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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Aug 25. 2024

아내는 청귤청을 담글 때 몰래 조미료를 섞는다.

청귤청에서 인생을 배운다.

"오빠, 나 청귤청 담그고 싶은데......"


 어김없이 8월이 다가아내는 반가운 청귤 시즌이 돌아왔다며 시집갔던 딸이라도 돌아온 듯 제주 청귤을 영접할 준비에 분주해진다. 아내의 말을 얼핏 들으면 내향형 새색시인양 양손 검지 끝을 부끄럽게 맞닿으며 청귤청을 담가도 되겠느냐며 수줍게 허락을 구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단언컨대 허락을 구하는  절~~~ 대 아니다. 연애 기간을 포함해서 16년째 아내의 독자적인 화법대해 귀납적 추론을 해 본 결과, 아내의 말은 동의를 구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일방적인 통보다. 그녀의 말을 나만의 필터로 재해석해 보면 아마 아래와 같을 것이다.


 "난 이미 청귤청 담그기로 결정했고, 너한텐 그저 도의적으로 말한 거뿐이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청귤청 담글 동안 칼질해야 하니까 아들들은 네가 커버하고. 알겠어? 알겠냐고? 대답 안 해?"


 절로 "네"라는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마력의 화법이다. 솔직한 심정으론 연례행사처럼 치러지는 아내의 청귤청 담그기 작업이 마냥 내키지는 않는다. 보통 40kg의 청귤(이건 뭐 거의 김장 수준)을 구매해서 작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노동량이 결단코 만만치 않다. 푸르댕댕한 청귤을 흐르는 물에 빡빡 씻고 나서 일일이 얇게 저미는 작업은 지켜보기만 해도 괜히 내 손목이 욱신거릴 만큼 고된 작업이다. 잘랐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다. 얇게 저민 청귤 슬라이스를 유기농 설탕에 버무려 일정 시간 숙성시킨 후 국자로 떠서 각양각색 크기의 유리병에 담아야 하는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이때만큼은 온 집안에 디퓨저가 필요 없을 정도로 시큼, 상큼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보기만 해도 침이 질질

  청귤청 담그는 작업이 끝나면 아내는 늘 손목과 발목을 부여잡고 골골 앓는다. 이런 후유증이 있음에도 청귤청을 대량으로 담그는 이유는 일 년 동안 꼬박 쌓아 두고 먹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내는 정성껏 만든 청귤청을 가족을 비롯한 소중한 지인들에게 나눔 한다. 실제 우리 가정에 떨어지는 분량은 1리터 들이 유리병으로 한 병 정도나 될까? 아내는 우리 가정의 지인들을 비롯하여 사돈에 팔촌까지 조건 없는 청귤청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덜 익은 풋과일처럼 조숙미가 무르익지 않은 나로선 저렇게 고생해서 힘들게 만들어 놓고 결국에는 다 남들 퍼주고 있구나,라고 철없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어느 해에는 내 지인들 것은 필요 없으니까 제발 조금만 담그라며 눈물 한 방울 안 섞인 하소연도 건조하게 해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귤청을 담아내는 유리병의 개수가 어째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듯한 기분이다. 내 눈이 침침해진 걸까, 단순한 착시 현상일까? 어쨌든 우리 집에는 청귤청을 담그기를 좋아하는 청개구리가 서식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잘 숙성되거라


"이제 청귤청 좀 그만 만들어. 괜히 여보만 고생스럽고 아프잖아. 그 사람들이 청귤청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오빠, 그건 아니지. 이 사람은 이래서 줘야 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줘야 하고..."


 아내의 입에서 나오는 이 사람, 저 사람, 온갖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 보면 놀랍게도(실은 놀라울 것도 없다. 그동안 망각하고 있었을 뿐) 그동안 우리 가정을 위해 무언가 도움을 주시거나 힘을 써 주신 분들이었다. 구체적인 사례를 일일이 열거할 순 없지만 아내나 내가, 혹은 우리 가정이 메마른 광야에서 허덕일 때 나란히 걸어줬거나, 손을 내밀어 주었다거나, 물 한 모금을 입에 적셔주는 등, 우리 편이 되어주었던 사람들이었다. 내가 무의식 깊은 곳으로 밀어 넣으려고 했던 감사의 마음들을 다시 의식의 영역으로 끄집어 내 준 것은 다름 아닌 아내의 청귤청이었다.


 남에게 받은 은혜나 누군가에게 감사했던 마음을 애써 외면하려 했던 나의 얄팍함이 겸연쩍어진다. 괜히 청귤청을 담그다가 아내가 아파 버리면 내가 귀찮아지니까 그까짓 거 담그지 말라고 만류했었던 나는, 너무나 세속의 계산에 밝고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시간은 마음의 상처를 서서히 치유해 주기도 하지만 때론 누군가가 내 상처에 연고를 발라줬던 순간도 망각시켜 버리는 이중성을 띠고 있는 건 아닐까.


 마음 저장고 같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사람들에게 느꼈던 감사의 마음이 퇴색, 변질, 쇠락되지 않도록 최적의 마음 온도가 유지되고 있는 깊고 은밀한 저장고 말이다. 남에게 받은 은혜는 바위에 새기고 원한은 냇물에 새기라는 말도 있지만, 내 집으로부터 반경 100m 안에는 그런 걸 새길 만한 적당한 바위와 물이 없으니 마음에라도 아로새길 수밖에. 그래도 다행인 건 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아내가 담그는 청귤청을 통해 감사의 마음을 되새길 수 있으니 어쩌면 내 마음의 저장고는 정성스레 청귤청을 담그는 아내일지도 모르겠다.

지인들에게 나누어 줄 청귤청(전부가 아니다...)

 그렇게 완성된 청귤청을 지인들에게 나눠주다가 하루는 지인에게서 청귤청이 너무 맛있어서 식구들이랑 하루 만에 싹 비웠다는 연락을 받았다. 순간 청귤청을 만들면서 '감사'라는 맛깔난 조미료를 몰래 혹은 듬뿍 섞고 있는 아내의 청귤빛 미소가 떠올랐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디모데전서 4:4>


옷에 얼룩이 지면 그리 민감해하면서 왜 감사의 흔적에는 그리 둔감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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