 날이 없었단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할애비의 마음은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단다. 곧 있으면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낯설지만 익숙한 예감이 드는구나."
"에이, 할아버지. 그런 생각하시지 마세요. 저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셔야죠. 저 시집가는 것도 보시고요.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허허허, 그래. 우리 손녀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은 보고 죽어야지."
"아이, 참. 자꾸 돌아가신다는 말씀 하시지 마라니까요."
계절도 늦가을의 막바지에 접어들어 창밖에선 서늘한 바람들이 공기의 살갗을 파고들며 창문을 간헐적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바람에 덜커덩거리는 창문 소리를 들으니 오늘따라 바람이 참 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에 갈 때 할아버지 겉옷에 신경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찰나 할아버지께서는 낡아빠진 수첩 하나와 노트 한 권을 책상 서랍 속 깊은 곳에서 꺼내고 계셨다.
"자, 선주야. 이것 좀 보거라."
"할아버지, 그게 뭐예요?"
"할머니가 생전에 쓰던 수첩과 할애비가 젊었을 적에 썼던 노트란다."
"그걸 왜 보여주시는 건데요?"
"믿음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겠지. 미래에 대한 확신이야말로 꿈에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란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나 이 수첩과 노트에 각자의 꿈을 그렸었단다."
"그럼 일종의 주문 같은 건가요? 쓴 대로 다 이루어졌나요? 램프의 요정 지니처럼?"
"흠, 다 이루어지진 않았겠지. 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견실한 이정표는 되어 주었단다. 길을 잃고 방황할 때 이 종이에다가 뭔가를 끄적여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미래에 대한 청사진도 그려볼 수 있었지. 자, 한 번 펼쳐 보겠니?"
할아버지가 건네준 수첩과 노트는 마치 빛 바랜 고서적처럼 지난 세월의 모든 햇살과 바람을 담고 있는 듯했다. 종이가 찢길까 봐 조심스럽게 첫 장을 펼쳐 보니 오랜 시간 그 곳을 지키고 있던 펜글씨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색이 많이 바랬지만 읽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체계적으로 써진 글들은 아니었다. 거기엔 순간순간의 감정들이 끄적여 있거나,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이루고 싶은 것들 같은 메모들이 장르를 망라해서 무분별하게 적혀 있었다. 수첩과 노트를 읽어 나가며 처음 들었던 생각은 할머니의 글씨체는 특이한 듯하지만 부끄러운 요조숙녀 같았고 할아버지의 글씨체는 뭔가 귀신이 나올 것 같이 괴기스러웠다. 할머니의 수첩과 할아버지의 노트를 교차로 훑어보니 두 분께서 겪으신 사랑의 시행착오와 서로를 향한 간절한 마음 등이 고스란히 내 맘속으로 전달되었다. 할머니의 수첩은 소원 수첩에 가까웠고, 할아버지의 노트는 창작 노트에 가까웠다. 할아버지의 글들은 일상의 순간에서 느꼈던 단상들이 예술적 표현으로 승화되어 적혀 있었다. 할아버지를 소설가로서 세상에 알린 <닿을 수 없도록 닿고 싶어>라는 소설의 초기 영감도 군데군데 노트에 기록되어 있었다. 수첩과 노트는 그분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꿈과 믿음이 아니었을까.
"이것들을 너에게 주마."
"네? 둘 다요?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할머니의 수첩은 소중한 유품과도 같잖아요."
"이젠 할애비한테 별로 필요가 없을 것 같구나. 선주 너의 꿈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주는 할애비의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하렴."
"그래도..."
"선주야, 미안한데 창문 좀 열어주겠니?"
"할아버지, 지금 밖에 찬바람이 많이 불어요. 창문 열었다간 감기에 걸릴지도 모른다고요."
"괜찮다. 가슴이 답답해 오는 게 시원한 바람의 호흡을 실컷 마셔보고 싶구나. 열어 다오."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날씨라 혹여 감기라도 걸리실 까 걱정은 되었지만 단호함과 간절함이 한데 뭉친 할아버지의 어조를 이겨낼 재간은 없었다. 창문을 열자마자 창문 위에 내걸린 커튼이 방 쪽으로 정신없이 휘날렸다. 마치 백화점 오픈런을 하는 것처럼 바람은 사정없이 서재 안으로 몰아치기 시작했다. 서재는 금새 차가운 공기로 채워졌다. 할아버지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완전히 기대어 오른손을 가슴에 지그시 얹고 슬며시 눈을 감으셨다. 나도 할아버지를 따라 눈을 감아봤다. 바람이 육체의 곳곳을 간지럽히며 스쳐갔다. 머리가 맑아지면서 피가 아닌 시원한 바람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느낌도 들었다. 몸도 가벼워지더니 중력이 아니면 이대로 공중에 붕 떠서 날개를 달고 어딘가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시원한 바람의 호흡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짧았던 바람과의 조우가 끝난 건 아래층에서 선명하게 들려오는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 덕분이었다.
"변선주, 안 내려오고 뭐 해! 교회 늦겠다. 할아버지 모시고 얼른 내려와."
갑자기 현실 감각이 되돌아오면서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아직도 편하게 의자에 기대앉아 여전히 눈을 감고 계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시야에 들어왔다. 마치 깊은 잠에 빠지신 듯 세상에서 제일 평안하고 행복한 얼굴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이런 얼굴을 한 적이 있으셨던가? 날 대할 때마다 웃고는 계셨지만 얼굴은 어딘가 모르게 몇 군데 구멍난 그늘이 진 것 같았고 고독을 닮은 눈망울을 눈빛 속에 무겁게 간직하고 계셨던 분이셨다. 서늘한 바람은 계속 서재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할아버지가 쓰시던 만년필 아래 깔린 종이 뭉치가 바람의 숨결을 따라 자유롭게 흩날리지 못한 채 만년필의 무게에 구속되어 애처로이 팔랑이고만 있었다. 펄럭거리는 종이 뭉치는 마치 나를 향해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지금 이 순간 엄마의 다급한 외침보다 할아버지가 써 놓으신 글에 더 관심이 갔다. 일종의 아마추어 작가 정신이랄까. 할아버지가 눈치 채시지 않게 슬금슬금 다가가 원고를 집어 들었다. 종이에 적힌 글은 돌아가신 할머니께 쓰는 편지였다.
당신의 그곳은 평안하오?
당신과 곧 만나게 될 것 같은 황홀한 직감이 근래 들어 더 짙게 찾아오는구려.
당신을 만나게 된다는 건 분명 가슴 설레는 일일 테지만 한편으론 나만 너무 늙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두려운 마음도 없지 않소.
난 불길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노인네가 다 되었는데 당신은 어떤 모습을 하고 날 맞이해 줄지 차마 가늠이 안되는구려.
20대의 청초한 모습일지, 30대의 싱그런 모습일지, 40대의 원숙한 모습일지, 50대의 그윽한 모습일지, 아니면 세상을 떠나기 직전 아파하던 모습일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구려.
이젠 아프지 않소?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있소? 그곳에는 병도 죽음도 없겠지요?
어떤 모습으로 내가 그곳에 가더라도 아마 당신은 내게 달려와 내 손을 잡으며 웃으면서 맞이해 주겠지요?
생전의 당신이 나를 자주 당혹스럽게 했듯이 그곳에서도 장난스럽게 나를 맞이해 줬으면 좋겠소.
난 언제나 당신이 나를 당황스럽게 할 때마다 사실은 행복했었다오.
당황해하는 내 모습을 보며 미소 짓는 당신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소.
오늘은 아들 내외, 손녀와 함께 교회를 가는 날이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당신한테 닿을 수도 있겠다는 야릇한 기분이 갑자기 엄습했소.
그래서 부랴부랴 당신에게 편지를 써보기로 결심했소.
물론 당신을 만나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혹여나 못 만날 수도 있다는 조바심이 들었기 때문이라오. 당신과 달리 난 아직 믿음이 많이 부족한가 보오.
정말 보고 싶구려.
당신과의 추억이 스러지는 안개처럼 옅어만 가는 게 두렵소. 당신과의 추억이 완전히 소멸되기 전에 당신을 만나야 서로 이야기 나눌 거리가 많을 거 같은데 당신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고 만나게 되는 건 아닌지, 당신이란 존재가 내 기억 속에서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닌지 난 그게 두려울 뿐이오. 늙어간다는 게 그러한가 보오.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은 늘 변수로 가득 찼었소. 어렸을 땐 이런 변수들을 주로 사건이나 상황에 대입시켰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내 인생의 변수는 사건이나 상황이 아닌 '그대'라는 존재 자체였던 것 같소. 내 인생은 그대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뉠 뿐이오. 그리고 그대라는 존재가 있음과 없음이 내 인생의 변수였다오.
그러고 보니 당신 생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몇 번 건네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오. 당신은 "사랑해"란 말을 밥먹듯이 내게 떠먹여 줬지만 나는 그때마다 "나도"라는 무뚝뚝하고 부끄러운 반응만 당신에게 건넨 건 아닌지... 그래서 언젠가 당신을 만나게 된다면 사랑하다는 고백을 내가 먼저 건넬 참이라오. 당신은 또 어떤 장난으로 내 고백을 받아 줄지...
당신을 꼭 빼닮은 손녀딸 선주가 지금 내 방문을 두드리고 있소. 외모와 화법은 당신을 닮았지만 맘속에 품고 있는 꿈은 아마 나를 닮은 듯 하오. 교회에 다녀와서 우리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나눕시다.
나에게 닿아줘서 고맙소. 날 사랑해 줘서 고맙소. 그동안 내 눈물을 닦아 줘서 고맙소. 당신, 눈물 나게 너무 보구 싶소.
할머니를 향한 미완의 편지글은 여기에서 끝이 났다. 로맨틱한 할아버지는 러블리한 할머니가 무척이나 보고 싶으신가 보다. 하긴 할머니가 돌아가신 해가 곧 내가 태어난 해이니 벌써 18년이나 지났다. 그동안 할아버지는 이토록 사랑하는 할머니 없이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나는 할아버지의 외로움의 끝을 차마 헤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평안한 미소로 마치 깊은 잠에 빠져 계신 듯했다. 엄마의 불호령이 더 이상 서재를 뚫고 들어 올 수 없도록 이제는 할아버지를 깨워서 내려가야 했다.
"할아버지, 일어나셔야 해요."
일어나라는 말과 함께 어깨를 살포시 두어 번 두드려 봤으나 할아버지는 어떤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할아버지의 귀 쪽으로 좀 더 접근하여 목소리의 데시벨을 좀 더 높였다.
"할아버지, 일어나셔야 한다고요!"
할아버지는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여전히 어느 움직임도 없었다. 하다 못해 할아버지의 어깨를 부여잡고 가볍게 흔들어 보았다. 순간 가슴 위에 얹혀 있던 할아버지의 오른손이 바닥을 향해 겨울나무에 겨우 붙어 있던 마지막 낙엽의 쓸쓸한 운명처럼 바닥을 향해 힘없이 툭 떨어졌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천사 같은 미소를 머금고 깊고도 영원한 잠에 빠지셨다. 눈매는 포근한 담요의 부드러운 결처럼 평화롭게 잠겨 있었고, 입가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떠나는 첫 여행의 설렘과 흥분 같은 감정이 묻어 있는 듯했다. 어느샌가 창문 안 쪽으로 나부끼던 커튼이 방향을 틀어 창문 밖으로, 먼 하늘을 향해 하늘하늘 나풀거리고 있었다.
-The End
그동안 <닿을 수 없도록 닿고 싶어>를 애독해 주신 독자님들께 지극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