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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Jun 27. 2024

아내에게 따귀 맞고 사는 남편

명품옷을 걸친 거지, 누더기옷을 걸친 부자

※ '김명품 씨의 이야기'는 주제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가상으로 꾸민 이야기이니 등장인물이나 사건의 전달에서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명품이나 여성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저도 '명품' 카디건 하나쯤 갖고 싶고 남성보단 '여성'을 좋아하는 욕심쟁이 남자 인간입니다.

 

 오션뷰가 시원하게 트인 프리미엄 명품 아파트에 사는 서른 살 남짓의 '김명품 씨'. 그녀는 친구의 권유로 가상화폐 시장에 우연히 뛰어들었다가 소위 말하는 초대형 잭팟이 터지는 바람에 평생 먹고살 돈을 넉넉히 벌어놓은 상태이다. 꼰대 같은 상사가 꼴 뵈기 싫어 어렵게 입사한 직장에 미련 없이 사직서를 내고 탈월급쟁이로서의 럭셔리 라이프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랜만의 외출을 위해 옷가게를 방불케 하는 드레스룸에서 여기저기 걸려있는 다양한 브랜드의 명품옷을 신중하게 피팅 중이다. 피팅을 마친 명품 씨는 드레스룸 한 구석에 마련된 가방 진열대에서 이 날의 드레스 코드와 어울리는 악어가죽 소재의 명품백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일반 직장인 한 달 월급에 버금가는 최신형 스마트폰도 잊지 않고 명품백 안에 챙겨 넣었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하이힐을 신고 현관을 나서려던 찰나, 명품 씨는 뒤늦게 생각이라도 난 듯 침실로 어가 화장대 위의 보석함을 열어 캐럿이 나가 보이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가볍게 집어든 후 목에 둘렀다. 드디어 외출 채비를 마친 명품 씨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얼마 전 구입한 고급 외제차는 언제 바라봐도 흐뭇하다. 최고급 오픈카에 탑승하여 요란한 배기음을 시끄럽게 내뿜으며 아파트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뚜껑 열린 차 곳곳에 염분을 묻히고 있었다.  


 얼마나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길래 이렇듯 한껏 꾸미고 나간 것일까? 소개팅? 애인과의 데이트? 명품 씨의 목적지는 분위기 좋은 카페나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었다. 북적이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는 대형할인마트가 명품 씨의 최종 목적지였다. 힘겹게 파킹을 마친 명품 씨는 마트 안에 입장하자마자 사람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유심히 스캔하기 시작했다. 명품 씨는 그들의 남루한 패션과 보잘것없는 브랜드에 차가운 콧방귀를 뀌었다. 때마침 수산물 코너에서 당일 한정 수량으로 킹크랩 100마리를 반값에 판다는 상인의 쩌렁쩌렁한 마이크 육성이 들려왔다. 갑자기 마트 안은 갓 출발을 선포한 아마추어 마라톤대회장으로 돌변했다. 이에 질세라 명품 씨도 수산물 코너를 향해 냅다 전력질주를 했지만, 하이힐이 균형을 잃고 미끌리는 바람에 바닥에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고 말았다. 하얀색 명품옷 하의에 바닥 얼룩이 짙게 묻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남들에게 외적으로 비치는 모습이 자신의 존재를 완성하고, 삶의 근본적인 이유라고 착각하고 있다. 최고급차를 타면 공인 베스트 드라이버라도 되는 것처럼, 명품 아파트에 살면서 명품백쯤은 걸쳐줘명품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휘황찬란한 보석으로 몸을 치장해야 빛나는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본인 내면의 결핍을 외적인 충족을 통해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입대한 지 두 달도 안된 이등병이 실외 훈련을 나가 위장 크림을 얼굴에 듬뿍 혹은 그럴싸하게 바른다고 해서 정예 전투 요원이 될 수 없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물질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내동댕이치고 자연에 은거하며 철저하게 무소유적 삶을 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사람이 살면서 어느 정도의 물질이 필요하다는 것은 나도 절실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나 역시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욕이라는 몽고반점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솔직히 개인적으로 고 싶은 외제차가 있고, 살고 싶은 아파트도 있고, 지갑과 계좌는 언제 살펴봐도 안도감이 들 정도의 넉넉한 돈이 들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질이 많으면 당연히 좋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진짜로 필요한 건 물질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넉넉함이다. 내게 주어진 물질을 '오직 나만의 것으로만 누리느냐', '누구를 위해 함께 나누느냐' 같은 '누림'과 '나눔'의 기로에 서서 어느 길을 선택해야 물질을 넉넉하게 썼다고 할 수 있을까?


 이제부터 내 일상 이야기에 가끔 등장하는 핵심 빌런이자 중심인물인 아내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보고자 한다. 우리 가정은 그동안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마다 가정의 경제적 형편을 살피어 일정 정도 나눔을 해오고 있다. 하루는 주변에 도움줄 일이 생겼는데 아무리 따져 봐도 나눌 수 있는 물질이 전혀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이번 나눔은 어려우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기발하고 혁신적이었을뿐더러 심지어 의롭기까지 했다. 아마 춘추전국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분명 겸애의 가르침을 설파했던 묵자(BC 479년경 ~ BC 381년경, 묵가의 시조)였으리라. 혹은 묵자의 현신일 수도...


"애들 돌반지 있잖아. 그거 팔자."


  묵자의 참신한 아이디어는 속물 같은 내 마음에 참담함의 물을 끼얹었다. 아이들 돌반지는 가슴 벅찼던 돌잔치의 징이라 아내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좀 더 생각해 보자고 결정을 뭉뚱그렸지만, 묵자는 몇 날 며칠 끈질기게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겸애의 정신을 가스라이팅(?)했다. 결국 난 백기를 들고 묵자에게 항복을 선언했다. 


 그리하여 아들 1호와 2호의 돌반지들, 묵자가 처녀 때부터 가지고 있던 몇 가지 금부치를 팔아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나눔을 실천했다. 그까짓 돌덩이들 집에서 성주 모시듯 붙잡고 있어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서 남을 도와주면 언젠가는 나에게도 몇 곱절 이상의 도움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라는 게 묵자님의 확고한 사상이었다. 그래도 금 판 값이면 주택담보대출빚을 일정 갚을 수도 있었는데 묵자는 기어코 우리 가정의 필요보단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이웃을 위해 나누고 싶단다.

 

 이렇듯 아내가 나눔의 정신을 실천코자 나설 때마다 따귀를 한 대씩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아내에게 따귀 맞은 마음 자국이 그 당시엔 얼얼하게 부어올랐어도, 며칠이 흐르면 맞은 자리엔 나눔의 기쁨이라는 훈훈한 새살이 돋아 나곤 했다. 묵자, 아니 아내는 살면서 참 배울 게 많은 소중한 동반자이다.(여담이지만 훗날 우리 가정이 큰 위기에 처했을 때 몇십, 몇 백 곱절의 도움이 진짜 돌아왔다. 묵자, 당신의 가르침이란...)


 최치원 선집 『새벽에 홀로 깨어』에 수록된 「추모의 노래」라는 한시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거친 다북쑥이 삼대 속에 있으면 절로 곧을 수 있다.'


 다북쑥이 삼대 속에 섞여 있으면 곧 삼대의 곧음 때문에 스스로 곧게 자라듯, 훌륭한 스승 밑의 제자가 스스로 훌륭해질 수 있듯, 현명한 아내와 함께 살아나가는 남편은 스스로 현명해질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결국 난 다북쑥이었고 아내는 곧은 삼대였던 것이다. 난 언제 삼대처럼 곧아질 수 있을까.


 사람은 외면이 아닌, 내면이 더 빛나야 한다. 명품옷을 걸친 거지가 아니라 누더기옷을 걸친 부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내 마음밭에 넉넉함이란 씨앗 한 톨을 심는다. 언젠가 하늘을 향해 굵은 가지가 힘차게 뻗어 오르고 푸른 잎이 무성한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나서 사람들의 시원한 그늘막이 되어 주길 염원한다. 더불어 달콤한 열매들도 풍요롭게 무르익어 사람들이 그 열매의 풍성한 과즙으로 애타는 목마름을 시원하게 해소하길 기원한다.  


  글 쓰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던 차에 저녁 상차림을 마친 아내의 다정한 목소리가 노크를 가볍게 건너뛰고 굳게 닫힌 서재 방문을 뚫고 들어온다.


"여보, 밥 묵자!!"


 괜스레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뜨끔하다. 본인을 묵자라고  걸 알면 잡아 묵을 텐데... 일단 밥부터 묵자.


어차피 끼지도 못할 돌반지, 차지도 않을 금부치가 누군가에겐 꿈이자 생활이 될 수도 있어.


인생 공식이란 거 들어 봤어? '힘듦'을 나누고 '기쁨'을 곱하면 '모두의 행복'이라는 정답이 도출되는 공식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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