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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Apr 25. 2024

<브레인스토밍 노트>

10여 년 후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피천득의 인연이란 수필집 속 글귀입니다.”


 무더위가 좀처럼 가시지 않아 에어컨을 풀로 가동했지만, 여전히 일반계 남자 고등학교의 3학년 교실은 수업의 열기와 습한 날씨로 인해 후덥지근했다. 점심시간 후 잠이 쏟아지는 5교시. 따분하기만 한 문학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은 문방구 앞에 진열되어 있는 곧 죽을 병아리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연신 고개를 위아래로 꾸벅대고 있었다. 나는 잠깐 수업 교재를 내려 놓고 교탁 위에 얌전히 놓여 있던 죄 없는 출석부를 번쩍 들어 강하게 쾅쾅하고 두 번 내리쳤다.     


“이 녀석들아! 잠은 무덤에서나 자라.”     


 자기가 잠들었는지도 몰랐던 병든 병아리들은 국어 선생님의 매서운 호령 소리와 출석부 내리치는 소리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인해 무거운 눈꺼풀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나선 꿀 같은 단잠을 야속하게 깨워버린 국어 선생님에게 서늘한 레이저 눈빛을 쏴댔다. 반장 녀석이 반장답게 호기롭게 나섰다.  

  

“수남쌤, 오늘 수업 노잼이에요. 그냥 자습하면 안 돼요? 저희 수능이 코앞인데.”     

“자면서 공부하는 걸 자습이라고 한다면 쌤은 절대 자습을 허락할 수 없지. 그리고 잘 들어. 학교 수업도 수능 공부의 연장선상이야.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에 의존했다가 수능 망친 놈들 여럿 봤다. 그냥 쌤이 스타 강사라고 최면을 걸어.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책을 보면 꿈을 이룰 수 있단다.”

“우!!!”     


 학생들이 잠잘 때마다 단골처럼 등장하는 나의 진부한 멘트에 학생들은 일제히 진심 어린 야유를 보냈다. 학기 초 고3 학생들은 마치 수능을 씹어먹을 듯이 미치게 학업 페이스를 올렸다. 하지만 오버페이스를 한 탓에 더운 여름이 살며시 다가오자 하나둘씩 지쳐서 떨어져 나가는 패잔병들이 속출했다. 3학년 4반 담임이자 국어를 담당하는 나는 선풍기 2대만 가지고 더운 여름을 견뎠던 학창 시절 얘기를 해줄까 잠시 고민했다가 꼰대 선생님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봐 이내 포기했다. 평소 학급을 대표해서 나서기 좋아하는 경민이가 병든 병아리들을 위해 과감히 총대를 메기로 했다.


“쌤, 그러지 말고 첫사랑 얘기나 해주세요. 진짜 오늘 너무 힘들어요. 날도 덥고.”    

 “야, 선생님은 사랑이란 사치를 부려 본 적이 없어. 너희가 진정 사랑에 빠져야 할 대상은 공부야.”  

   

 그랬다. 나는 지금까지 여자와 사랑을 나눠 본 적이 없었다. 졸업하고 30대 초반의 나이가 될 때까지 계속 임용고사 준비와 낙방을 거듭하면서 청춘을 쓰레기처럼 낭비해버렸다. 임용고사에 도전하면 할수록 눈에 안 보이는 거대한 벽을 체감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어차피 안되는 시험에 매진하는 것보다 전공을 살려서 경력이나 쌓고 입에 풀칠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사립고등학교 기간제교사 채용 시험에 원서를 넣기 시작했고. 고맙게도 이 학교는 경력이 일절 없는 나를 합격시켜 주었다. 나는 이 학교에서 2년째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쌤, 짝사랑도 안 해 보셨어요?”     


 사랑이라는 가치의 본질에 ‘일방적’이란 의미를 살짝 껴준다면, 난 첫사랑도 해봤고 짝사랑도 해봤다. 가슴 속 아련한 공간에서 한 여인이 방문을 열고 나온다. 정선주. 오랜만에 맞이하는 가슴 아픈 이름이었다. 벌써 십여 년이 훌쩍 흘렀다. 십여 년 전 추석에 건넨 고백의 편지가 갈기갈기 찢긴 이후, 나와 그녀는 학교에서 서로를 피해다니기 바빴다. 우연히 마주쳐도 가벼운 눈인사만 어색하게 건넬 뿐. 마주 앉아 혹은 마주 서서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전공과목에서 같은 팀에 짜였던 적이 있었다. 난 프로젝트 활동에 아예 나가질 않았다. 그녀에게 어떻게든 불편함을 주기 싫었던 것이다. 신경질적인 모둠장은 나에게 무임 승차하지 말라는 모욕을 줬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최대한 그녀와 마주치지 않는 것이 그녀를 위한 일이라고, 나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병든 병아리들의 구조 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업을 겨우 마친 후 교무실로 돌아왔다. 맥없이 자리에 털썩 앉아서 더운 한숨을 공기 중에 날려 보냈다. 그녀를 떠올리니 그녀와의 마지막 기억이 전과(前科)처럼 떠올랐다. 고백의 편지는 주지 말았어야 한다는 자책의 마음이 후회처럼 밀려왔다. 온갖 생각의 잡동사니들을 물리친 건 윤리 선생님이었다. 곧 퇴직을 앞둔,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는 윤리 선생님은 쥐도 새도 모르게 내 뒤에 접근하여 내 어깨를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변수남 선생님, 나랑 얘기 좀 하세.”     

“네, 선생님. 말씀하시죠.”     

“여기서는 좀 그렇고, 저기 상담실로 같이 좀 가세.”     


 직감적으로 알았다. 개방된 교무실이 아닌 은폐된 상담실로 가자는 것은 분명 사적인 이야기이거나, 곤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겠지. 피곤한 몸과 마음을 노곤하게 일으켜서 윤리 선생님의 뒤를 따라 상담실에 입장했다. 평상시 별로 활용을 안 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주인처럼 상담실을 지배하고 있던 퀴퀴한 냄새는 오랜만에 입장하는 방문객들 덕분으로 외로움을 잠시 잊은 듯했다. 책상과 의자가 여러 개 있었지만 윤리 선생님은 날 멀뚱히 세워둔 채 그럴싸하게 팔짱을 끼고 본격적인 취조를 시작했다. 윤리 선생님은 그동안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라도 한 듯했다. 


“자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그리 재운다며?”


 엥? 사실이 아니었다. 새로 부임하신 교장 선생님께선 첫 교무회의 때 학력 강화, 정신력 강화를 강하게 외치시면서 수업 시간에 학생들을 재우는 교사는 능력이 없는 교사라고 대놓고 못을 박았기 때문에 난 생존을 위해서 자고 있던 학생들을 실시간으로 애원하듯 깨워가며 수업을 해 왔었다. 교장 선생님께서도 수업 순시를 자주 도시는 편이기 때문에 재계약을 위해서라도 학생들을 재우면 안 되는 가련한 처지이기도 했다. 즉, 내가 수업 시간에 애들을 재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망언이었다.   

     

“아닙니다. 최대한 자는 아이들을 일일이 깨워가면서 수업하고 있습니다.”    

 “어허, 다 보는 눈들이 있어. 애들을 재워대서 학생들이 불만이 많다고.”     


 엥? 많이 억울했다. 작년에 실시했던 교원 평가에서 난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꽤 높은 편에 속하는 점수를 받았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무거운 권위를 벗어던지고 학생들과 서로 소통하며 교감하는 걸 중시했기 때문에 학생들과의 관계도 끈끈하다 못해 끈적할 정도로 긴밀했다. 무엇보다 국어를 전공하는 사람 입장에서 윤리 선생님이 내세우는 주장과 근거는 앞뒤 맥락이 전혀 맞지 않았다. 애들을 재우니까 학생들의 불만이 많다는 건 아무리 말의 앞뒤를 바꿔봐도, 모든 상식을 동원해 봐도 이상한 논리였다. 윤리 선생님의 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네 담배도 태운가?”     


 음, 사실이었다. 실은 군대에서 담배를 배웠다. 아니 배워야만 했다. 그래야만 그나마 숨을 쉴 수가 있었다. 지역 차별(경상도 출신 선임들이 전라도 출신을 차별하는 것), 학벌 차별(대학을 안 간 선임이 대학 출신을 차별하는 것), 외모 차별(그냥 생긴 게 마음에 안 들어서 차별하는 것) 등을 꼬투리 잡힌 채 부당한 가혹행위와 심각한 구타를 셀 수 없이 당했으니. 도저히 담배라도 피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으니까. 나는 솔직히 태운다고 대답했다.     


“앞으로 담배 피우지 마소. 기간제 교사가 담배를 태우다니. 쯧쯧.”     


 엥? 개똥 같은 소리다. 윤리 선생님은 분명 나한테 억한 감정을 가지고 계신 것이 확실하다. 기간제 교사는 인권도 없냐는 말이 분하게 튀어나오려 했지만, 숨을 한 번 고른 후 분을 삭였다. 대승적으로 백 번 내  생각을 물려서 기간제 교사가 을의 입장이라고 치더라도 그래도 교사인데……. 스파링 위에서 쓰러질락 말락 비틀거리는 내게 윤리 선생님은 최후의 카운터 펀치를 날리고 유유히 상담실을 나가 버렸다.    

 

“학교생활 똑바로 하소. 100개의 CCTV가 자넬 지켜보고 있으니까.”     


 교내에는 학생들의 인권을 위해서 CCTV가 설치될 수 없다. 그런데 100개의 CCTV라니. 학교에 나도 모르는 CCTV가 설치되어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나도 모르게 콧방귀가 나왔다. 훗. 문득 학교의 교원이 50명이라는 사실이 뇌리를 스쳐갔다.      


‘50명의 교원 × 눈 2개 = 100개의 CCTV’     


 CCTV 공식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윤리 선생님의 계산은 틀렸다. 나를 포함해서 50명으로 계산한 것 같은데 솔직히 나는 뺐어야지. 내가 나를 감시할 순 없으니까. CCTV는 엄연히 말하면 98개이다. 군대에서 지독하게 당했던 가혹행위들이 떠올랐다. 오늘은 지역차별, 학벌차별, 외모차별이 아닌 신종 신분 차별을 당한 것 같아서 기분이 형언할 수 없이 더럽고 비참했다. 퇴근길에 대학 동기 녀석을 불러서 술이나 진탕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기분 그대로 가지고 집에 들어가면 억울해서 잠을 못 이룰 것 같았다.     


 얼마 전 다른 사립 고등학교에서 정식 교사가 된 대학 동기 녀석에게 술을 얻어먹기로 했다. 순정이가 야속하게 날 두고 먼저 가버린 이후 친해지게 된 녀석이었다. 사범대학은 4학년이 되면 사범대학 정독실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임용고사 준비를 한다. 오늘 만나는 이 녀석은 바로 정독실 옆자리 짝꿍이었다. 대학 생활 내내 별말도 없이 서먹한 관계로 지내다가 정독실 짝꿍이 되어 보니 은근 말도 많고 세상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녀석이었다. 무엇보다 경제관념이 투철하여 일찍부터 그런 쪽으로 철이 들었고 본인은 꼭 자수성가하고 말겠다고 울분을 토하던 녀석이었다. 이 녀석은 애초에 임용교사라는 건 쉽게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이라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는지 졸업하자마자 임용 합격에 대한 꿈을 접고 바로 기간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운이 안 맞아 이 학교, 저 학교를 자주 떠돌아다녔지만 결국 마지막 학교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정식 교사가 되었다. 기간제 교사 생활을 꽤 오래 해봤었기 때문에 녀석은 오늘 내가 당한 일에 대해서 진심을 다해 유감을 표함과 동시에 쌍욕을 날리며 공감해 줬다.     


“야 그런 XX 같은 놈들도 교사라고 월급 처 받고 있냐? 교육청에 신고해 버려라.”     


 녀석은 나보다 더 크게 쌍욕을 날려줘야 내가 그나마 작은 위안이라도 받을 것을 알고 있었다. 술기운에 그 녀석이 날려주는 쌍욕은 사이다처럼 청량하고 시원하고 통쾌했다. 그렇다고 내가 겪은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순간의 감정은 일시적으로 해소되었고 더불어 작은 위안도 챙겼다. 2차까지 이어진 술자리가 끝나고 녀석을 떠나보낸 후 난 다시 감옥 같은 자취방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어두컴컴한 하늘빛이 오늘도 수고했다고, 고생많았다며 내 어깨를 두드려주는 것만 같다.     

 

 사실 난 이상한 불치병에 걸린 상태이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다가도 술만 마시면 그녀 생각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녀와 술 한 잔 나눈 적이 없었기 때문에 술은 내게 있어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과거 회상의 계기나 매개체가 될 자격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만 마시면 이상하게 그녀 생각이 났다. 그녀 생각만 하면 가슴 한쪽에 가시가 박힌 듯 쓰려왔다. 이젠 잊힐 때도 되지 않았나. 아직까지 그녀는 내 마음의 방에서 나갈 생각이 없나 보다. 집주인이 이제 그만 방 좀 빼달라고 독촉을 해도 그녀는 무슨 낯짝인지 월세를 계속 밀려가며 무단으로 내 마음의 방 하나를 점거한 채 요지부동이었다.    

  

 동네의 낡은 서점을 지나치다가 문득 방과 후 수업 교재를 사야 한다는 사실이 술기운을 뚫고 삐져나왔다. 쓸 만한 교재가 있나 서점 문을 조심스레 열고 참고서가 꽂혀있는 책장 앞에 서서 책들을 뒤적거렸다. 작은 서점이라서 그런지 교재가 다양하게 있는 편은 아니어서 쓸 만한 교재가 없었다. 나이가 지긋한 서점 주인은 오늘 영업을 끝내려고 하던 찰나에 불청객이라도 찾아온 것처럼 불편한 기색을 내 뒤통수에 노골적으로 꽂아 넣고 있었다. 늦은 시각에 서점에 입장해서 어영부영 책만 훑어보고 가기가 민망하여 볼펜이라도 하나 사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젠 문구 진열대 앞을 어슬렁거렸다. 그때 눈앞에 노트 한 권이 마치 자기를 데려가 달라는 듯 하소연하고 있었다. 노트의 제목은 ‘브레인스토밍 노트’였다. 요즘엔 이런 노트도 나오네,라는 신기함과 동시에 학창 시절의 한 문학 소년이 떠올랐다. 이야기의 얼개를 짤 줄도 모르고 그냥 막연히 생각나는 대로 소설을 끄적였던 한 소년. 오늘 이 노트를 영접한 것도 신이 예비한 운명인가. 이성을 잃은 술기운이 명분 따위는 집어치우고 어서 노트를 사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결국 그 노트를 집어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나이가 지긋한 서점 주인은 무겁게 바코드를 들고 삑, 하는 스캔음이 흘러 나옴과 동시에 잠에 겨운 목소리로 ‘2,000원입니다’를 힘없이 내뱉었다. 난 2,000원짜리 노트를 들고 2,000만 원의 보증금을 걸고 임시 대여한 감옥 같은 자취방으로 입장했다. 입장하고 보니 방과 후 교재를 안 사 왔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술기운이 퍼져가고 몸의 기운이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감옥 안에 부속품처럼 달려 있는 작은 책상에 성의 없이 노트를 던져 놓고 화장실로 향했다. 샤워로 하루의 먼지를 털어냈다. 영조 대왕처럼 귀도 빡빡 씻으면서 윤리 선생님이 했던 망언도 지워냈다. 간이 냉장고에 있는 맥주캔을 따서 홀짝거리며 책상 앞에 앉았다. 갓 사온 뜨끈 뜨근한 브레인스토밍 노트의 첫 장을 펼쳤다. 하얀 백지가 설원처럼 펼쳐져 있다. 설원에 너의 족적을 남기라고 술기운은 재촉했다. 문득 쓰고 싶은 말이 한 문장 떠올랐다.      


 다음날 매정한 알람이 시끄럽게 깨워준 덕에 무거운 숙취와 함께 침대에서 일어났다. 술은 섞어서 먹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198번째 후회함과 동시에 화장실로 직행해 고약하게 부글거리는 뱃속 액체와 고체를 분출했다. 양치질을 대충 하고 나와 늘 해오던 익숙한 패턴으로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기간제 교사는 출근도 빨라야 했기 때문이다. 일이 있든 없든 아침에 초과 근무가 있든 없든 명분 없이 일찍 출근해서 내 자리에 앉아 있어야 윗분들에게 눈치가 덜 보였다. 방을 나서기 전 책상을 보니 어젠 사놓았는지 기억도 안 나는 정체 모를 노트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어제의 기억이 파편처럼 드문드문 떠오르면서 노트를 집어 들고 신기한 듯 첫 장을 펼쳐보았다. 광대한 설원의 한복판 같은 첫 페이지에는 술기운이 쓴 듯한 괴기스러운 문체로 달랑 한 문장만이 적혀있었다.     


‘그녀가 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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