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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Jun 05. 2024

<환락의 거리에서> 1화

가혹행위

“야, 변수남.”     


 몽롱한 의식의 틈으로 누군가 날 부르는 소리가 귀찮게 파고들었다. 굵직한 남자 목소리같은데 누구지? 누가 감히 내 단잠을 방해하는 거야?     

 

“야, 변수남!”   

  

 상대방의 목소리 데시벨이 급격히 높아졌다. 갑자기 현실 감각이 살아나면서 누워있던 침구에서 벌떡 일어섰다. 여긴 내 안방이 아니라 군대 내무반이라는 사실이 무섭게 엄습해 왔다. 부리나케 일어나서 관등성명을 또박또박 대었다.     


“일병, 변, 수, 남.”     

“이 새끼 보게. 일병 계급장 달았다고 벌써 군기 빠진 것 보소? 박 병장 깨워서 빨리 나와.”     


 부산 출신의 소대 선임 허 상병은 불침번 근무가 끝나갈 갈렵 다음 근무자를 깨우기 위해 내무실에 들어와 날 깨운 것이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새벽 1시 40분이었다. 난 이날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근무조였다. 근무조 사수는 내 얼굴과 내 말투와 내 학벌을 맘에 안 들어하는 박 병장이었다. 박 병장은 우락부락한 얼굴에 거대한 덩치로 무장한 서울 출신의 고졸 선임이었다. 박 병장은 사회에 있었을 때 가방끈이 짧아서인지 육체노동 위주로 이것저것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평소 떠들어 댔다. 믿진 않았지만 여자들한테 인기도 상당히 많았다고 하는데 그건 뭐 내 관심 영역 밖의 일이었다. 아무튼 어둠 속에 주섬주섬 군복을 갖춰 입고 곤히 잠들어 있는 박 병장 곁으로 조심히 다가갔다. 쩌렁쩌렁 코를 고는 것 보니 깊은 잠에 빠진 게 틀림없다. 깨우자마자 짜증 섞인 화를 낼 게 분명한데……. 일단 최대한 박 병장 귀에 내 입을 가깝게 밀착하여 소곤거리듯 박 병장을 불렀다.     


“저, 박태웅 병장님.”     

“…….”     


 역시 예상했던 대로 아무런 반응이 없다. 소리의 데시벨을 높였다간 자칫 다른 선임들을 깨울 수도 있으므로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박 병장의 어깨를 흔들어서라도 깨워야 했다. 몇 번 더 불러봐도 반응이 없자 나는 박 병장의 어깨에 지그시 손을 대고 가볍게 흔들면서 다시 한번 박 병장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저기, 박태웅 병장님?”     


‘퍽’     


 깊은 잠에서 깨어 심기가 불편한 박 병장이 허공에 휘두른 곰발바닥만한 손등이 내 왼쪽 뺨을 강하게 후려갈겼다. 나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미처 대비를 못하고 그대로 내무실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맞은 뺨 쪽이 얼얼했다. 하지만 재빨리 일어나서 자세를 고쳐 잡고 부동자세를 취했다. 박 병장은 어둠 속에서 침구류를 부스럭거리며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어둠 속이라 박 병장의 흰자위가 더욱 또렷하게 날 응시하고 있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야밤에 깊은 산속에서 행인을 노리는 맹수의 눈동자.     


“어이, 변수남이.”     

“네, 일병 변수…….”     


‘퍽’     


 관등성명을 채 마치기도 전에 난 다시 내무실 바닥에 나뒹굴었다. 박 병장의 묵직한 오른발이 내 가녀린 복부를 가격한 덕분이었다. 아까 맞았던 뺨의 고통은 복부의 고통으로 인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고통이 되어 버렸다. 또다시 재빨리 일어나서 자세를 고쳐 잡고 부동자세를 취했다. 한밤중에 일어나 심기가 매우 불편한 맹수는 뭐라도 잡아 뜯어먹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야, 일단 시간 없으니까 군복 갈아입고 보자.”     


 제대를 몇 개월 앞둔 박 병장은 어둠 속에서 능수능란하게 근무복으로 갈아입었다. 짬바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느릿해 보이지만 동작은 간결했고 신속했다. 박 병장이 근무복으로 갈아입는 일을 마치자 우린 행정실에서 당직 간부에게 근무조 투입을 간단히 보고한 후 행정반 앞 근무 위치에 투입되었다. 사수인 박 병장이 인원 현황판과 총기 현황판을 들고 소대 내무실을 점검하고 돌아온 시각은 새벽 2시 20분이었다. 이젠 이 인간과 1시간 40여분 동안 불침번 근무를 서야 한다는 객관적인 사실이 너무 절망적으로 다가왔다. 취침 인원 이상무, 총기류 이상무를 확인한 박 병장은 슬슬 날 잡아먹기 위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야, 변수남.”

“일병, 변수남.”     


“야, 변수남.”

“일병, 변수남.”     


“야, 변수남.”

“일병, 변수남.”     


 야밤중에 중대 막사의 복도에서는 의미 없는 군대식 쌀밥 보리밥 게임이 오고 갔다. 박 병장의 의미 없는 부름질에 난 그저 영혼 없는 앵무새처럼 관등성명만 반복해서 댈 뿐이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일종의 지배욕일까? 자신이 누군가를 내리깔듯 부르면 상대방은 예의를 갖추고 절도 있게 대답을 해야만 한다는 것에서 오는 무언의 만족감이 있을까? 난 제대를 하는 순간까지 난 박 병장의 쌀밥 보리밥 게임에 담긴 기저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드디어 쌀밥 보리밥 게임이 끝나고 본격적인 가혹행위가 시작됐다.     


“변수남, 내가 분명 나 깨울 때 내 몸 만지지 말라 했지?”     

“네, 그렇습…….”     


 대답을 마치기도 전에 박 병장의 무정한 군홧발이 내 정강이를 둔탁하게 후려치고 있었다. 극심한 고통에 나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으악.”      

“자세 똑바로 잡어. 차렷 안 해?”     


 견딜 수 없는 고통에 허우적대다가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고통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뼈가 부러진 건 아닌지 걱정이 될 만큼 통증이 심했다. 군대에선 이런 행위를 보통 조인트를 깐다고 표현한다. 난 조인트를 당한 것이다. 이번이 처음 당한 것은 아니지만 당할 때마다 무자비한 고통이 찾아왔다. 가혹행위를 완전히 근절하겠다고 선언하신 신임 중대장님의 취임 연설은 그냥 형식적인 원고에 불과했다. 가혹행위는 여전했고 뿌리 뽑힐 일은 전혀 없어 보였다. 선임들은 간부의 말은 절대 믿지 말라고 하며 병사끼리 힘을 합쳐야 힘든 군대 생활을 버텨나갈 수 있고, 그래야 네가 선임이 되어도 군 생활이 편하다는 내용을 평상시에 후임들에게 단단히 세뇌를 시켰다. 난 세뇌를 당했기 때문에 숱한 가혹행위를 신고 안 한 게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마음의 편지’를 간부에게 썼다가 들통이 나는 바람에 몇 개월 동안 선임들로부터 투명 인간 취급을 받아온 군대 동기의 비참한 말로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 군대 동기는 순진하게도 신임 중대장님의 가혹행위 근절 약속을 맹신했다. 하지만 마음의 편지를 받은 신임 중대장은 비밀을 지켜야 하는 마음의 편지의 속성을 외면하고 소대 분대장들을 불러서 후임 교육 똑바로 안 하냐며 다그쳤다. 물론 마음의 편지 작성자의 실명도 분대장들에게 공개했다.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 아니라 간부라는 선임들의 말이 현실적으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박 병장은 자신의 고귀한 신체를 터치했다는 이유로 근무 시간 내내 쌀밥 보리밥 게임을 진행하다가 틈틈이 조인트를 까면서 내 정신과 신체를 파괴했다. 더디게만 가던 시간도 새벽 4시에 이르러 근무 교대 시간이 되었다. 소대 내무실에 복귀하여 편한 생활복으로 환복 한 후 국방색 매트에 누웠다. 하지만 박 병장의 학대는 끝난 게 아니었다. 난 누운 상태로 머리 들어, 팔 들어, 다리 들어 고문을 받았다. 사람의 머리가 정말 무겁다는 사실을 자각시키는 가혹행위였다. 중력이 강하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들었던 머리와 팔과 다리는 서서히 바닥에 깔린 매트 쪽을 향해 기울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내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건 박 병장의 무식한 주먹이었다. 주먹을 한 대 맞고 정신을 차린 후 다시 기울었던 머리, 팔, 다리를 천장 쪽을 향해 들어 올렸다. 온몸은 진작에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멀쩡했던 정신도 점차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와장창 하고 깨지기 직전이었다. 과거의 온갖 장면들이 뇌리를 통과했다. 훈련소까지 배웅을 나와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니의 모습, 선주와 즐거웠던 한때, 문나잇에게 들었던 숱한 원나잇 이야기, 고백에 실패하고 쓸쓸히 발길을 되돌렸던 미르연못의 정경. 새벽 6시 기상나팔 소리가 울릴 때까지 가혹행위는 계속되었다. 박병장의 어깨를 살짝 두드린 대가는 장장 4시간 동안의 가혹행위였다.     


 박태웅 병장은 평소에 내무실에서 본인이 입대하기 전에 수많은 여자와 잤다는 사실을 훈장 자랑하듯 떠벌이곤 했다. 그러면 후임들은 동경 및 존경의 시선과 과잉 리액션으로 박 병장의 야한 이야기에 신나게 호응해줘야 했다. 마치 영웅담을 들은 것 처럼. 박 병장이 여자와 잔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내 친구 문나잇, 아니 순정이가 떠올랐다. 그렇다고 해서 둘의 원나잇 이야기가 결이 같다는 건 절대 아니다. 박 병장은 단순히 섹스에 미친놈 같았고, 순정이는 자기 이름 그대로 순정파였으니까. 바보 같은 자식. 그렇다고 죽어? 너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군대에서 죽을 뻔한 고비가 몇 번 있었다고. 견디기 힘든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할 때마다 정말 죽고 싶었지만 남아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필사적으로 생의 의지를 붙잡고 있다고. 이 나쁜 자식아.      


 어느 날 소대에 이등병 하나가 들어왔다. 키는 작지만 피부가 여자보다 더 뽀얀 경기도 출신이었다. 남자인데 눈웃음이 이상하게 요염했다. 귀여운 인상 덕을 본 것인지 이등병이 실수를 해도 선임들은 그저 허허하면서 감싸줬다. 내 이등병 시절과는 완전 딴판이다. 왠지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패배자가 된 느낌이었다. 우리 부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을 이용해 공동 목욕탕에서 온수 샤워를 했다. 뜨겁게 데워진 탕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으로 한 주의 피로를 풀 수 있는 회복의 시간이었다. 부대원이 많았기에 탕에서 노곤함을 녹이는 시간은 소대별로 고작 10분 정도였다. 탕에 들어가 있는 10분 동안 박 병장은 새로 들어온 이등병을 자신의 옆으로 오게 했다. 그러더니 이등병의 뽀얀 피부를 더듬기 시작했다. 이등병은 이등병인지라 병장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했다. 뭐 남자치곤 피부가 매끈해서 신기해서 만져보는구나,라고 생각했지만, 난 물속에서 점점 부풀어 오르는 박 병장의 그것을 의도치 않게 목격하고 말았다. 박 병장의 애정 행각은 비단 목욕탕에서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자는 취침 시간에 이등병은 박 병장의 옆자리에서 박 병장의 뱀처럼 휘어 감는 손길을 저항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 누구도 박 병장의 더러운 행각을 차마 저지하진 못했다. 더 심한 단계로 나아가지 않고 딱 피부 정도만 탐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모두는 학습된 원숭이처럼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어느새 박 병장과 함께 하는 분대 포상 휴가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난 박 병장과 환락의 거리 어느 지점을 심하게 절뚝이며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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